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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돈 Aug 12. 2024

뉴욕의 전통적 부자 동네 어퍼 이스트 사이드

뉴욕의 상류사회 이야기

세계 자본시장의 중심지 뉴욕에는 자연히 수많은 재력가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주거지가 센트럴 파크의 동쪽에 위치한 어퍼 이스트 사이드 (Upper East Side)입니다. 이제는 사회 계급이 없는 평등한 세상 됐다고 하지만,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부자들은 여전히 자신들끼리의 소사이어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며,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에 가고, 비슷한 자선 활동을 하며, 비슷한 유명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주말은 롱아일랜드 햄튼의 별장에서 지내면서 거기서 또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생활합니다. 


저는 뉴욕에 살면서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재력가 집을 가 본 기억이 딱 한번 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 아내가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일할 당시 그 회사의 고위층에서 신입 사원들을 부부동반으로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거든요.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도 최고 부자들이 산다고 하는 파크 애비뉴 (Park Avenue)의 어느 아파트였습니다. 힘 있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파크 애비뉴는 도로의 소음을 줄인다고 버스와 트럭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 분리대에는 계절마다 새 화단이 단장되고, 유명 미술가들의 설치 미술품들이 전시됩니다. 그 파크 애비뉴의 한 건물에 앞에 택시가 도착하니 번듯한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나와 택시 문을 열어 주더군요. 미스터 브라운스틴 댁에 간다고 얘기를 했더니 로비로 안내하며 에레베이터 버튼까지 눌러 주었습니다.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더니 근사한 웨이터 복장을 한 사람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를 준비한 고급 케이터링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문을 열어 준 이가 저희 외투를 정중히 받아서 옷장에 가져가자 그제야 집주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군요. 서로 인사를 한 후에 저희를 데리고 아파트 구경시켜 주었는데, 벽 여기저기 걸려 있는 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투어의 핵심 포인트였습니다. 집주인은 일 하느라 바쁜 사람이어서인지 미술에 그다지 조예가 깊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미술품은 그 이름도 유명한 소더비 (Sotherby) 또는 크리스티스 (Christie’s) 경매장에서 샀으며 그 작가들이 요즘 새로이 떠 오르는 아무개라는 설명을 열심히 하더군요. 주인이 미술품 설명을 하는 사이 웨이터 복장을 한 젊은 아가씨가 샴페인과 치즈 및 애피타이저를 들고 손님들 사이를 돌았습니다.  

고급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파크 애비뉴. 도로 중앙분리대에 화단이 조성돼 있고, 그 뒤에는 설치 미술이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곳 상류사회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입니다. 기가 죽어서 구석에서 혼자 미술품이나 감상하려던 제게 회사 간부의 부인 한 분이 접근하더니 자기소개를 하더군요. 저 역시 누구의 남편 자격으로 여기 왔으며 과학자라고 간단히 답을 했습니다. 보통 과학자라고 소개하면 상대방이 어색해하며 대화가 중단되는 일이 많은데, 이 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학의 어떤 특정 분야를 연구하느냐고 물으면서 계속 대화를 이끌어 가더군요. 저는 그분의 과학 상식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이 분은 16세 때 명문대학을 입학하고, 23세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수재 출신이더군요. 그런데 비슷한 수재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전업 주부로서 아이들 교육에 힘을 쏟는 분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다면서 상당히 많은 독서량을 소화하고 있었고, 또 남편의 사회 활동을 내조한다면서 상류 사회에서 열심히 사교 활동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저와 대화가 끝나고 한참 있다 보니 파티에 온 다른 사람들과 초현실주의 미술에 관해 열심히 대화를 하고 계시더군요. 


사회에서 부자 상류층 계급과 중산층이 확연히 분리되다 보니 뉴욕의 보통 사람들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재력가들의 삶을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서나 접하곤 합니다. 이 부류의 문학 작품으로 톰 울프 (Tom Wolfe)의 1987년 소설 <허영의 불꽃>이 유명합니다. 파크 에비뉴에 사는 월가 채권 투자자의 삶과 몰락을 다룬 소설인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 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날 파크 애비뉴 아파트에서 경험한 것이 그 소설에서 묘사된 장면들과 많이 오버랩됩니다. 뉴욕 상류사회의 파티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돈 버는 이야기만 한다면 천박한 인상을 주겠지요. 그래서 뉴욕 상류층들의 파티 주최 측에서 특별히 공을 들여 문학 및 예술계 인사도 같이 초청하는 장면이 소설에 묘사됩니다. 이렇게 해야 더 졸부 소리를 안 듣고 사회적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고급 아파트들 중에는 이사 오려는 사람들의 신상을 자세히 조사한 후 자신들과 격이 안 맞는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입주를 막는 곳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이 동네의 고급 아파트들은 거의 모두 코압 (Co-op)이라고 불리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압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주민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주민 대표들이 건물을 직접 운영하는 구조입니다. 무슨 운영을 하느냐고요? 일단 주민들에게서 관리비를 걷어서 그중 얼마를 경비원 인건비에 쓰고, 얼마를 아파트 수리 및 보수에 사용할지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건물 아파트에 이사 하려는 사람은 실제는 현 거주자에게 돈을 지불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코압에서 발행하는 건물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이 합의를 했어도 코압 이사회에서 지분을 못 넘기겠다고 나오면 계약이 불발되는 것입니다. 주로 비싼 관리비를 부담할 만한 자산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이외의 이유도 없지 않습니다. 거부당한 쪽에서 항의를 해도 코압 측에서 거부한 이유를 잘 밝히지 않습니다.


톰 울프가 <허영의 불꽃>을 쓰며 뉴욕 최고 부자들 연구를 열심히 했습니다. 울프가 상류사회 인사들을 열심히 인터뷰 한 후 뉴욕 최고 인기 아파트라고 지목한 42개의 “굿 빌딩”이 아직도 회자되는데, 모두 코압 아파트이고, 그중 37군데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새 건물들이 인기 있을 거라고 예상하겠지만 굿 빌딩들은 모두 50년 이상 된 건물입니다. 뉴욕의 최 상류층 사이에서는 아파트가 긴 세월 동안 쌓아온 평판을 중요시한다는 이유였어요. 아파트가 무슨 평판을 쌓느냐고요? 일례로 입주민들 중 돈만 많은 졸부들만 많다면 굿 빌딩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유명한 고급 아파트 “다코다”가 이 경우에 포함됩니다. 그곳의 입주민들은 전통적 평판을 쌓아 온 뉴욕 상류 사회 인사들 보다는 연예계 및 음악계 스타들이 많아서 굿 빌딩 리스트에서 빠졌다고 합니다. 반면 굿 빌딩에 포함된 이스트 리버 강가의 리버 하우스 (River House)는 입주민 평판을 극단적으로 관리한 케이스입니다. 코압 이사회에서 퇴짜를 맞은 유명인들 중 1970년대 미국 최고 여배우 다이앤 키튼 (Diane Keaton),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그리고 벤더빌트 가문의 유명인사 글로리아 벤더빌트 (Gloria Vanderbilt)가 포함 돼 있습니다. 이들이 간혹 좋지 않은 언론의 시선을 끈다는 이유에서 그들의 입주를 코압 측에서 막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의 결정은 극히 주관적입니다. 닉슨 전 대통령에게는 퇴짜를 놓으면서 그 및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의 원서는 승인을 해서 키신저가 여기서 오래 살았다고 하는군요. 


톰 울프가 굿 빌딩을 분석한 후 또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굿 빌딩들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신문 기사들이 가끔씩 보입니다. 그리고 이 빌딩들의 규율들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고요. 청바지나 체육복 차림이면 건물 로비로 출입을 금지하던 규정, 로비 탁자에 스타벅스 커피나 패스트푸드를 절대 못 내려놓게 하는 규정, 등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하네요. 동시에 이들 빌딩 코압 이사회의 고압적 태도를 불편하게 느끼는 부자들이 이제 어퍼 이스트 사이드를 벗어나 다른 동네에 새로이 지어진 건물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뉴욕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 상류 사회에서는 서로를 평가하는 일종의 잣대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톰 울프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더군요. 


“돈만 많이 번다고 결코 사회적 평판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부와 더불어 도덕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마다 중요시하는 도덕의 기준이 바뀝니다. 중세에는 신을 두려워하고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뉴욕의 최 상류층 비즈니스 리더들 중 자신이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강조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어요. 종교를 대체한 덕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선 활동이에요. 특히 뉴욕 상류사회에서 제일로 쳐 주는 것이 박물관 및 미술관 이사회 멤버십입니다. 그 이사회 멤버가 되려면 일단 그 단체들에 많은 돈을 기부해야 하고요, 거기에 더해 문화 예술적 식견도 많이 갖춰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밀집돼 있습니다. 5번 애비뉴 82가 인근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Metropolitan Museum)이 그중 가장 규모가 크며 잘 알려져 있어요. 이 박물관 이집트 전시실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인상파, 현대 미술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면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 바로 북쪽에 고급 개인 맨션처럼 보이는 건물은 노이어 (Neuer) 미술관입니다. 독일 및 오스트리아 미술품 전시로 유명한 곳인데요, 규모는 작지만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pt) 작품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거기서 북쪽으로 더 가면 89가에 솔로몬 구겐하임 (Solomon Guggenheim) 미술관이 나옵니다. 추상화 및 아방가르드 미술 전시를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입니다. 20세기 초반에 구겐하임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힐라 본 리베이 (Hilla Von Rebay)라는 화가가 구겐하임에게 유럽에 새로이 각광받기 시작하던 추상화에 관한 교육을 열심히 시킨 결과 이 미술관이 탄생했습니다. 그 결과 이 미술관은 미국 대중들에게 추상화를 처음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내부에서 하는 전시도 훌륭하지만 건물 자체가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의 대표작입니다. 현대적인 작품에 걸맞은 초현대적 디자인의 건물입니다. 그 이외에도 92가에 있는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103가에 위치한 뉴욕시 박물관 (Museum of the City of New York) 등이 5번 애비뉴 선상에 있습니다. 이렇게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 뮤지엄 마일 (Museum Mile)이라는 애칭이 생겼습니다.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이 동네 박물관이 사회 지도층을 끄는 또 다른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매년 5월 초 메트 갈라 (Met Gala)라는 패션 모금 행사가 웅장하고 화려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크게 열리는데, 미국의 패션, 연예, 스포츠, 정치, 경제계에서 돋보이는 인사 600명가량이 초대됩니다. 초대를 받는 사람들 중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은 일인당 7만 5 천불짜리 표를 구매하고 행사에 참가합니다. 최고의 유명 인사들이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차려입고 레드카펫에 나타나니 당연히 이 행사가 언론의 관심을 모읍니다. 보그 매거진 (Vogue Magazine)의 편집장 애나 윈투어 (Anna Wintour)가 거의 삼십 년간 이 행사 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완벽주의자이면서 전 세계 패션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애나 윈투어를 재밌게 묘사한 영화가 있는데, 2006년에 나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입니다. 그 영화 속에서 메트 갈라 행사 장면이 있습니다. 극중 행사에 참석한 턱시도를 차려입은 노신사가 윈투어에게 멀리서 눈인사를 먼저 합니다. 윈투어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 답례를 한 후 고개를 비서에게 돌립니다. 그 눈빛을 보니 그 노신사가 누구인지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 그 노신사가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정식 인사를 하러 원투어를 향해 걸어옵니다. 윈투어의 비서도 그를 기억 못 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영화의 주인공이자 윈투어 및에서 일하는 말단 여직원이 얼른 윈투어 귀에 중요한 정보를 속삭입니다.  


“지금 오시는 분은 프랑클린 대사님이고요, 그 옆은 대사님이 20년간 자신을 내조한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로 사귀는 여자친구 레베카입니다.” 


그 덕에 항상 완벽을 요구하는 윈투에게 말단 여직원이 크게 점수를 땁니다. 정보를 새겨들은 윈투어는 다가서는 여성에게 반갑게 먼저 인사합니다. 


“레베카아아아~, 그리고 프랑클린 대사님, 여기서 보게 되네요.” 


금년 메트 갈라를 다룬 뉴스를 보니 또다시 유명인사들이 총 출동 했더군요. 니콜 키드먼, 나오미 와츠, 에이드리안 브로디, 미셸 여, 스티브 연 (이상 영화배우), 그레타 거트위그, 소피아 코폴라 (이상 영화감독), 마리아 샤라포바, 세레나 윌리엄스, 비너스 윌리엄스 (이상 테니스 스타),  도나텔라 베르사치, 마이클 코어스 (이상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자 블룸버그 창업자), 등 전 세계적 지명도가 있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Jeff Bezos)는 25년 넘게 자신을 내조했던 아내를 버리고 새로 사귀는 여자친구 로렌 산체스 (Lauren Sanchez)를 데려왔다고 하고요. 이 모든 것이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벌어지는 뉴욕 상류 사회 풍경의 일부입니다.


애나 윈투어 (왼쪽)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매년 주최하는 메트 갈라 (Met G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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