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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럼 여름처럼 영화처럼 스물 번째!

벌새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대한민국 138분
개봉 2019년 08월 29일
감독 김보라


1. Opening 오프닝

이 영화는 1994년, 한 여름의 눅눅한 공기가 배어 있는 서울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여중생 은희는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끈적한 기운 속에서 숨을 고르며 벨을 누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손잡이를 잡고 덜컥거리게 흔들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진다.

엄마! 엄마! 문 열어줘! 나 왔다고!

대답이 없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문처럼 그 문은 묵묵히 은희를 밀어낸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숫자 902호. 잘못 온 것이다. 은희는 힘겹게 한 층을 더 오른다. 숨이 가쁘게 도착해 1002호의 초인종을 누른다. 이번에는 문이 열리고 엄마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짐을 받아 들며 말한다.

응, 왔어.

짧고 무심한 오프닝은 2 가지를 알려준다. 첫 번째는 우리의 시선은 이제 은희라는 여중생을 따라갈 것이라는 점. 또 한 가지는 이 영화의 화법이다. 이 영화는 은희의 불안감, 짜증, 외로움, 그리고 사랑 등 은희의 내면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은희에게 집은 포근한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엄마는 소리쳐 불러도 응답이 없다. 그 속에서 은희는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기보다 혼자 버티는 법을 먼저 배운다. 은희네 가족은 이 동네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메운다. 은희는 학교에서의 지루한 시간과 가게에서 일손을 돕는 바쁜 시간을 오간다.

4남매 중 막내인 은희는 웃음도, 울음도 속마음 깊숙이 숨겨두는 아이이다. 언니, 오빠, 심지어 부모와도 쉽게 마음을 트지 못한 채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하루를 지나친다. 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 단 하나, 은희의 눈을 환하게 반짝이게 하는 존재가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김지완. 그가 나타날 때면 은희의 세계는 잠시나마 여름의 초록빛으로 바뀐다.

이렇게 영화는 한 소녀가 세상과 어긋난 채 숨 쉬는 방식과 그 안에서 반짝이는 미세한 감정을 오프닝부터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은 그 순간부터 은희의 시선에 발을 담그게 된다.


2. 무엇이 은희를 숨 막히게 하는가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 학교라는 공간은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줄 세우기와 서열 매기기의 터전이었다. 학생들의 존재 가치는 성적표의 숫자로 환산되었고 한 줄의 등수는 곧 인생의 위치를 예언하는 듯 굳건히 박혀 있었다. 영어 시간은 상위반과 하위반으로 갈라져 이동수업을 했고 그 계단 위아래로 아이들의 마음에도 등급표가 매겨졌다. 교실은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감옥 같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실수록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한 지’라는 비교의 먼지가 폐 깊숙이 스며드는 곳. 그 숨 막히는 공기의 결을 영화는 단 한 장면으로 생생히 전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그러니 오늘은 죽음까지 첫 번째 날이다. 그 말이야!...... 오늘은 너희들을 위해서 날라리 색출작업에 들어간다. 지금 나누어주는 이 종이에다 날라리를 2명씩 적어내....... 자 외친다! 나는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간다!

이 대사에는 답답하고 억눌린 학교 분위기뿐 아니라 그 당시 교묘하고 교활한 어른들의 논리가 담겨 있다. 먼저, 거창한 문구로 아이들의 정신을 마치 철학적으로 깨우치는 듯 위장한다. 이어 ‘다 너희들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기만을 덧입히고, 마지막에는 구호를 외쳐 집단의 광기를 끌어올린다. 이는 단지 학교에서만 쓰이는 기술이 아니었다. 나치의 선동이나 ‘빨갱이 색출’과도 닮아 있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치밀한 구조였다.

은희가 숨을 쉴 틈은 집에서도 허락되지 않는다. 식탁 위는 밥 냄새보다 불만의 열기로 더 뜨겁다. 숟가락을 들기 전, 아버지는 진상 손님에게 당한 일을 욕설 섞인 목소리로 쏟아낸다. 그 분노는 이내 불쑥 방향을 틀어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도대체 너희들은 뭐 하고 다니는 거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자 심문이다. 또한 장남에게만 기울어진 편애는 말끝마다 묻어나고 식사는 긴장된 침묵 속에서 이어진다.

그 순간, 은희가 용기를 내어 말한다.

아빠, 김대훈(오빠)이 저 때렸어요!

그러나 그 말은 벽에 부딪혀 돌아온 메아리처럼 허공에서 사라진다. 아버지는 못 들은 척 젓가락을 움직이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아휴, 너네들 싸우지 좀 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시대의 폭력을 은희의 하루 속에 은밀히 녹여낸다. 그 폭력은 교실과 식탁을 오가며 은희의 숨을 옥죄고 결국 그녀의 몸에 신호를 보낸다. 답답함은 기침처럼 혹은 이유 모를 통증처럼 형체를 드러낸다. 은희의 가슴은 점점 조여 오고 세상은 좁아진 복도처럼 느리게 그러나 무심하게 그녀를 밀어붙인다. 결국 그것은 신체적 이상발현으로 형상화된다.


3. 새로 온 학원 선생님

오늘도 어김없이 무료하고 답답한 날. 학원 건물 계단에서 은희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성을 목격한다. 지금과 달리 이 당시만 해도 여자가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대놓고 욕하는 어르신과 여성 비하적인 발언과 인격모독적 발언을 단지 담배를 피웠다고 들어야 했던 시대이다. 이건 손숙 배우가 나온 연극으로 유명한 <담배 피는 여자>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이름은 김영지. 그녀와 은희의 만남은 별 거 아닌 일처럼 평범한 듯 보여도 대단한 배려와 따스함을 담고 있다. 우선 그녀는 은희가 노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싱긋 웃어준다. '너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느낌으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써서 통성명을 한다. '내가 오늘부터 이 수업을 맡은 새로 온 선생님이다'라는 일방적 통보가 아니라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처음 만나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이때부터 은희는 새로 온 한자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른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해도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그녀가 가르쳐 준 구절은 은희의 가슴에 와닿고 이것은 또한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의 힌트가 된다.

생각해 보면 중학생 때나 40이 넘어서나 타인의 마음을, 그 진심을 들여다보기가 가장 어렵다.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은희의 질문에 그녀는 진심으로 공감하며 응답해 준다. 마치 어릴 적 자신에게 말을 걸 듯 혼자만의 오래된 비밀을 공유하듯 말해주는 해결책은 이 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남는다.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그 말은 설명보다 느리게 위로보다 깊게 은희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누군가의 인생이 그 한마디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은희는 알았다. 그날, 계단에서 만난 한 사람 덕분에 세상은 조금 다른 색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을.


4. 박지후와 김새벽

등장인물이 꽤 많음에도 이 영화는 은희와 한자 선생님 김영지 둘의 이야기로 남는다.

이때 은희를 연기한 배우 박지후는 2003년생으로 촬영 당시 실제 은희와 같은 열다섯 살이었다. 단지 나이만 같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몸과 표정, 숨 쉬는 리듬 속에는 그 시절의 무게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작은 체구 안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놀랍다. 부드러운 곡선의 얼굴 선 속에 언제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려는 당돌함이 번쩍인다. 그녀는 은희를 통해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무표정은 차가움이 아니라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버티는 그녀만의 방식이다. 침묵은 무심함이 아니라 내면에서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정서의 온도이다. 그래서 은희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볼 때 관객은 그녀의 눈동자 속에 잠긴 고민들을 읽게 된다.

박지후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희를 연기하며 제 안의 진짜 나이, 그 시절의 혼란과 외로움을 꺼내 썼어요. 울고 웃고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오히려 그 속에서 제가 은희 그 자체가 되는 느낌이었죠.(출처: 씨네 21, 2019년 8월 20일 자, <벌새> 박지후 인터뷰)

김영지 선생님을 연기한 김새벽 배우는 특유의 투명하고 단정한 연기로 그 질문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녀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정서의 밀도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능력을 지녔다. 김영지는 시대적 배경과 맞닿은 인물이다. 1990년대의 답답한 공기 속 여성으로서 그리고 노동 운동가로서 살아야 했던 복합적인 굴레를 안고 있다. 자칫하면 전형적인 좋은 선생님의 틀 안에 갇히거나 혹은 시대의 피해자로만 소비될 수도 있었을 캐릭터이다. 그러나 김새벽은 그 인물을 단정하고도 자유롭게 숨 쉬게 만든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결코 흐릿하지 않고 단호하지만 절대 날카롭지 않다.

김새벽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영지는 은희와 같이 있지만 은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요. 그저 시간을 함께 쓰며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이고 제 안에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출처:씨네플레이, 2019년 8월 27일 자, ‘영화 <벌새> 김새벽 인터뷰)


영화 속에서 은희가 세상에 내놓지 못한 감정과 질문은 한문 선생님을 향할 때 비로소 표면으로 떠오른다. 은희가 이 영화의 얼굴이라면 한문 선생님은 그 얼굴이 버티도록 지탱해 주는 유일한 숨구멍이다. 은희의 눈이 세상을 향해 굳게 닫혀 있을 때 그녀는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그녀의 존재만으로 은희는 숨을 내쉴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성장담이자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교류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교류의 온도를 만드는 건 박지후의 눈빛과 김새벽의 숨결이다. 한 사람은 세상을 막 처음 마주하는 열다섯의 날 것 같은 떨림을 다른 한 사람은 그 떨림을 이해하고 지켜본 세월의 결을 품고 있다. 그 둘이 만나는 순간 화면 너머로도 그 온기가 고여든다.


5. Style 스타일

1) 세밀한 묘사
이 영화의 카메라는 큰 존재감을 내보이지 않는다. 대신 빛과 그림자, 손끝과 발걸음, 숨 고르는 사이의 정적 같은 미세한 움직임들을 포착한다. 은희가 가만히 고개를 숙일 때, 여름 바람이 나뭇가지를 조금 흔들 때, 부엌에 그릇들과 양념통들이 놓인 자리까지. 화면은 삶의 결을 확대경처럼 들여다본다. 이 세밀함은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은희 곁에 함께 앉아 함께 호흡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2) 일상적이지만 예리한 대사
이 영화의 대사는 특별히 멋을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고 건조하다. 그러나 그 건조함 속에서 불현듯 날카로운 진실이 드러난다. 친구와의 짧은 말싸움, 가족과의 무심한 대화, 선생님의 가벼운 농담 같은 것들이 한참 뒤에 가슴을 찌르는 기억으로 변한다. 한문 선생님이 은희에게 건네는 말들은 근엄한 교훈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조언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체온은 오래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대사 그 자체보다는 대사 사이의 공기가 가슴속에 남는 영화이다.

3) 시대적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는 이야기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시대적 먹구름은 분명 이 영화의 배경을 이룬다. 그러나 벌새는 그 시대의 비극에 휘둘리기보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피어오르는 개개인의 삶과 감정을 비춘다. 사회적 사건은 은희의 일기장 가장자리처럼 자리하지만 주인공의 시선은 여전히 학교, 골목, 친구, 그리고 마음을 열어주는 단 한 사람에게 향한다. 이 선택은 영화가 시대극이 되지 않게 한다. 다만, 어떤 시절에도 사는 건 결국 비슷한 고단함과 설렘이 뒤섞인 일이라는 깨달음을 남긴다.

4) 억지 성장과 신파성을 피해 가는 소녀 이야기
이 영화는 은희를 한순간에 어른으로 만들지 않는다. 상처가 단번에 깨달음을 주지도, 이별이 곧바로 성숙을 안겨주지도 않는다. 은희는 여전히 제 속도로 걸어간다. 때로는 같은 자리에서 오래 머물고, 때로는 뒤로 물러난다. 이 영화는 그 느림을 존중한다. 그래서 은희의 여정은 눈물로 마무리되는 성장담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그리고 어쩌면 평생 이어질 탐색으로 남는다. 관객은 그녀가 앞으로도 수많은 첫 경험과 이별을 거듭할 것을 안다. 그 예감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5) 색채
이 영화의 색은 과거 사진첩을 펼쳤을 때 느껴지는 누런 빛과 닮아 있다. 선명함보다는 옅고, 화려함보다는 눅눅하다. 벽지의 바랜 무늬, 공사장의 잿빛, 하굣길 골목의 붉은 벽돌색이 화면에 겹겹이 쌓인다. 이 색채는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라 은희가 사는 ‘공기'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공기는 시대의 무게와 소녀의 내밀한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다.

6) 낮은 시선의 고요한 카메라
카메라는 언제나 은희의 키높이에 머문다. 어른의 시선으로 내려다보지 않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낮은 카메라는 종종 문틈 너머로, 버스 창가로, 혹은 식탁 끝자락에서 삶을 엿보듯 서 있다. 움직임이 적고 호흡이 길기에 관객은 화면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직접 느끼게 된다.


7) 감독의 시선 – 기억의 온도를 지키는 법
김보라 감독은 이 영화를 자전적 기억에서 길어 올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독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기억을 관객이 자신의 기억처럼 느끼게 한다. 이것은 특정 사건이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그 시절의 공기와 질감을 온전히 보존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독의 시선은 어른이 된 후의 후회나 미화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체온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태도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숨결을 담은 영화로 남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여름 끝자락, 달궈진 아스팔트에 붙은 껌보다도 내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다시금 떠오르는 영화이다.


봄처럼 여름처럼 영화처럼 스물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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