우리가족 행복하자 :)
2018년, 함께 발령받은 동기들과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아는 건 많이 없고, 위에서 시키는 일은 많고. 맡게 되는 아이들은 다 심각한 케이스들이어서 초보 상담자로서 숨이 턱턱 막힐 때. 우리는 모여서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처음엔 선그리기부터, 그다음은 자음 모음.
그리고 글자를 적을 수 있게 되면, 자기 이름을 시작으로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연습했다.
공평한 하느님께서는 내게 평균 이상의 지적능력과 성실함, 지구력 등을 주셨지만 '미적 감각'은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늘 머리로는 '뭔가 창의적이고 색다른' 작품을 떠올려내지만 손끝에서 그걸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늘 어딘가 좀 허술하고 어설픈 티가 나는, 애매하게 촌스럽고 구린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왔다. 몇 번의 연습 끝에 캔버스로 붓펜을 가져갔을 때의 떨림과, 회색 붓펜으로 감각적인 'Be Happy'를 완성해냈을 때의 흐뭇함을 기억한다. 5년이 지나 이제는 말라 비틀어진, 그래서 결국 일부의 흔적만 남기고 떨어져버린 저 꽃송이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기억나면 좋으련만.
이후 한창 캘리그라피에 재미를 붙여서 선생님 없이도 무수한 카드들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을 위한 글귀도 써붙이고, 친구들 강아지를 위한 카드도 만들고,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을 축하합니다' 꽃카드도 써서 액자에 넣어주고.
그렇게 캘리그라피를 제대로 더 해서 부수입을 좀 벌어볼까 하는 궁리도 했다. 부수입에 대한 궁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를 국내주식 단타/스윙 투자자로도 만들었다가, 미국주식 무한매수법 투자자로도 만들었고. 앱테크와 풍차돌리기 적금에 진심인 사람이 되게 하기도 하고, 설문조사와 당근마켓에 빠져있는 사람이 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재는 배당투자와 앱테크에 진심인, 체험단 블로거 에밀릴리와 브런치 작가 오엉으로 살고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 겸직 금지.
이 두 가지보다 강력하게 돈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건 '허구한 날 돈 때문에 싸우는' 우리 엄마 아빠였다.
아빠는 늘 늬 엄마는 집에 돈도 안 보태면서 씀씀이는 더럽게 크다고 했고, 엄마는 늘 늬 아빠 쫌스러움 때문에 진짜 사람 미치겠다고 했다. 나는 허구한 날 돈 때문에 싸우는 엄마아빠한테 같이 소리 지르고 울고 참전하기를 한 세월 하다가, 그냥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쫌스러운 아빠한테 다달이 생활비 좀 보태고, 씀씀이 큰 엄마가 다른 사람들한테 어깨 피고 돈 좀 쓰고 다닐 수 있도록 용돈 좀 주고 싶어서.
아직 독립도 못했고, 모은 돈도 얼마 없고, 부수입이라고는 앱테크로 버는 몇 천원이 전부지만. 그래서 아빠한테 보태는 생활비도 엄마한테 주는 용돈도 지금은 개뿔 별 거 없지만. 그냥 내 꿈이다. 캘리그라피를 팔아서 돈 좀 만져볼까 했을 때도,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책 좀 팔아볼까 하는 지금도. 나는 그냥, 아빠도 엄마도 좀 돈의 속박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우리가족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앞으로 또 얼마나 무수한 '부캐'로 변모하고 살아갈까.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랫동안 경제적 독립을 갈망하고 허리띠를 졸라 매며 살아야 그 부부를 도울 수 있을까.
자주 힘들겠지만,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 어떤 위로도 와닿지 않는 날들도 있겠지만.
그래.
정말. 다. 괜찮을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