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게우장
나는 내가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겉모습을 단정히 가꾸고, 우아한 태도로 나를 지켜내려 애썼지만, 결국 나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스트레스가 몰려와서 그랬을까? 이번주는 유난히 식재료를 사들인다. 일주일동안 식구들이 다 같이 밥을 먹을 시간이 저녁밖에 없고, 매일같이 한가지 요리를 해먹고도 남을게 분명해서 냉동실에 들어가야하거나 버려야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ChatGPT에게 이게 스트레스랑 무슨 연관이 있냐 물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식재료를 자꾸 사는 건
-통제감을 되찾으려는 심리
-미래 불안에 대비하려는 본능
-음식으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
-즉각적인 만족을 통한 현실 도피
즉, 감정의 구멍을 뭔가로 메우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야.
라고 한다. 장황하게 설명하길래 요약해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를 해줬다.
오늘의 재료 전복도 이대로 뒀다간 활전복이 무색하게
냉동실로 갈 것 같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방 불을 켰다.
전복 내장으로는 전복죽만 끓일 줄 알았지 쪄먹을때는 그냥 버리기 일쑤였는데 포스트 코로나 시절 전복장 정식 파는 음식점에 가서 게우장을 영접한 후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사먹었었다. ‘왜이리 비싸’ 하면서도 그 게우장에 중독되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 으..
어디 가서 맛있으면 집에서 해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게우장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참기름 향은 나는데,, 이것을 생으로 갈지는 않았을텐데,,
간은 또 어떻게 하고, 또 매장에서 먹을 땐 어떻게 이 게우장이 무한리필이 되는건지도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우연히 다시 찾은 그 식당에서 게우장을 먹다가 드뎌! 깨달음이 왔다!!!!!! (별거 아닌데 유난)
마침 집에 쿠킹클래스 갔다가 사온 배즙간장이 있었고전복을 살짝 쪄서 내장을 분리한 후 내장과 전복찐 물과 맛간장 조금 넣고 갈아주면 될 것 같았다.
우리 식구 먹을거니 참깨도 듬뿍 갈아 넣고 참기름도 좀 둘러주고 하니 사먹는 것과 비슷한 맛이 났다.
처음 몇 번은 내장이랑 분리한 전복 살을 간장 넣은 물에 살짝 졸여보기도 했다. 아! 얘는 며칠간 담가뒀다 먹는 전복장 아니고 식당처럼 바로바로 내주는 따뜻한 전복장 스타일이다.
몇 번 이렇게 해먹다가 전복 자체가 짭짤하니 이 과정은 과감히 패스하기로 했다.
1쿼트 냄비에 갓지은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 덮어두고 김씨들을 불렀다. 울애기도 이건 너무너무 잘먹지. 더위에 지친 우리 김씨들 기력회복타임.
우리 애는 뜬금없이 엄마가 학교 급식실 조리사님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누누히 말하지만 엄마는 우리 집에서만, 가족들을 위해서만 밥을 하는거라고!
내가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 해왔던 것이 집밥이고 그럴싸하게 차려먹는거다. 오늘 하루 속상하고 지치고 힘든 날이었는데 저녁준비 하면서 아무생각도 안난게 신기하네.
저녁 한끼 대접할 가족이 있어서 다행인걸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볼까 하다가 오늘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요리라고 해야겠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