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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엉 May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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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울던 날



몇 년 전 발바닥에 번진 사마귀를 자가치료하려고 EM효소 원액을 샀었다. EM효소가 뭔지도 잘 모르지만 인터넷에 그게 좋대서. 뜨거운 물에 효소 원액을 한 컵 따르고 족욕을 매일 하면 사마귀가 없어진대서 무작정 구매했었다.


하지만 효소 족욕 같은 걸 매일 하기에는 내 정성이 부족했다. 귀찮았다는 말이다. 결국 저 효소 원액은 절반 이상이 남은 채 그대로 화장실에 방치되었다. 다행히 내 사마귀는 약국에서 산 치료제로 다 뿌리 뽑았다.



효소 원액을 버리다가 사마귀로 고생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20대의 나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어느새 사마귀가 생기곤 했다. 일을 하던 2020년이나 2019년에도, 임용 준비를 하던 2017년에도, 대학생이던 2015년과 교환학생이던 2014년에도. 컨디션이 안 좋다 하면 어느새 발바닥에 사마귀가 번져있었다. 사마귀는 나에게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20대에만 찾아왔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사마귀로 처음 고생했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어느 날 왼손 엄지손가락에 생긴 단단한 알갱이. 그게 순식간에 다른 손가락들과 손바닥, 오른손에까지 번졌었다. 그때부터 사마귀와의 전쟁이 십수 년간 재발되어 왔던 것이다.


20대의 내가 자가치료를 고집하게 된 것은 초등학생 때 병원에서 하던 냉동치료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드라이아이스 같은 걸로 내 사마귀(이자 내 살ㅠ)를 지졌고, 얼어붙은 사마귀(와 내 살ㅠ)가 일주일 동안 죽으면 그다음 주에 죽은 부분을 손톱깎이로 최대한 많이 잘라내고, 살아있는 남은 부분을 다시 지져서 얼렸다. 그 과정이 정말 기절하겠다 싶을 만큼 아프고 무서웠다.


지금은 내 눈에만 보이는 그때의 사마귀 자국.


병원 가기 전 날 죽어있는 사마귀 부분을 아빠가 손톱깎이로 잘라준 날이 있었다. 원래 아빠가 잘라줬었는지, 의사 선생님이 앞으론 집에서 자르고 오라고 숙제를 줬었던 건지, 엄마가 바빠서 아빠한테 시켰었던 건지 그런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은 아빠가 내 손을 붙잡고 손톱깎이를 들었다.


손톱깎이로 죽은 부분을 잘라내는 작업은 언제나 ‘죽은’ 부분과 ‘살아있는’ 부분을 넘나들기 때문에 아팠다. 지금이야 내가 내 감각을 예리하게 느끼며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아빠한테 내 손을 맡긴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빠 아프지 않게 해 줘. 이거 정말 너무 아프단 말이야. 아빠 제발 아프지 않게 조금만 잘라줘.”


그때 아빠가 울었다. 손톱깎이로 아주 조심조심 내 사마귀를 잘라주다가. “아빠가 대신 사마귀 났으면 좋겠다. 아빠한테 사마귀 다 옮고 오엉이 손에서는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면서 울었다. 그리고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자기 손에 사마귀가 다 옮았으면 좋겠다는 듯이.


나는 아직도 그날 이후로 아빠가 우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그 눈물은 헌신적인 사랑 그 자체였고,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100퍼센트의 신뢰를 느끼게 만들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 아빠는 나 대신 아파주고 싶어 한다. 아빠는 나를 지켜줄 사람이다. 단단한 메시지가 내 마음에 새겨졌다.








효소 원액 버리다가 20여 년 전의 소중한 추억이 떠올라 기록할 수 있게 되다니 감사한 일이다.


사마귀는 내게 고통의 역사였지만, 그로 인해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신뢰할 수 있게 된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사마귀는 2020년 이후로 날 찾아오지 않고 있다. 이 역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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