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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돈 Aug 05. 2024

뉴요커들의 안식처 센트럴 파크

뉴욕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드는 것 딱 하나 꼽으라 하면 무엇을 들까요? 저는 주저 않고 센트럴 파크를 들겠습니다. 맨해튼의 59가에서 110가까지 이어지는, 길이 4 킬로, 넓이 0.8 킬로의 도심 공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가들의 건축물이 많다고 해도 만약 뉴욕이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 숲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저 또 하나의 삭막한 도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도심 곳곳에 정성스럽게 단장된 작은 광장들도 이 거대한 대도시의 인파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다행히, 뉴욕시가 점차 맨해튼 북쪽으로 팽창하던 시기인 19세기 초에, 더 늦기 전에 도심 공원을 조성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의 센트럴 파크 위치 한가운데에 뉴욕의 상수원에서 들어오는 물 저장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 시설을 옮기면서 공원 부지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외의 일부 지역에 흑인 및 아일랜드 이민자들 동네가 있었는데, 이 동네들을 철거하면서 공원 부지를 더 확보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부지에 들어설 공원 디자인을 공모했습니다. 그 공모전에서 뽑힌 것이 프레데릭 옴스테드 (Frederick Olmstead)와 캘버트 복스 (Calvert Vaux)라는 조경 전문가들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센트럴 파크 안의 모든 나무, 호수, 그리고 바위까지도 원래 그대로인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이 두 조경 디자이너의 계획에 따라 배치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조경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첫 번째 도심 공원입니다.  


이 공원 계획을 만든 옴스테드는 1847년에 영국에 조성된 버켄해드 공원 (Birkenhead Park)의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부자들이나 개인 단체들이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정원을 만들곤 했는데, 영국에서 처음으로 일반 대중을 위해 만든 공원이 베켄해드 공원입니다. 옴스테드는 그 공원에 영향을 받아 센트럴 파크 곳곳에 인공 호수들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호수들을 건너는 다리를 아기자기하게 배치해 놓았는데, 이제는 거기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멋진 호수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공원이 고풍스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다리를 비롯해서 1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 구조물 때문입니다.  


공원 내부 석조물의 대표작을 보려면 72가 입구를 통해 공원을 들어가 동서로 통하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공원의 중간쯤에서 도로 북쪽으로 작은 광장이 내려다 보입니다. 그 광장 한가운데에 천사의 동상이 있는 분수대가 있습니다. 이 광장을 베데스다 분수대 (Bethesda Fountain)라 부릅니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씩 천사가 강림하곤 했는데, 강림 직후 처음으로 연못에 뛰어드는 환자는 병을 치유받았다고 합니다. 이 광장의 분수대 꼭대기에 있는 천사 동상이 그 이야기를 다시 전합니다. 도로에서 그 광장으로 내려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도로에서 직접 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고, 또는 그 광장의 반대편에서 시작하는 계단을 통해 도로 밑으로 나 있는 굴다리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광장으로 향하는 그 두 통로가 하나의 거대한 석조물의 일부입니다. 그 석조물은 화려한 문양이 가득한 19세기 유럽 양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도로 아래로 만든 굴다리 입구는 로마 양식의 아치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안은 자세히 보면 벽과 천장이 화려한 문양의 타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공원을 지을 당시 미국에서 그 같은 타일을 만드는 곳이 없다고 해서 영국 유명 타일 업체에서 수입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긴 화려한 굴다리가 센트럴 파크 거리의 악사들에게 인기 공연 장소입니다. 음악이 석조 구조물에 울려 퍼지면서 음향의 효과가 배가 되고요,  로마식 아치 밖으로 보이는 분수대와 호수가 분위기를 더욱 띄워주는 효과를 냅니다.

베데스다 분수대. 그 뒤편으로 계단과 석조 다리가 보입니다.

센트럴 파크가 그저 수많은 유럽풍의 공원중 하나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센트럴 파크는 뉴욕의 발전과 더불어 이 공원 특유의 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안식처를 찾는 뉴욕의 부자들이 이 공원 주위로 몰려들며 멋진 건축물들을 지은 것이 크게 일조한 것입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화려한 건물들이 잔디밭과 숲, 그리고 호수 너머로 보이는 센트럴 파크 특유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공원과 그 이면의 도시가 어우러져 사진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 명소 하나는 센트럴 파크의 남동쪽 입구 근처에 위치한 더폰드 (The Pond)라는 이름의 연못입니다. 5번 애비뉴 플라자 호텔 옆의 공원 입구에서 고객을 기다리는 말과 마차들을 지나 걷다 보면 이 호수가 보입니다. 이 호수의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잘 조경된 공원의 나무들과 그 중간에 위치한 호수, 그리고 그 뒤편으로 마치 프랑스의 고성 같아 보이는 플라자 호텔이 보입니다. 1907년에 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진 뉴욕 최고급 호텔 중 하나입니다. 2008년에 호텔의 일부분을 아파트로 개조해서 객실 수는 줄었고 이곳에 상주하는 부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바로 뒤에는 1972년에 지어진 솔로우 (Solow) 빌딩을 볼 수 있습니다. 센트럴 파크가 막힘 없이 내려다 보이는 경관 때문에 맨해튼에서 사무실 임대료가 가장 비싼 건물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 건물들이 연못에 투영되는 장면을 수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매일 포착합니다.  

센트럴 파크 남쪽의 더폰드. 호수에 투영된 고풍스러운 건물이 플라자 호텔입니다.

센트럴 파크 남쪽 경계의 건물들은 아마도 뉴욕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일 것입니다. 언젠가 그 지역을 무심코 걷다 보니 갤러리 안에 20세기 미술의 거장 마크 샤갈 (Marc Chagall)의 작품도 보이더군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어마어마한 미술품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기를 왕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부동산 가격에 걸맞게 20세기 초반의 멋진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최근에는 센트럴 파크 조망권을 확보하겠다고 57번가에 초고층 건물들이 여럿 들어섰습니다. 이러면서 57번가에 새로운 별명이 생겼습니다. 빌리어네어스 로우 (Billionaires Row)라는 애칭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억만장자들의 길이라 할 수 있죠.


더폰드보다 더 큰 규모의 연못이 있는데, 72가 근처 베테스다 분수대 앞에 위치한 더레이크 (The Lake)라고 명명된 호수입니다. 베데스다 분수대 광장에서 호수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호수 동쪽 끝에 있는 로우브 보트하우스 카페 (Leob Boathouse Cafe)라는 레스토랑입니다. 창 밖에 보이는 호수와, 거기서 노를 젓는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아침 또는 점심 식사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전망이 좋은 만큼 조금 고급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건물 뒷편으로는 테이크 아웃으로 커피 및 간단한 음식물을 살 수 있게 되어있어 관광객 및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주민들이 이곳을 많이 애용합니다.  

센트럴파크 보트하우스

이 호수가에서도 센트럴 파크 주위의 멋진 빌딩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다수 있습니다. 그중 눈에 제일 뜨이는 건물로 뾰족한 타워 두 개가 우뚝 솟은 산 레모 빌딩 (The San Remo Building)를 들을 수 있어요. 1930년에 완공된 27층짜리 아파트 건물로서 그 당시 뉴욕을 대표하는 건축가 에머리 로스 (Emery Roth)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을 다시 해석해서 디자인 한 건물입니다. 뉴욕 전역에 훌륭한 건물들이 많지만 센트럴파크의 호수 건너편에 당당히 서 있는 멋진 건물들의 모습은 빌딩숲에 가려진 웬만한 건물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 건물 안에서도 센트럴파크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막힘없기에 재력가와 유명인사들이 많이 주거지로 삼고 있습니다. 산 레모의 셀럽 주민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타이거 우즈, 데미 무어, 브루스 윌리스, 보노, 더스틴 호프만 등이 있다고 하네요.  

더레이크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 레모 빌딩

더레이크에서 더 북쪽으로 이동하면 큰 저수지가 또 나옵니다. 80가에서 95가에 걸쳐 있는데요,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 저수지 (Jacqueline Onasis Kennedy Reservoir)로 명명돼 있습니다. 이 저수지 주위로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흙길이 나 있는데, 센트럴 파크 주위에 사는 주민들이 걷거나 조깅을 하는 장소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이 저수지에서도 맨해튼의 우아한 건물들이 다수 보입니다. 서쪽으로 제 눈에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두 개의 탑이 우뚝 솟은, 산 레모와 비슷하게 생긴 엘도라도 (El Dorado)라는 아파트입니다. 두 건물이 비슷한 이유는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건축가가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 저수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

도심 한가운데 이처럼 쾌적한 공간이 있으니 음악인들도 이 공간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세계적 인기를 누렸던 비틀스 마니아들에게는 72가 센트럴파크 서쪽 입구에 중요한 성지가 있습니다. 비틀스 팬을 이끄는 관광단은 일단 그 앞에 위치한 다코다 (The Dakota) 빌딩 앞에서 안내를 시작합니다. 1884년에, 이 지역에 아직 아파트가 없던 당시, 독일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지을 때부터 재력가들을 위한 럭셔리 아파트 건물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외부에서 봐도 화려합니다. 그 입구에는 아직도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보이고 19세기 양식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입구 옆에 가스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여기가 비틀스 (Beetles)의 존 레넌 (John Lennon)이 살았던 곳인데요, 그는 1980년 이 건물 앞에서 한 미치광이의 총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미망인 오노 요코는 아직도 다코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센트럴파크 72가 입구 앞에 위치한 다코다 빌딩. 존 레넌이 살던 곳으로써 비틀스 마니아들이 많이 찾습니다.

비틀스 마니아들이 그다음 향하는 곳은 그 옆 공원 입구에 위치한 작은 언덕 스트로베리 힐 (Strawberry Hill)입니다. 존 레넌이 작사한 1967년 히트곡 스트로베리 힐 포애버 (Strawberry Hill Forever)에서 따온 지명입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이매진 (Imagine)이라고 쓰여 있는 모자이크 문양의 바닥이 있습니다. 거의 매일 누군가가 그곳에 꽃을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매일 다른 음악인들이 와서는 그 앞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부릅니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 비틀스 노래를 듣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몰립니다. 저는 그곳을 수도 없이 많이 지나가 봤지만 비틀스 음악 이외의 곡을 연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더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구석구석마다 거리의 악사들이 보입니다. 베데스다 분수대 앞에는 주로 기타를 치는 거리의 악사가 있고, 다른 호숫가 앞에는 재즈 음악 밴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72가 베데스다 분수대에서 계단을 올라 남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석조물로 만들어진 반원형의 공연 무대가 하나 보입니다. 엘칸 나움버그 (Elkan Naumberg)라는 유대인 금융인의 이름을 따서 나움버그 밴드쉘 (Naumberg Bandshell)이라고 불리는 구조물입니다. 여기서 1905년 이후 매년 여름 주민들을 위해서 무료 클래식 음악 공연을 합니다. 주로 화요일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는데요, 시끄러운 퍼포머들은 귀신같이 사라지고, 조용한 청중들 사이로 감미로운 라이브 클래식 음악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답답한 실내 콘서트 홀에서 불편하게 앉아 헛기침 한다고 주위에서 눈총 받으며 음악 감상하는 것을 싫어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센트럴 파크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특히 편안하고, 감미롭고, 아름답게 들립니다.

나움버그 밴드쉘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악단

가끔씩 센트럴 파크에 아주 큰 인파가 몰릴 때가 있습니다. 규모가 큰 공연을 가끔씩 하는데, 주로 80가 근처에 있는 그레이트 론 (Great Lawn)이라는 잔디밭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년 뉴욕 필하모닉에서 여름에 날을 하루 잡아서 공연을 하는데 거기에 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역사적으로는 1980년에 당대 최고의 인기 듀엣이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 (Simon and Garfunkel)이 여기서 했던 야외 공연을 했었는데, 거기에 50만 인파가 모인 것이 최고 기록이라고 하네요. 웬만한 중간급 도시의 인구가 그 잔디밭에 모여든 셈입니다.  


저는 매일 자전거를 이용해서 일부러 센트럴 파크를 통과하며 출근을 합니다. 처음 페달을 밟기 시작할 때는 도로 교통상황과 날씨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72가를 통해 공원에 들어서면서 마치 도로의 먼지가 시원한 빗물에 쓸려가듯 나쁜 기분들은 싹 사라집니다. 계절에 따라 색을 바꾸는 공원의 울창한 숲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이른 아침부터 공원에서 조깅하는 건각들을 보며 힘을 내고, 동네 할머니들이 데리고 나온 반려견들을 보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아침 햇살을 반사하는 공원 주위의 고층건물에 경탄을 하고, 잔디밭 너머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보며 우리에 앞서 이 도시를 건설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또 활기찬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 공원이 제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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