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도 추억이 있다
오늘은 쓸 데 없는 잡동사니들로 채워진 서랍 한 곳을 비워보려 한다.
진짜 n년째 열지도 않은 서랍인데 이곳에도 추억이 있을까?
저 2m짜리 충전 케이블은 안 버린다.
1+1로 왔는데 하나를 여전히 잘 쓰고 있기 때문에. 그 녀석이 수명을 다하면 이 녀석을 쓸거다.
이 충전 케이블을 영업해준 가이씨는 그당시 외롭고 힘든 수험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새 자기 인생의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았다며 결혼을 해서는 콩고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네.
Voila! 인생 참 알 수 없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받은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청포도 사탕과 스카치 캔디, 누룽지 사탕과 막대사탕, 그리고 캬라멜과 동전 초콜릿.
이것들을 가지고 내 조카는 우리집에 올 때마다 무수한 놀이를 만들어냈다. 저 사탕들은 우리가 넘어야 하는 장애물도 됐다가, 우릴 지켜주는 울타리도 됐다가, 미션을 깨면 받는 보상도 됐다가, 꼭 찾아내야만 하는 보석이 되기도 했다. 늘 자기가 이겨야하는 규칙으로만 게임을 만들어서 정말 피곤하기도 했지만, 사실 얘가 태어난 이후로 늘 내 맘 속에는 '나는 얘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 녀석이 아기였을 때, 우주같이 반짝이는 까만 눈이 내 마음에 그런 다짐을 심었다.
내게 그런 중대한 다짐을 심고 사탕으로 온갖 놀이를 만들어내던 대여섯살 꼬마가 이제 10대가 되었으니(..) 이젠 진짜.. 네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메이크업과 헤어에 신경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에이프릴스킨 슬림쿠션과 3초완성 곰손 섀도우, 나스 블러셔와 굴러다니는 아무 립틴트만 있으면 된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난, 곧죽어도 앞머리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것도.
30대가 되고 좋은 점은, 이제 '얼추' 나에 대해 알게 됐다는 거다.
잘 가, 내 인생에 다신 없을 메이크업 퍼프와 헤어롤아.
깨끗하고 넓은 서랍에
너무 오랫동안 쓰레기들을 묵혀놓고 살았다.
1일 1버리기의 끝이 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