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개요 모험 미국 156분
개봉 2016.01.14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alez Inarritu
1. 보는 이를 압도하는 영화적 체험
이 영화는 영화 시작부터 원주민의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하는 미국군인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떠한 사전적 정보 없이 날아드는 화살처럼 이 영화 속 이미지들은 보는 이를 기습하고 '헉' 하고 숨을 멎게 만든다.
무자비하고 잔혹한 총과 활의 싸움. 머리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 눈앞에서 터지는 탄환. 롱테이크와 스테디 캠의 적절한 조화는 전장의 현장성을 그대로 체감하게끔 만든다.
특히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주인공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곰의 습격' 장면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영화적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는 곰의 체취가 바로 코앞에서 느껴질 만큼 생생한 체감을 할 수 있다. 곰의 거친 숨소리는 카메라 렌즈에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주인공의 비명과 곰의 이빨과 발톱에 피가 흐르는 신체를 통해 충분히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생생한 현장 안으로 관객을 집어넣으며 강한 정서적 감응을 일으킨다. 끝났나 싶을 때 다시 돌아와 주인공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곰은 자연의 무자비한 야생성을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치 이 영화는 곰이 주인공을 찢겨 발기고 흔들어 재끼는 것처럼 당신의 마음을 최대치로 흔들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예고는 틀리지 않다.
2. 자연 그리고 원주민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조상들의 피다.
- 시애틀 추장의 연설 <땅의 온기는 팔 수 없다>
자연광으로만 잡아낸 황홀한 풍광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을 선사하며 관객들에게 끝없는 긴장감을 준다. 허나 이 영화 속 자연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숭고할 만큼 아름다우며 생의 순환과 죽음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곳. 강줄기의 물은 시간의 흐름이자 생명의 이미지, 그리고 죽음을 껴안는 운명을 뜻한다. 거기엔 오랫동안 그 땅을 지켜온 원주민들의 숨결과 지혜가 담겨 있으며, 억울하게 불태워지고 무참히 짓밟힌 영혼이 잠든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은 한없이 너그럽다가가도 한 순간 무자비하게 잔혹함을 드러낸다. 마치 복수에 불타는 영혼의 에너지처럼.
혹한과 눈폭풍, 낭떠러지와 강줄기. 주인공은 찢기고 피가 흐르는 몸으로 그 자연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의 뒤를 원주민 부족장이 쫓는다. 원주민 부족장은 딸을 미군들에게 빼앗겼다. 군인들은 그 지역의 원주민을 잔혹하게 죽이고 여자는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딸을 빼앗긴 부족장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을 심산이다. 그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3. 휴 글래스 (Hugh Glass)
그는 누구인가? 이 영화는 친절히 관객에게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이 영화의 시대배경과 장소에 대한 자막조차 없다. 대신 강렬한 이미지로 설명을 대신한다. 대사는 절제되어 있고 대화는 툭툭 끊기어 이어지지 못한다. 그는 과거에 어떤 연유로 미국 원주민과 사랑에 빠졌고 그의 아들은 그 사랑의 증표이다. 그래서 그에게 아들은 사랑의 결과이자 원주민과 그를 이어주는 존재이다. 그는 끊임없이 과거의 악몽에 쫓긴다. 불이 난 마을과 군인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아내. 그가 가진 상처는 그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이 영화를 해석하는 힌트를 보여준다.
영화 첫 오프닝. 스치듯 지나가는 이미지에 그의 과거가 있다. 마치 동굴 안 한 무리의 초식동물들처럼 꼭 붙어서 잠든 세 가족. 백인 남자와 원주민 그 사이 어린 아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들린다. 남자는 원주민의 언어를 사용한다.
괜찮아, 우리 아들.
알아, 빨리 끝나기만 기다린다는 거.
아빠가 있잖아.
아빠가 꼭 지켜줄게.
포기하면 안 돼.
알았지?
숨이 붙어있는 한 싸워야 돼.
그러니 계속 숨을 쉬렴.
총과 횃불을 든 한 병사 뒤로 집이 불타고 아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곧 쓰러진 아내를 껴안은 남자, 슬픔과 절망의 표정을 한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 업으로 비친다.
그의 이런 과거는 끊임없이 그를 원주민과 이어지게 한다.
그는 원주민과 피가 흐르는 고기를 나누어먹고 그간의 사정을 원주민 말로 고하고 그와 온정을 나눈다. 어떤 행운이 따랐는지 그는 아내와 같은 부족이었고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졌다. 그는 그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며 이렇게 말한다.
'복수는 신의 일이다.'
주인공 글래스를 살려준 원주민은 그다음 날 목이 매달려 있다. 그의 목에는 '우린 짐승이다'라는 팻말이 달려있다.
그는 군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죽인 자가 짐승인가? 죽은 자가 짐승인가? 이 영화에는 우리를 눈 뜨게 하는 자연의 법칙과 우리를 눈 감게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다.
4. 거짓과 배신 그리고 거래
- 누가 누구 것을 빼앗는가?
원주민 부족장은 미군들에게 빼앗은 사슴 가죽을 영국 군에게 팔며 말을 달라고 한다. 미군을 쫓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나 영국 군의 대장은 말은 절대 안 된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부족장은 이렇게 일침 한다.
"너희들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우리의 땅도, 동물도, 사람도, 모든 것을 말이야!"
거래는 처음부터 불공정했다. 원래 원주민들이 살던 땅에 외부인인 군인들이 찾아와 자기 것이냥 자연의 모든 걸 수탈해 갔다. 저항과 항의에도 거짓과 배신은 이어졌고 수많은 피를 흘리고, 생존과 싸움을 위해 또 다른 거래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글래스 또한 원주민에게 얻은 지혜로 미군들 편에 서서 생계를 이어가지만, 거래와 약속은 무용지물이 되고 동료에게 배신당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백인인 그가 원주민의 아픔과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처음엔 그도 이 고통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다. 곰의 가죽을 입고 총을 든 채 그 연유를 알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알몸으로 다시 태어나서야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다.
5. 생의 절벽 아래에 있는 것 그리고 부활
주인공 글래스는 곰의 습격에 이어 한번 더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원주민에게 쫓기어 말과 함께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말은 즉사했고 그의 몸은 바스러졌다. 해는 졌고 눈 폭풍은 몰아친다. 이때 그는 눈물겨운 생의 의지로 다시 태어난다. 죽은 말의 배안에서 웅크리고 밤새 눈폭풍을 피한 그는 태아처럼 알몸으로 나와 눈부신 햇살을 맞이한다. 이제 그에게 두려움은 없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그 이유만이 남았다. 그는 곰의 발톱으로 돌에 글자를 새긴다.
'피츠제럴드가 내 아들을 죽였다.'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글래스가 내뱉는 말은 '그래. 복수는 신의 몫이지.'이다. 그는 피츠제럴드의 목숨을 직접 빼앗지 않고 그를 강물에 밀어 넣는다. 강물은 그를 부족장의 손에 인계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글래스의 자아가 가해자인 백인에서 피해자인 원주민으로 바뀌었으며 너와 나의 처지가 같음을,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그가 지금껏 펼쳐 보였던 지형과 동물에 대한 지식 그리고 원주민 부족에 대한 정보는 그의 배경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겉은 백인 속은 원주민이라는 이중 자아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의 보호색 같던 곰가죽도.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피 묻은 땅만이 그간의 일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남은 것은 평안일까?
그는 아내를 떠올린다. 그는 다시 아내를 만난다. 아내는 숲으로 사라지고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다. 그에게 남은 건 아니 사라지건 고통스러운 과거일까? 그래서 그는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난 걸까?
어떤 이는 이 불확실한 결말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영화 속 과잉된 이미지만을 곱씰을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원주민의 말을 읽으면 당신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의 복수는 원주민의 복수이자 스스로에 대한 참회와 깨달음이다.
너의 가슴속에 죽음 이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살라. 죽음이 다가왔을 때, 마음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처럼 되지 말라. 슬피 울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 대신 너의 죽음의 노래를 부르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디언 전사처럼 죽음을 맞이하라.
-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류시화 엮음)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열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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