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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형돈 Jul 01. 2024

브루클린 브리지의 건너편

뉴욕에서 떠오르는 이색적 동네들

뉴욕을 방문하는 수많은 여행객, 그리고 뉴욕을 묘사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맨해튼을 뉴욕과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뉴욕에는 맨해튼 이외에도 네 개의 행정구역이 더 있습니다. 브루클린 (Brooklyn), 퀸즈 (Queens), 브롱스 (Bronx),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 (Staten Island)입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일례로 이스트 리버 (East River)를 볼까요? 이 강은 허드슨강의 지류로서 맨해튼의 동쪽을 따라 흐르지만 브롱스, 퀸즈, 브루클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맨해튼 중심적 시각에서 이를 이스트 리버 (동쪽 강)라 부릅니다. 


뉴욕에서 맨해튼이 차지하는 위상은 물론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계 최대 자본가들이 최고의 건축가들을 고용해서 지난 백오십 년 동안 당대 최고의 건물과 공간을 지어 왔으니까요. 하지만 맨해튼 밖에도 사람을 끄는 곳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브루클린입니다. 거기에는 맨해튼에 없는 어떤 구수한 분위기가 나거든요. 맨해튼은 끊임없이 돈 잘 버는 외지인들이 이주해 사는 곳입니다. 반면 자자손손 뉴욕 사투리를 쓰며 사는 사람들은 브루클린에 몰려 있습니다. 백여 년 넘게 변하지 않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최근에 새로 떠 오른 동네도 있습니다. 


브루클린에서 전통적으로 제일 인기 있는 동네는 브루클린 하이츠 (Brooklyn Heights)입니다. 월가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이스트 리버 강가가 나오는데요, 여기서 강 건너에 보이는 동네입니다. 그저 언덕 위의 평범한 동네로 보인다고요? 막상 브루클린 하이츠에 가서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그 동네에서는 강 건너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눈앞에 막힘 없이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보는 전망이 인기 있다 보니 강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의 집들은 아주 고가에 거래되지요. 그런 연유로 해서 이미 1800년대부터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브루클린 하이츠를 인기 있는 동네를 만들었습니다. 백 년도 더 넘은 브라운스톤 (Brownstone) 타운하우스와 고풍스러운 아파트들이 자리 잡고 있고, 비교적 작은 도로 양 옆에는 울창한 가로수들이 멋을 더 합니다. 맨해튼이 눈앞에 펼쳐지는 위치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브루클린 하이츠 프로메네이드 (Brooklyn Heights Promenade)라고 불리는 길입니다.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다는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탁 트인 전망이 앞에 펼쳐지는 곳입니다. 

이 공간이 만들어진 특별한 연유가 있습니다. 뉴욕시에서 1940년대 도심 고속도로를 많이 만들었는데요, 그중 하나인 브루클린-퀸즈 고속도로가 브루클린 하이츠 앞 강변을 따라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브루클린 하이츠 주민들이 이 고속도로가 자신들의 동네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반대 운동을 하게 되었고요. 웬만한 동네라면 반대를 무릅쓰고도 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브루클린 하이츠의 주민들은 보통 동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어요. 주민 대표로 월가의 유명한 변호사와 제약회사 대표가 나서게 됐고 그들이 고속도로 건설을 총괄하던 로버트 모세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계획을 수정하도록 했습니다. 바뀐 계획에 따라 동네 앞 강변에 프로메네이드를 만들고 고속도로는 그 밑으로 지나가게끔 되었습니다. 프로메네이드에서 일반인들이 훌륭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 생겼으니 동네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고요. 


제가 삼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그 프로메네이드 앞 바닷가에 더 이상 사용 안 하는 선착장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19세기에 브루클린에 제조업이 활발하던 시절에 쓰이다가 점차 효용이 사라지게 된 시설물이었습니다. 그곳을 뉴욕 시에서 십여 년 전 정비해서 멋진 강변 공원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무도 심고, 산책로도 만들고, 또 체육시설과 어린이 놀이터도 들여놨습니다. 브루클린 하이츠는 이제 웬만한 맨해튼 고급 동네와 견주어 밀리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브루클린 하이츠의 북쪽 경계 지점에는 브루클린과 뉴욕을 잇는 브루클린 브리지가 있습니다. 철골구조물로만 만들어진 현대식 다리와는 다르게 다리를 떠 받치는 현수교의 두 탑은 석조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 탑은 안쪽의 아치가 끝이 뾰족한 모양으로 된 전형적인 고딕 양식 건축물입니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을 당시인 19세기 후반 브루클린은 독립된 도시였습니다.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제조업으로 유명한 도시로 알려져 있었어요. 당시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오가려면 배를 타야 하던 시대였는데, 존 로블링 (John Roebling)이라는 독일에서 이민 온 엔지니어가 다리를 지어서 두 도시를 연결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수교를 몇 개 지어 본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리가 생기면 두 도시 사이에서 사업하는 것이 더 활성화될 터이니 자본가들이 이 사람의 아이디어를 후원하고 나섰습니다. 원 계획은 1850년대부터 시작했고, 중간에 존 로블링은 공사현장을 챙기다가 부상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죽었습니다. 그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라는 인물이 그 사업을 뒤이어 책임지면서 결국 1883년에 다리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다리 때문에 두 도시는 더 가까워졌고, 결국 1990년대에 브루클린은 뉴욕의 일부분으로 편입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브루클린 브리지 이외에도 그 바로 옆에 맨해튼 브리지, 그리고 조금 더 북쪽의 윌리엄스 브리지가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 세 다리 중 관광객들을 끄는 곳은 단연 브루클린 브리지이고요. 그 모습이 고풍스럽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걷는 인도가 차도보다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스트 리버와 뉴욕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다리 중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어서 뉴욕 항과 그 중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잘 보입니다.


브루클린 브리지의 북쪽에 위치하고, 맨해튼 브리지 남쪽 경계선까지 이어지는 곳이 덤보 (DUMBO: Down Under Manhattan Bridge)라는 동네입니다. 덤보를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맨해튼 다리 밑 동네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원래 그 동네는 공장 및 창고 시설이 있던 곳인데요, 1990년대 이후 그 시설물들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겉에서 보면 19세기말 20세기 초 건물들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상당히 고풍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2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지요. 대표적으로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세르조 레오네 (Sergio Leone) 감독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niro) 주연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가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고풍스러운 길에서 기념사진 찍겠다는 관광객들이 몰리고, 또 이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들이 들어서며 덤보 역시 맨해튼 여느 동네 부럽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하이츠와 덤보의 동쪽 편으로 브루클린 행정구역의 정중앙 인근에는 프로스펙트 파크 (Prospect Park)라는 도심 공원이 있습니다. 500 에이커 (2.1 제곱 평방 킬로미터)가 넘는 넓은 지역으로서, 그 공원 내의 내부 순환도로를 한 바퀴 돌면 그 거리가 5 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조경 전문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이 공원도 설계해서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도심 공원에 영향을 받아 만들었고요, 그래서 공원 내부에 잔디밭, 호수, 그리고 석조 건물들이 적절히 배치돼 있습니다. 이 공원의 동북쪽 끝에는 브루클린 식물원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에는 웅장한 석조 건축물이 있습니다. 1890년대 지어진 브루클린 박물관입니다. 꼭대기의 원형 돔과 그리스 양식의 석조 기둥들이 버티고 있는 입구가 눈에 뜨입니다.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비견되는 모습이지만 관광객 숫자는 훨씬 적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작품 관람하기가 좋은 곳입니다. 공원과 식물원, 그리고 박물관 등 문화 시설이 있으니 당연히 예로부터 이 주위 주거지역이 브루클린에서 인기를 끕니다. 공원 주위의 파크 슬로프 (Park Slope)라는 동네에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19세기에 갈색 사암 (brownstone)으로 지은 고풍스러운 3층짜리 브라운스톤 아파트들, 그리고 그 앞에 심어진 울창한 가로수들이 브루클린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곳에서 더 동쪽으로 향하면 지난 백 년간 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주거지역이 나옵니다. 밖에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집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인종은 동네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백인들이 많이 보이는 동네는 이탈리아계 및 아일랜드계 밀집 지역입니다. 조금 더 가면 갈색 피부의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중남미 이민자들의 동네입니다. 그리고는 흑인 밀집 지역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동쪽으로 가면 동양인이 대부분인 동네가 나옵니다.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거기서 더 가서 브루클린의 동남쪽 끝에 가면 여자들은 머리에 히잡을 쓰고 다니고, 남자들은 턱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동네가 나옵니다. 이들은 아랍인들입니다. 미국 교과서에서는 이 나라는 모든 인종들이 섞여서 하나의 미국 문화를 이룬다는 멜팅 팟 (melting pot) 이론을 강조합니다만, 브루클린은 이 이론에 맞지 않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며 자신들의 생활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편하게들 느끼는 듯합니다. 


얼마 전 브루클린 동남쪽의 끝에 위치한 베이 릿지 (Bay Ridge)라는 동네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4불짜리 티켓을 사고 맨해튼 월가 근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30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계 및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아일래드계통 미국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 (John Travolta)가 구수한 브루클린 억양으로 연기하며 자신의 기막힌 춤 실력을 선보인 1977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가 이 동네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곳에 아랍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했습니다. 이곳에 평판이 좋은 팔레스타인 식당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새로운 변화를 상징하듯 이탈리안 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안에 들어서니 나이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아가씨가 해맑은 미소로 저희를 반겨 주었습니다. 머리에는 아랍 전통 히잡을 썼고, 더운 날씨에도 긴 팔과 긴치마를 입고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메뉴에는 중동 특유의 병아리콩을 으깨서 만든 훔무스 (Hummus), 그리고 그것을 튀겨서 만든 팔라펠 (Falafel)이 일단 눈에 뜨였고요, 양고기 등 전형적인 중동 음식이 나열돼 있었습니다. 메뉴만 본다면 여기가 이집트 음식점인지, 이스라엘 음식점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테이블에 앉으려 하는데, 그 뒤에 있는 벽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작품이 이 음식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더군요. 그림의 상단에는 예루살렘에 위치한 노란 돔의 알 악사 (Al Aksa) 사원이 보였고요, 그 밑에는 감옥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감옥에는 젊은이들이 갇혀 있었고, 그 밖에는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식당 여기저기에 "우리를 억압하는 세력을 타도하자", "가자에서 벌이는 인종 학살을 멈춰라!"는 문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맑은 미소로 반겨주던 음식점 아가씨 얼굴만 보고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할 분노가 느껴지더군요. 틀림없는 팔레스타인 음식점이었습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인구를 합산한 것보다 더 많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욕에서 이런 반 이스라엘 벽화가 있는 팔레스타인 음식점이 성업 중이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뉴욕은 역시 이질적인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곳이 틀림없더군요.



아랍 사람들이 모여 사는 브루클린 남동쪽의 대척점이인 북서쪽에는 윌리엄스버그 (Williamsburg)가 있습니다. 그 지역의 이정표로서 1929년에 지어진 41층짜리 윌리엄스버그 저축은행 (Williamsburg Savings Bank) 타워가 있는데, 꼭대기 시계탑이 원형 돔 형태라서 눈에 뜨입니다. 그 근처는 유대교 정통파의 한 분파인 하레디 종파 (Hasidic Jew) 유대인들의 주거지역이 있습니다. 남동쪽 아랍인과 지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대척점에 있지만 특이한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두 집단 모두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십니다. 이스라엘 전통 음식점 메뉴에서 눈에 띄는 것이 훔무스, 팔라펠, 그리고 양고기입니다. 제 눈에는 아랍 음식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아무리 더운 날에도 긴 팔, 긴치마를 입습니다. 이곳 유대인 여성들도 모자나 스카프를 쓴 사람이 많은데, 이를 안 쓴 사람들은 사실 가발을 쓴 사람입니다. 이들의 교리에 의하면 뭐라도 머리에 쓰고 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동네 남자들도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닙니다. 이처럼 비슷한 면이 있는 두 민족이 안타깝게도 중동에서 끊임없는 유혈 충동을 계속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상 대대로 평화적으로 살던 땅에서 무력으로 쫓겨나고 또 억압당하고 있다며 저항을 합니다. 이스라엘인들 역시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여러 다른 시각이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이민 온 정통파 유대인 출신들이 가장 극단적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은 신에게서 선택받은 민족이며 이미 삼천 년 이전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신에게서 약속받은 바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서안에 정착촌을 만들고 그곳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무력으로 몰아내고자 하는 극단적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브루클린 출신이라고 하는군요. 


윌리엄스버그의 유대인 남성들 복장이 꽤 특이합니다. 남자들은 검은 정장과 챙 (또는 털) 모자, 하얀 셔츠를 착용하고, 귀 옆으로 옆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습니다. 19세기 동유럽 유대인들의 의복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은 철저히 율법을 따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검은 옷을 입고 사는 이유는 이천여 년 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추모하기 때문이고요. 

유대교 정통파 아이들은 일반 학교를 안 다니고 유대 경전만 공부하는 유대인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문제일 때 유대인 정통파 교도들이 자신들은 백신 절대 안 맞는다고 고집을 부려서 지역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음식도 유대인 랍비가 공인한 코셔 음식만 먹고 삽니다. 저희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이 사람들이 꽤 오는데요, 이들은 병원 구내식당 음식을 절대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병원 안에 이들을 위한 코셔 음식 저장 시설을 두고 있어요. 토요일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운전도 안 하고, 텔레비전도 안 켜고, 심지어 부엌에서 불도 안 켭니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버튼도 눌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는 버튼을 안 눌러도 모든 층에서 자동으로 멈추는 안식일 엘리베이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느 미국 학교와 같이 저희 학교에도 유대인 교수들이 많은데, 이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유대인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애들 키울 때 유대교 정통파들 진짜 조심해야 돼. 뉴욕 공항에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파에 포섭하려고 유대인 청소년들한테 접근하는 거 봤지? 공짜로 집에 태워준다고 하면서 차 안에서 순진한 청년들 포교하는 거야. 애가 거기에 포섭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진짜 재앙이지. 아이들이 일반 학교 더 안 가고 경전만 읽고 산다고 그래. 아는 사람들 중 포섭된 아이들이 몇 있는데, 일반 교육을 못 받았으니 보통 직장 생활은 꿈에도 못 꾸고 유대인 정통파들이 운영하는 카메라 가게 직원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애들 어릴 때 열심히 주의시켜야 돼.”

 

같은 윌리엄스버그 행정구역 안에는 전혀 성격이 다른 동네도 있습니다. 유대인 밀집지역을 벗어나면 이탈리아계 및 아일랜드계 미국인 동네가 나옵니다. 거기서 더 가면 이 동네 베드포드 애비뉴 (Bedford Avenue) 지하철 정거장이 나오는데, 그 주위는 1990년대 이후에 예술가들이 대거 정착하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맨해튼 예술가 동네들이 너무 비싸지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갤러리와 소극장이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하고, 이 예술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이사 오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상대로 하는 인기 있는 레스토랑과 맥주집들이 이곳에 많이 생겼습니다. 음식점 중 유명한 체인점은 거의 없고, 작은 규모의 아기자기한 곳들이 많습니다. 지하철역 주위에서 시작해서 동네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지하철역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습니다. 강가에는 폐허로 남은 도미노 설탕 공장 건물이 흉물처럼 있었는데, 이도 개조해서 근사한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새로 들어선 시설들은 역에서 멀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가의 선착장에서 가깝습니다. 여기서 뉴욕시에서 운영하는 페리를 타고 월가 등 사무실 밀집 지역으로 출퇴근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윌리엄스버그는 젊은 직장인과 예술가들이 섞여서 사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성격이 다른 동네들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여 있는 곳이 브루클린입니다. 한마디로는 표현이 안 되는 곳이지요. 윌리엄스버그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삼십대로 보이는군요. 나도 한때 저들과 같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며 이 동네 맥주집으로 발걸음이 향합니다. 지나간 청춘을 회상하며 이 동네에서 생산하는 브루클린 라거 한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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