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11월 4주 글놀이 ‘월드컵’
저는 축구 응원에 진심입니다. 사실 축구뿐만 아니라, 무슨 경기든 응원하는 팀이 있으면 온몸을 바쳐 응원하는 쪽의 사람입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말하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중에 희-기쁨을 느끼는 데는 거의 불나방처럼 달려듭니다.
사람의 감정은 수없이 많습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인간의 기본 감정을 기쁨, 슬픔, 혐오, 놀람, 분노, 공포의 6가지로 크게 분류했습니다만, 뭉뚱그려 단어로 표현된 기본 감정은 우리 안의 미세하게 다른 감정 간의 차이를 잘 분간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NVC)’ 에서는 ‘느낌 말 목록(Feeling List)을 사용하여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화의 방법을 연습할 수 있게 합니다. 잘 보시면 느낌에 관한 단어가 나뉘어 있습니다. ‘욕구의 충족’을 기준으로 나뉘어있지요. 좋은 감정 나쁜 감정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내가 그 상황에서 원하는 ‘욕구’가 기준입니다.
월드컵 중계를 위해 얼마 전 티브이 앞에 우리 가족이 앉았습니다. 해야 할 숙제가 있었던 저는 아이들과 남편이 중계를 보는 동안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축구도 보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눈은 앞에도 뒤에도 달린 상태로 손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예민한 귀는 라디오 중계를 듣는 듯 집중하며 귓바퀴를 뒤로 돌려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즐거움’과 ‘참여’의 욕구가 아주 강했지만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느라 ‘성실’과 ‘효능감’이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욕심내는 상태였지요.
그러나 불나방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신 치우천황을 모티브로 한 붉은 악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용맹스럽게 회전의자를 180도 돌려 날아오르며 티브이 화면으로 점프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순간을 몇 번이나 맞았고,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열정적인(시끄러운) 제 고함소리에 안 그래도 축구에 관심이 없는 딸은 괴로움을 호소했습니다. 엄마가 ‘극대노’ 하는 모습에도 놀라긴 마찬가지겠지만, ‘극대희’를 표현하는 모습도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딸은 그 순간의 느낌이 어땠냐고 물으니 목록에서 ‘열받는’’짜증 나는’을 골랐습니다. 아들도 ‘열받는’을 골랐습니다만, ‘민망한’도 골랐습니다. 너무 시끄러워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 걱정되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지요.
이 상황을 비폭력대화의 문장으로 만들어 소통한다면,
“내가 엄마의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관찰)
나는 좀 민망함을 느껴요, (느낌)
왜냐하면, 나는 ‘배려’와 ‘질서’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욕구)
그래서 응원할 때 소리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부탁)
이렇게 소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2 아들과 함께 부탁의 문장을 만들어 보았더니 아이의 마음을 훨씬 더 잘 공감해줄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엄마의 흥과 열정을 인정(포기?)하며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잘 부탁할 수 있는 연습을 월드컵 덕분에 해보게 되었습니다.
양극의 조화는 두 쪽이 함께함으로 인해 각각의 특별함을 더 체험할 수 있게 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종 간 다양한 분야가 서로 융합하여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생산성을 발휘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 바로 창조적인 인재를 만드는 환경이다.
<좌뇌 우뇌 밸런스 육아> 261p , 차영경, 브레인스토어
월드컵과 비폭력대화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제 책도 관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경험하고 배우고 창조하며 또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남편과의 차이로 인해 뇌와 심리를 자발적으로 공부하며 공부의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딸은 축구를 좋아하는 동생과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만화 한 장 (월드컵이 만든 가족의 희로애락)을 창조해내, 엄마 브런치 글의 소재로 엄청난 도움을 주기도 냈습니다. 저는 글을 쓰며 불나방처럼 기쁨에 달려드는 순간이나 그 반대로 우울에 한없이 빠져드는 순간, 잠시 멈추고 나의 진정한 욕구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며 비폭력대화의 욕구 단어들로 내 마음을 연결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밤, 특별히 충족되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습니다.
‘희망’과 ‘감사’입니다.
12월 3일 12시, 그러니까 오늘 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완벽히 채워질 2가지 욕구가 기대됩니다. 아마 시간이 너무 늦어 아이들은 못 보겠지만, 저와 똑같이 축구 응원에 불나방인 친정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오셨으니 아이들 깨지 않게 입을 마스크로 가리고 무음으로 열심히 응원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승부와 관련한 자신의 욕구를 떠올려보시면 어떨까요?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