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린 Apr 28. 2024

장애인이 쓸 수 없는 장애인 화장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 하나인 배설욕구을 장애인들은 채울 수가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중증의 장애를 이들은 신변 보조를 지원해 줄 사람이 없거나, 돌봄 받는 시간이 부족해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꾹  참는 경우가 빈번하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적부터 가족의 공백 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기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발끝에서부터 인내심을 끌어 모아 참았다. 그러다가 참아도 참아도 가족이 오지 않으면 치욕스러움을 견뎌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내가 살아야할 명분이 상실되는 것만 같았다.

지금은 활동지원사라는 분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어서 나의 배설 욕구는 어느 정도 해결은 되었지만, 화장실 갈 때마다 활동지원사 분이 물리적 힘을 많이 써야 하기에 화장실 가는 횟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건강을 위해 물을 많이 마시라는 의사의 경고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수분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나는 이 외침도 가뿐히  무시하고 있다. 무시한 덕분에 최근 들어 몸에 이상 반응이 조금씩 자주 느껴지지만 화장실에 자주 가서 활동지원사 분이 도저히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그만두는 게 더 힘든 일이다. 그땐 내 일상 전체가 무너져서 수습이 어렵게 되므로 나는 여전히 물을 하루에 반 컵만 마시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살인마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참을 수 없는 급X이다. 밤에는 혼자 자야 한다. 활동지원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너무 오래 혼자 살다 보니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잠을 잘 못 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면 8시간, 보통 7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이다.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므로 생각하지도 못한 새벽 시간에 급X이 마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머릿속은 지진이 난다. 참을 수 있는 X인가? 못 참을 X인가? 의사처럼 내 몸을 스스로 진단하고 없는 선택지를 만들어 낸다. 더 이상 참다가 대형 참사가 있기 전에 누굴 불러야 할 것인가?로 넘어가면 핸드폰을 집어든다. 한 참 갈등한다. 보통 이럴 경우에 그나마 제일 편한 친언니들 중에 한 사람을 부른다. 이마저도 왕래가 없어지고 내가 장애가 조금 더 진행이 되면서 언니가 케어하는 게 불안함이 느껴진 뒤(혹시라도 나를 옮기다가 넘어져서 다칠까 봐)로 부르는 것이 어려워져 미안한 마음과 염치없는 마음의 눈을 딱 감고 활동지원사 분을 부른다. 이런 나의 일상에 질러서 그만두시면 어쩌지?라는 두려운 마음을 하고서 최대한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급X이라서 유통기한 하루라도 지내면 절대 안 먹는다. 나의 속도 모르고 음식 낭비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잔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화장실 공포가 심한 내게 요즈음에 또 다른 공포가 생겼다.

근무하는 사무실이 아닌 외근이라도 나가게 되면 가장 큰 걱정이 장애인 화장실이다. 장애인 화장실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부피가 큰 내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적 확보가 된 장애인 화장실을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다. 때로는 여성 화장실 한쪽 구석에 있어서 들어가면 공간이 좁아서 문을 열고 볼일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장애인들은 수치심도 못 느끼는 동물인 줄 아는지 묻고 싶다.

요새 더 큰 문제는 어렵게 찾은 외부 장애인 화장실에서 위 사진처럼 변기 등받이 쿠션 형태가 급속도로 설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장애인 화장실에는 거의 설치가 되어 있을 정도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처음에 몇몇 군데 설치된 거 보고 나와 다른 장애 유형의 장애인들이 편하다고 해서 생기는 모양이다 하며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장애인 화장실에 등받이 쿠션이 설치된 걸 보고 나 빼고 다른 장애인들은 정말 편하다고 느낄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저 등받이는 경우에 따라 앞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구조도 있다. 튀어나와 있지 않더라도 나처럼 허리 측만증이 있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앉게 되면 몸이 앞쪽으로 쏠려 앞으로 넘어지거나 자세 균형을 못 잡아서 활동지원사 분이 더 힘들어진다. 얼마전에도 외부에서 장애인 화장실에 갔다가 등받이 쿠션이 설치된 변기에 앉았는데 몸의 균형을 못 잡아서 한 참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비장애인들도 불편할 거 같은데 왜 자꾸 설치가 되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생겨 개인 sns에도 성토하는 글을 올렸다. 처음 나의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와 다른 장에 유형을 가진 장애인들도 불편하다고 댓글들이 달렸다. 아........... 이게 무슨 장애인 편의시설인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용기가 생겼다. 조금 더 장애인들의 의견을 들은 후에 더 이상 무분별하게 설치되는 걸 막고 제거해 달라고 개선 요청 활동을 해야겠다.

나도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 욕구를 충족하며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삶의 네비게이션과 새로고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