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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Mar 14. 2024

조울증 7년 차 (11)

또 다시 시작된 악몽

두번째 입원했을 땐 병식이 약해져 투약을 거부한 적이 많았다. 안정제가 필요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지만 간호사가 나를 만지려하면 성추행으로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간호사 선생님들 죄송합니다.) 갖은 설득 끝에 약을 복욕할 때마다 나는 속삭이듯이 한마디씩 했다.


"결국 아버지가 해결하시겠지."


여기서의 아버지는 역시나 기독교의 하나님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두번째 조증삽화 기간에도 역시나 종교적인 망상이 있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거나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들어오면 항상 하나님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팀장에게 연락해 병가를 요청하면서도 애플 주식이 급등할 것이니 빨리 사두라고 조언했다.(나는 그때 애플주식을 사고 손절하였다.) 그녀는 나의 헛소리에도 당황해하지 않았고, 나는 2개월의 병가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망상은 사라지고 병식이 돌아와 현실감각을 되찾았다. 약을 먹을 시간이 되면 더이상 거부하지 않고 병실에 앉에 순순히 약을 기다렸다. 며칠 뒤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주치의에게 퇴원을 요청했다. 그는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지만 답답한 병원에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자의로 입원했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는 필요 없었고, 무사히 퇴원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엄마의 차를 타고 돌아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친구는 일을 나가 있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재발했구나...'


나는 4년간 방심하고 살았다. 첫번째 악몽과 같은 기억들은 생각할 수 없을만큼 안정적으로 지냈기에 재발이란 건 커뮤니티에서나 보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재발했으니 더이상 단약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나는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했다. 하지만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첫번째 조증삽화 기간에 비해 크게 사고친 것은 없었으니 무사히 병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분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증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쉬는 동안 예전에 매니저로 일했던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들 걱정해주며 안부를 물었고 나는 아무일 없는듯 별일 아니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우울감을 느끼는 친구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어느날 퇴근할 무렵, 가스라이터 Y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매우 흥분된 상태로 자신을 일부러 피하는 것이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솔직하게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나를 통제하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내가 다시 정신병 오게 할거야."


그 저주섞인 말에 나는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떨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동물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두려움에 안절부절해 하고 있을 때 같이 일하던 친구가 무슨일이 있냐며 물었고 나는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만행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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