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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NZ한의사 Aug 31. 2024

엄마가 달러 샵에서 당긴 방아쇠…

돈은 되고 걱정은 안 되는 NZ 부. 자의 <돈. 걱정 환전소>

아침 일찍 병원 길을 나섰다.


2년 전쯤 팬데믹이 잦아들 무렵 아내는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었다. 그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그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점점 불편해져서 예약된 시간에 맞춰 손 전문의를 만나러 함께 가는 길이다.

20번 모터웨이, 엡섬 집에서 마누카우시티 외각에 있는 병원 까지는 차로 약 20분 거리이다.

조수석 아내는 애써 아닌 척하지만 내심 걱정이 많다. 그런 아내를 안심시키고 위로는 못 할 망정 나는 또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 야 만다.



핀잔 아닌 핀잔 같은


나는 어쩌다 통증 전문 한의사로 일 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클리닉은 오클랜드 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YMCA 커뮤니티 센터 안에 있고 대부분의 환자와, 고객들은 근. 골격 계 문제를 가지고 온다.

아내는 나의 비공식 VIP고객이다. 가끔씩 VIP를 대하는 나의 태도 때문에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이번에는 아내의 방아쇠 증후군이 문제다. (엄밀히 말하면,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다)


아내: 아…어떻 하면 좋을까… 수술하라고 하면 어쩌지…


한의사남편: 내 생각은 수술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유는… 수술할 정도로 심각한 것 같지 않고 내 환자 중에 그대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수술 후 신경이 예민해져서 손가락이 자주 저리는 후유증이 생겼거든. 내가 볼 때 그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너무 염려한 나머지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을 선택한 것 같아.

(아내를 그대라고 말한 것은 당신이라는 호칭을 단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어 서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였고 부부간에 당연한 여보, 당신이라는 호칭 대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익숙하다.)


아내: ………………


나는 아차 싶었다. 듣기에 따라 ‘그대도 너무 예민한 것 같아…’라는 뉘앙스로 들릴 수도 있다. 나는 아차 싶어서 급 수습에 나섰다.


한의사남편: 사실, 그대가 여기저기 아프다고 할 때 면 가끔씩 왠지 모를 압박감이 생겨. 명색이 한의사인데 가장 가까운 사람의 통증을 방치한다는 생각(?)과 건강을 너무 염려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불편한 감정이 들거든.


아내: 아… 그렇구나…근데 나는 병을 키우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주변 아는 언니들 보면 이런저런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 곧 다가올 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한의사남편: … 맞아. 건강에 대한 염려와 조심의 경계가 상당히 애매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야…


아내: …


한의사남편:

정리해 보니 내가 그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강과 통증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런 거였어. 평소 내가 가벼운 근, 골격 계 증상으로 오는 고객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나요?’라고 먼저 물어봐. 그러면 대부분 ‘당연히 그렇죠’라고 대답해. ‘그러면… 한 가지 부탁할게요.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 꼭 당신의 몸과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사실, 몇 번의 진료가 필요한지는 당신에게 더 많이 달려있어요.

당신의 몸이 말을 할 수 없어서 이런저런 통증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이거든요. 단, 몸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되, 패닉에 빠지거나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저, 당신 몸 안에 있는 힐러(생체 자가치유 시스템)를 믿고 가능한 편안하게 주무셔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 힐러는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돌며 일을 하거든요. ‘잠이 보약’이라는 말, 정말 맞아요. (현실적으로는 통증의 정도에 따라 양질의 수면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 좋은 수면을 위한 환경을 만들고 나쁜 습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내의 방아쇠 증후군을 유추해 보면 이렇다.


그녀는 한국에서 십여 년 동안 플로리스트로 일 했다. 생화를 다듬고 자르는 일은 막노동에 가깝다. 특히나 날카롭고 제법 묵직한 꽃가위를 쥔 손아귀 입장에서는 그런 3D업종이 따로 없다. 플로리스트의 손은 우아한 자태로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발레리나의 발이다. (물론, 아내는 베테랑 가정주부이기도 하다. 많은 중년들이 그러하듯이...)

아내는 이민 와서도 가끔씩 꽃집에 나가 일을 했다. 꽃 일은 그녀의 오래된 직업이고, 돈을 버는 것은 그녀의 취미다.


그 취미를 살려 달러 샵에서 도 꽤 오래 일을 했다. 그녀의 오른손 입장에서는 또 다른 3D업종이다. 달러 샵의 여러 가지 일 중에 그녀의 손가락을 괴롭게 하는 것은 단연 ‘프라이스 건 Price Gun’으로 수 백가지의 상품에 가격표를 붙이는 것이었다. 방아쇠 자체가 진짜 총처럼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반복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이 손가락 마디의 움직임을 돕는 힘줄에 무리를 주어 염증이 생기게 만들고 급기야는 마디 가까운 부분의 힘줄이 부어올라 마디를 움직일 때마다 딸깍 딸깍 걸리며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아내에게 무거운 볼을 손가락에 끼우고 던지는 텐 핀 볼링을 함께 하자고 했던 지난날이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

친목을 위해 골프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하고 열심히 연습시켰던 것도 미안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관심 가질 게… 클리닉에서 고객을 대할 때처럼…’

‘아내의 손이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돈 버는 것이 걱정 보다 취미가 되어버린 아내,

병원에서 만들어준 손가락 보조기구를 끼고 아들이 학비를 벌겠다고 나선 청소일을 도우려

오늘도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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