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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돈 Jul 29. 2024

뉴욕 미드타운의 건축과 미술

시대와 함께 바뀌는 건축 양식이 한 곳에 모인 곳

맨해튼의 미드타운이라 하면 30가에서 59가까지의 지역을 지칭하는데, 그 무엇보다도 초고층 건물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분명 뉴욕 역사 초기에는 맨해튼 남단의 월가가 금융의 중심지였고, 1900년대 초반까지는 월가를 중심으로 고층 건물들이 먼저 들어섰습니다. 그러다가 도시에 변화가 왔습니다. 뉴욕 금융계에 종사하며 스스로를 "월가"에서 일한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미드타운으로 출근합니다. 1930년대 이후 많은 금융 기업들이 미드타운으로 이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어느덧 이곳은 고층건물들의 숲으로 변모했습니다.


어떤 동네가 미드타운처럼 발전하려면 공공 인프라가 중요한 역할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이 동네에 수많은 금융 회사와 로펌이 이사 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고 이곳이 월가 보다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교외에 살면서 기차로 출퇴근하는 상당수가 미드타운에 위치한 두 개의 기차역을 이용합니다. 그 하나가 그랜드 센트럴 (Grand Central) 역인데 42가 파크 에비뉴에 있습니다. 맨해튼의 북쪽에 위치한 웨스트체스터 (Westchester)가 학군이 좋다는 평판 때문에 화이트칼라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보니 금융 및 법조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무직 근로자들이 이 역을 출퇴근에 이용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러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많은 회사들이 그랜드 센트럴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미드타운은 다양한 종류의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요, 개별 건물 양식은 나름대로의 원칙과 철학을 따릅니다. 일단 공공건물들을 권위를 풍기도록 지어야 합니다. 어떻게 지으면 권위가 생기느냐고요? 일단 석조건물이어야 합니다. 고대로부터 계속된 서양 문명을 한 번 보십시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신전을 석조건물로 지었습니다. 그 이후 지어진 그리스 파르테논의 신전, 그리고 로마에 유적으로 남은 신전들, 모두 석조건물입니다.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유럽의 대성당들도 모두 돌로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수많은 공공건물도 그리스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돌기둥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신전에 버금가는 권위를 세우겠다는 의도 때문입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랜드 센트럴 역 자체도 밖에서 보면 마치 프랑스 파리에 있을법한 장엄하게 생긴 석조 건물로 지었습니다. 이 역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영향력이 지대하던 미술학교 에꼴 데 보자르 (Ecole de Beaux-Arts)에서 가르치던 건축 양식 (보자르; Beaux-Art)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건물 외벽 정면에서 보면 꼭대기에 시계가 있고, 그 위에 로마의 신 머큐리 (Mercury)의 석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맨해튼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파크 에비뉴를 막고 서 있어서 더욱 눈에 띕니다. 내부도 아름다운데, 천정은 무려 43미터 높이이며, 그 천정에 별자리들을 그려 놓고, 별이 있는 위치에 작은 전구들을 달아 놓았습니다. 내부 분위기가 화려하니 그 안에 훌륭한 식당과 술집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단 메인 홀 양쪽 편에 근사하게 생긴 석조 계단이 있는데, 이것을 따라 올라가면 칵테일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보자르 양식의 석조건물인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

미드타운에는 19세기 프랑스 풍의 보자르 양식 건물들이 몇 개 더 있는데,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공공 건축물들입니다. 그랜드 센트럴에서 5번 애비뉴 (Fifth avenue) 쪽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뉴욕 공립 도서관 (New York Public Library)이 그중 하나입니다. 장엄한 인상을 주는 하얀 대리석이 외벽을 이루고 있고요, 5번 애비뉴 입구 양 옆에 위치한 하얀색 대리석 사자 석상이 건물의 위엄을 더 높여주는 효과를 줍니다. 공공 도서관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도서관 뒤편에는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녹지 공간이 있습니다. 브라이언트 파크 (Bryant Park)라고 불리는 곳인데요, 잔디밭과 의자들이 있어서 고층건물이 빽빽한 도심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합니다. 날씨가 좋을 때에는 이 공원 내부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들이 손님으로 가득 찹니다. 겨울에는 이곳에 크리스마스 선물 판매하는 시장이 한시적으로 들어섭니다. 


한인 타운이 있어서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32가에도 과거에 출중한 보자르 양식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또 다른 통근 기차역 펜 스테이션 (Penn Station)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뉴욕의 서쪽에 위치한 뉴저지, 그리고 동쪽에 위치한 롱아일랜드 (Long Island)에서 오는 통근 기차들이 이 역으로 들어옵니다. 원래 지어졌던 역사가 그랜드 센트럴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멋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기차역이 재정 적자로 문제에 봉착하자 이를 해결한다고 1963년에 그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을 허물고 사무실 임대료 수입을 올릴 수 있는 현대적 철근 콘크리트 건물과 스포츠 경기장 (메디슨 스퀴에 가든; Madison Square Garden)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권위를 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유명한 건축 역사학자의 말 한마디가 이를 대변합니다. 


            “전에는 신이 강림 하듯 뉴욕에 도착했었는데, 이제는 지하로 쥐새끼처럼 옵니다.” 


수십 년간 쓰이던 이 역에 대한 평이 하도 나빠서 그 옆에 우체국으로 쓰이던 그리스 양식 석조건물을 몇 년 전에 개조해서 역의 일부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분위기가 조금 개선됐습니다.


옛 펜 스테이션 역을 허물 당시 재정 적자에 신음하던 그랜드 센트럴도 비슷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계획이 살짝 바뀌어서 고층 건물을 역 건물 뒤쪽에 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959년에 지어진 것이 8 각형의 메트 라이프 (Met Life) 빌딩입니다. 현대 건축물들 중 흉물이 많지만 메트 라이프 빌딩은 건축미가 돋보이는 건물입니다. 르네상스로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새로운 건축 양식이 그리스 로마의 양식을 계승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변해 왔습니다만, 20세기 중반부터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듯 그리스식 석조 기둥, 신의 조각 같은 장식물들을 완전히 배재한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까지 소위 인터내셔널 스타일 (International Style)이 유행했는데요, 단순한 기하학적 건물 모양에다가 동일한 창문 모양이 계속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습니다.


인터내셔널 스타일 건물로서 또 유명한 것이 유엔 사무국 (UN Secretariat) 빌딩입니다. 그랜드 센트럴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나오는 이스트 리버 강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52년 완성된 건물인데 직사각형의 건물 모양에 초록색 창문이 계속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었는데, 이 디자인이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건물 디자인도 훌륭하지만 탁 트인 녹지 위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는 듯합니다. 맨해튼에는 주위 건물에 가려서 그 빛을 못 보는 훌륭한 건물들이 많은데, 이 건물은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인터내셔널 스타일로 지어진 유엔 사무국 건물

그랜드 센트럴 역 북쪽으로는 1990년대 이후에도 새 건물들이 계속 들어섰습니다만 그중 관광객들의 이목을 끄는 특별한 건물들은 드문 편입니다. 5번 애비뉴 50가 이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오지만, 유명 건축물 감상하러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은 까르티에, 티파니, 미키모토, 반 클리프 아르펠스, 롤렉스, 오메가 등등 세계적 명품점을 찾아오는 겁니다. 티파니 보석점이 입주해 있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검은색 고층건물은 1980년대에 지어진 트럼프 타워인데요, 이 건물 앞에는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간혹 보입니다. 그런데 건축미를 감상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뉴욕의 유명한 부동산 개발 업자로 시작해서 미국 대통령까지 역임한 도날드 트럼프의 뉴욕 집이 여기에 있다고 해서 오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뉴욕이 낳은 희대의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이 건물에 잘 오지 않습니다. “돈이면 뭐든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은 사람이 상업의 도시 뉴욕 분위기에 딱 맞을 듯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한 행동들이 뉴요커들의 지탄을 많이 받았거든요. 미국 동북부 엘리트를 배격하고, 또 특종 종교나 인종을 나쁘게 말하는 그의 발언들이 이민자의 도시 뉴욕에서 많은 반발을 가져왔습니다. 2020년 대선 때 트럼프가 뉴욕에서 득표한 비율이 23% 라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국민의힘의 광주 득표율, 또는 민주당의 대구 득표율과 비견됩니다. 결국 트럼프는 퇴임 후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플로리다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맨해튼의 건축이 시대를 따라 계속 바뀌었지만 제 생각으로는 뉴욕을 가장 잘 대표하는 스타일은 아트 데코 (Art Deco; 프랑스어로 아르 테코) 양식입니다. 1920년대 들어서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건축 양식인데요, 그 당시 미술계에 들이닥친 변화가 건축계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생긴 결과물입니다. 20세기 이전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 한 인물 조각과 화려한 문양이 가득한 건물을 지었다면 아트 데코 건물은 1920년대 들어서 달라진 아름다움의 기준이 적용됐습니다. 어떻게 미의 기준이 달라졌냐고요? 일단 미술계에 피카소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사실적인 그림보다는 네모, 동그라미, 세모 등 기하학적 모양을 많이 사용하는 큐비즘 (Cubism)을 유행시켰습니다. 거기에 영향을 받았는지 뉴욕의 아트 데코 건물들은 큐브 조각 여러 개를 붙여 놓은 모양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 벽면에서 그리스 신의 사실적 조각들이 점차 사라진 반면, 아트 데코 건물 벽면에 간혹 남아 있는 조각들은 조금은 더 단순화되고 만화 같은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1920년대라 하면 자동차가 널리 퍼지면서 세상을 바꿔놓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이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트 데코 건물들에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직선 문양이 자주 보이는데, 1920년대 자동차 디자인의 영향이라고 하는군요. 


뉴욕 미드타운은 아트 데코 양식의 고층 건물들 때문에 아직도 이곳 특유의 분위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트 데코 건물이 유행하던 1930년대에는 고층 건물을 짓는 도시가 뉴욕 이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아트 데코 건물 중 아마 제일 유명한 것이 그랜드 센트럴 역 가까이 있는 크라이슬러 빌딩 (Chrystler Building), 그리고 펜 스테이션 가까이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일 것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조금 더 높고, 또 크라이슬러 빌딩과는 달리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어서 더 주목을 받습니다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크라이슬러 빌딩에 대한 호평이 더 많습니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또는 크라이슬러 빌딩과 비슷한 모양의 건물을 찾기 힘들다 보니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이들 건물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거대한 고릴라가 뉴욕에 끌려와서 탈출한다는 소재를 담은 영화 <킹콩> 원작을 보십시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 킹콩은 뉴욕을 상징하는 건물을 기어 올라갑니다. 당연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입니다. 


뉴욕에서 관광객을 끄는 미드타운의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록펠러 센터입니다. 48가에서 51가에 걸쳐 14개의 아트 데코 양식의 빌딩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20세기 들어서 세계 석유산업을 독점해서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됐던 존 디 록펠러 (John D. Rockefeller)가 1930년대 초 록펠러 센터를 지었습니다. 건물은 아트 데코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이곳이 관광객들을 끄는 이유는 건물 건축 양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관광객들은 그 건물 사이에 만들어 놓은 훌륭한 도심 공간에 주목합니다. 록펠러 센터 한가운데에 있는 광장을 향하는 입구에 겨울철에는 하얀색 금속 재질로 만든 천사 조각들을 줄지어 놓아 화려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시킵니다. 그 길을 빠져나오면 록펠러 센터 플라자가 나옵니다. 매년 12월 그 유명한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여기 세워집니다. 그 앞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아이스 스케이트장이 있습니다. 원래 여기 입주한 가게들이 대공황 때 많이 망하는 바람에 1936년에 간이 시설로 스케이트장이 들어서게 됐는데요, 이곳이 관광 명소가 되면서 영구 시설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스케이트장에서 특히 눈을 끄는 것이 신의 뜻을 거스르며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전해 주었다는 금빛의 프로메테우스를 조각상입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큰 발전의 및 거름이 됐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불의 발견에 버금가는 혁신이 인류 역사상 수없이 많았습니다. 전기를 널리 보급하는데 일조한 토마스 에디슨 동상을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서양 예술 세계에서는 예로부터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경에서 소재를 많이 찾아왔습니다. 록펠러 센터도 그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죠. 

록펠러 센터의 아이스 링크와 프레메테우스 동상. 그 뒤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콤개스트 빌딩이 보입니다.

그 이외에도 록펠러 센터와 5번 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란티스 조각이 있습니다. 근육질의 아틀라스 (Atlas)가 제우스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벌을 받아서 천구를 들고 있는 조각인데요, 사실적이지 않고 약간은 만화 같은, 전형적인 아트 데코 양식의 조각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틀라스가 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니, 새로운 과학을 통해서 인류에 공헌한 측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비슷한 존재입니다.


아틀라스를 조각한 예술가가 만든 또 하나의 조각이 콤캐스트 빌딩 앞에 있습니다. 이 조각도 만화 같이 단순화 시킨 근육질의 그리스의 신을 표현했는데 컴퍼스로 원을 그리는 것이 과학과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너희 시대를 굳건히 지탱하리라"


이쯤 하면 예술과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록펠러 가문의 철학이 엿보입니다.

록펠러 센터 콤캐스트 빌딩. 30 록펠러 플라자 빌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콤캐스트 빌딩은 록펠러 센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데요, 표를 사면 그 꼭대기 전망대를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전망대가 있는 고층건물들이 꽤 많아졌고, 더 최근에 지은 건물들은 그 시설이 더 훌륭한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록펠러 센터는 그 위치 때문에 뉴욕의 대표적인 스카이라인 사진을 찍기 아주 좋습니다. 남쪽으로 보면 가까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멀리는 월가 이남까지 보입니다. 북쪽으로는 센트럴 파크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전망 좋은 것으로 따지면 이곳이 정말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록펠러 센터에서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유명한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 (MOMA)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존 록펠러의 며느리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Abby Aldrich Rockefeller)가 돈을 대서 1929년 만든 박물관입니다. 세계 최고 부자의 며느리가 만들었으니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미술품을 수집했습니다. 이곳의 소장품 중에는 20세기 초 가장 인기 있었을 듯한 작품들이 즐비합니다. 피카소, 반 고흐,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등의 유명한 작품들이 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애비 록펠러가 미술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으니 록펠러 센터를 지을 당시에도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고 하네요. 그중 하나가 벽화를 그릴 미술가를 소개한 것입니다. 원래 애비의 아들 넬슨 록펠러 (Nelson Rockefeller; 훗날 미국 부통령 역임)가 작품을 의뢰하기 위해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접근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애비 록펠라가 자신이 후원하던 멕시코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를 추천했어요. 이렇게 해서 리베라는 록펠러 센터의 RCA 빌딩 (지금의 콤캐스트 빌딩) 로비 안에 <크로스 로드에 있는 인간>이라는 벽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곧 이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리베라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벽화는 그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표현했거든요.  


리베라가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을 재벌집 며느리 애비 록펠러가 몰랐을까요? 저는 모를 리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치성향을 바탕으로 작품을 판단하지 않아요. 최고의 예술가들은 미치광이 기질이 있다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면서 그 독특한 시각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정신병을 앓던 반 고흐는 하늘의 별들을 마치 소용돌이처럼 표현해서 주목을 받았고, 피카소는 사람의 얼굴을 여러 각도의 시각에서 동시에 표현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작가가 반쯤 정신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한 번쯤 들게 됩니다. 자본가인 애비 록펠러가 리베라의 작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뒷골목 불량배 혁명분자들이 남의 집 담벼락에 낙서하듯이 벽화를 그립니다. 그 대부분이 흉물이지만 리베라는 이를 극단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벽화에는 수백 명의 등장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2차원의 평면에 수백 년 동안 계속된 혁명의 서사시를 표현했어요. 한쪽 코너에는 억압받는 자 위에 군림하는 자본가와 독재 권력이 있습니다. 다른 쪽 코너에는 그들이 일으키는 전쟁과 살상 행위도 표현됩니다. 정 중앙에는 머리색이 노란 미군이 핵무기 장치를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바로 오른편에 인민들의 손을 잡은 혁명가가 있습니다. 애비 록펠러가 리베라의 이러한 시각에 동조할 리는 없었지만 멕시코의 사회주의자가 세상을 저런 독특한 시선으로 보는구나 하면서 애비 록펠러는 그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Man, controller of the universe>. 록펠러가 폐기한 <크로스 로드의 이간>을 다시 그린 것으로 현재 멕시코 시티 박물관에 있다. 

이 벽화가 거의 완성되던 어느 날 건물 내부 공사 중 사고로 작품 위에 페인트가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비싼 대작이 손상됐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이 이를 살펴보러 오게 됐지요. 페인트가 떨어진 위치를 잘 살피던 누군가가 벽화 안에 그려진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의 얼굴을 알아봤습니다. 자본주의의 중심지 뉴욕 한복판에 레닌을 찬양하는 벽화를 만들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곧 나가게 됐고 이 때문에 여론이 들끓게 되자 문제는 애비 록펠러의 손을 떠나게 됐습니다. 애비의 아들 넬슨 록펠러가 처음에 레닌의 얼굴만 지워 달라고 점잖게 편지를 보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온갖 설득과 협상을 하다 양측의 감정만 더 상하게 됐습니다. 결국 록펠러 측에서 화가에게 돈을 지불하고 원래 벽화는 부숴 없애 버렸다고 합니다. 그 위치에는 현재 스페인 벽화가 호샙 마리아 서트 (Joseb Maria Sert)의 작품이 대신 걸려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 멕시코 시티 방문할 일이 있어서 그곳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들을 열심히 보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부숴져 없어진 줄 알았던 <크로스 로드의 인간>을 한 박물관에서 발견했습니다. 록펠러가 자신의 작품을 파괴했다는 얘기를 듣고 원작보다는 조금 더 작게 작품을 다시 그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구석에 하나 더 추가한 것이 존 록펠러 주니어 (애비 록펠러의 남편) 얼굴입니다. 사악한 자본주의자들 사이에서 제일 사악한 표정의 인간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자 멕시코인의 시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미국에 피해 의식이 있는 멕시코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국제화와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겠다는 록펠러 센터의 중심 콘셉트와는 맞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미드다운이란 누구에게는 일하러 가는 곳이고, 누구에게는 관광 명소입니다. 여기에서 소개한 보자르, 아트 데코, 인터내셔널 스타일 이외에도 그 이전에 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물들도 많이 보입니다. 지난 150년간 계속 바뀌어 온 다양한 그 건축양식의 변화가 이 도시의 긴 역사를 보여주면서,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록펠러 센터에서 강조하는 인류 문명의 꾸준한 발전 과정을 맨해튼 미드타운의 다양한 건축 양식들이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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