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일 1버리기 20일차

제일 잘한 일

by 오엉 May 27. 2024


브런치 글 이미지 1

솔직히 이 안경케이스를 열기 전에는 이 안에 당연히 잘 안 쓰는 선글라스 같은 게 들어있을 줄 알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 시절 내가 쓰던 안경이 들어있을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라섹수술 한 지가 벌써 5년이 넘었으니까••


브런치 글 이미지 4

어릴 땐 안경이 쓰고 싶었다. 언니가 안경을 썼으니까.


열심히 책도 보고 티비도 보고 컴퓨터도 한 결과로 안경을 쓰게 됐을 때. 엄마아빠는 한숨을 쉬셨지만 난 속으로 기뻐했었다.


왠지 멋진 것 같잖아. 안경이라니.


브런치 글 이미지 5

하지만 햇수를 거듭하며 시력은 -6.6 까지 떨어졌고, 사춘기 소녀는 안경이 창피해졌다. 놀러 가거나 사진을 찍을 땐 렌즈를 꼈다. 소프트렌즈 컬러렌즈 등을 몇 년 끼다가 소프트렌즈 특유의 눈알을 꽉 잡는 느낌이 싫어서 고등학생 때부터는 하드렌즈에 정착했다. 가뿐한 느낌이 좋았다. 모래바람이나 먼지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죽음이었지만.


대학생활 내내 하드렌즈와 안경을 병행하고, 하드렌즈가 깨질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다시 사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임용고시생 신분일 때는 안경을 썼다. 나는 한 번 편안함을 느낀 것에는 유행과 트렌드에 굴하지 않고 정착하는 특성이 있는데, 위의 안경도 그랬다. 지금 보면 너무 촌스러운 갈색-얼룩무늬 안경테가 뭐가 그렇게 맘에 들었는지, 학생 때부터 안경테 바꿀 때마다 저런 안경테로만 골랐다.


2018년, 첫 학교로 발령받고 첫여름 방학 때 드디어 라섹수술을 했다. 친한 친구 중 엄청난 영업왕이 있는데 그녀가 신촌 수연세안과의 고일환선생님을 영업했다. 라섹수술 업계의 최고 권위자라는 말에 신뢰가 갔다. 온갖 부작용 사례를 찾아보며 최악의 경우 두 눈을 포기하고 살자는 다짐까지 했을 때, 진료예약을 했다. 몇 달을 대기한 후 검사 및 진료를 받았고, 여름방학에 맞춰 수술했다.




살면서 수술이란 걸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술대에 누워서는 너무 떨려서 오줌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워서 둘 곳 없는 손으로 브래지어 밑부분을 동아줄 잡듯 잡고 있던 기억도 난다.


며칠이나 유튜브로 연습했듯이, 수술대에 누워 초록색 빨간색 점만 죽일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칼 같은 것이 내 동공 위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는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그건 왜 유튜브에 안 나오나요.


오징어 타는 냄새가 조금 나더니 오른쪽 수술이 끝났다고 하셨다. 왼쪽 눈으로 기기들을 옮기는 사이, 오른쪽 눈을 가리기 전까지 아주 잠깐의 시간에. 기계에 써진 글자들이 ’ 읽혔다 ‘. 그때 ’와 씨 나 눈 좋아졌다.‘ 하며 흥분감이 차올랐다.




아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슬슬 마취가 풀리며 고통이 찾아왔다. 아주 자잘하고 날카로운 손톱조각들이 눈 안에서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2018년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온 해였는데, 나는 라섹수술 환자의 신분으로 에어컨이 있는 엄마방(안방)에 감금된 채 시원하게 고통을 즐길 수 있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하루종일 라디오만 들으며, 벽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그동안의 죄를 이 고통으로 주시는 건가요.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제발 이 고통을 제발 끝내주세요.’ 하고 매일 기도했다.


고통의 일주일을 보낸 뒤 슬슬 눈 뜨기가 가뿐해졌을 때부터, 나는 내가 태어나 스스로 선택한 일 중 이 일이 가장 잘 한 일임을 깨달았다. 잠에서 깨어나 손으로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 쓰지 않아도 바로 벽에 있는 시계를 볼 수 있다. 안경이 얼굴을 짓누르고 콧대를 짓누르지 않아도 옆으로 누워 핸드폰을 할 수 있다. 아침마다 하드렌즈를 닦아 눈에 끼거나 밤마다 하드렌즈를 뾱뾱이로 빼서 닦아 렌즈통에 넣어놓지 않아도 된다. 안경도 렌즈도 없이 온전한 내 두 눈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영업력이 부족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라섹수술을 적극적으로 권하진 못했지만,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수술도 잘 됐고 수술 후 회복도 잘했기 때문에(정말 일주일 동안 핸드폰과 TV 전혀 안 보고 라디오만 들었다.) 여전히 부작용 없이 양눈 1.5 이상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


5년 만에 안경을 버리며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을 다시 회상해 본다. 그때의 무거운 결심, 짜릿함, 고통, 환희.


블루라이트 차단 보안경을 다시 열심히 써야겠다.




이전 20화 1일 1버리기 19일차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