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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Jun 02. 2024

삶의 이유는 삶.

- 아픈 딸, 아픈 우리를 위한 소소한 위로 2

 - 머리 아프고 어지러워. 배 아파.

 네가 사춘기에 접어들고 가장 많이 한 말인 것 같아.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어서 아픈 마음은 때로 몸도 병들게 하지. 병든 몸만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는 몸처럼 마음의 건강도 신경 써야해. 엄마가 갓 스물 넘었을 때 몸의 면역체계가 완전히 망가졌던 적이 있어. 지금의 너처럼 엄마도 원하는 걸 가질 수 없어 극심한 우울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지. 대상포진이 덮친 부위에 통증이 너무 심해 응급실에 갔더니 병원에서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사진을 찍더라. 심하고 희귀한 케이스였나 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지. 

 마음을 돌보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어. 너처럼 머리도 아프고 어지러운데다 피부에 생긴 염증으로 도무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거든. 그래서 장흥에 있는 요양원, 삼척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 강원도 오색 마을에서 꽤 많은 시간을 요양하며 보냈던 것 같아. 장흥에 있는 요양원에서는 폐암 말기 할아버지, 에이즈에 걸려 삶을 정리하러 온 삼십대 초반의 K, 학교 폭력으로 음식물을 삼킬 수 없어 젓가락처럼 마른 대학생 P와 간간히 마주쳤지. 매일 심하게 기침을 하곤 하던 할아버지는 얼굴에 병색이 너무 짙어 인사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어. 하지만 에이즈에 걸린 K와 빼빼 마른데다 이까지 드문드문 빠진 P는 일상이란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그런지 엄마와 마주치면 잠깐씩 자기들 사연을 들려줬지. 학교 폭력피해로 시름시름 앓다 밥을 아예 넘기지 못하게 되어버렸다는 P는 당시 엄마보다 한두 살 많았던 것 같아. 유난히 흰 얼굴에 선한 인상을 갖고 있던 P가 가끔씩 떠올라. 정말 착한데다 사연이 너무 안타까웠거든. 

 - 이렇게 불행한데 왜 나한테 살라고 해?

 어는 날 밤 식탁에 앉아 네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지. 그리고 다음날 일하는데 연락이 왔어. 어지럽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병원엔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동네 신경과의원에 가라고 했지. 필요한 검사를 한 의사 선생님은 너의 뇌 혈류 속도와 교감신경에 문제가 있다고 했어. 치료받지 않으면 한창 공부할 나이에 공부도 못할 거고 편두통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니 치료 받으라고. 집에 와서 누워있던 너는 저녁에 숨쉬기가 힘들다고 하더구나. 다행히 동네에 문 연 의원이 있어 부랴부랴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네게 최근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어. 근래 잘 먹지도 않는데다 몸에 안 좋은 것만 찾는 너라 식도염이나 위염일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질문이 너무 생뚱맞았지. 네가 신경안정제를 맞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네가 보인 증상이 과호흡인 것 같다고 했어. 심전도, 엑스레이 검사 결과는 다 괜찮다며. 

 마음의 병은 보이지 않아 소홀하게 다뤄질 수 있지만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엄마는 경험으로 알고 있어. 하지만 엄마는 참 부족한지라 네 마음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찬 삶의 이유로 네 마음을 다시 부풀어 오르게 할 능력은 없구나. 삶은 엄마에게도 쉽지 않아.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니. 네가 스마트 폰에서 보는 화려한 사람들,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을 거야. 심지어 너나 엄마가 느끼는 것보다 더한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살아야 하지? 사는 게 이렇게나 불행하고 힘든데 왜.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해주고 싶지만 엄마가 아는 건 하나야. 삶의 이유는 삶이라는 거. 싱겁지? 하지만 그 외의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구나. 살다보면 유독 더 행복한 날도 있고 버티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날도 있어. 다들 그렇게 살아. 살아 있으니까 주어진 일을 하며 사는 거지. 다만, 엄마는 네가 이왕 사는 거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며 괴로워하기보다 네가 가진 것을 활용하며 네 미래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어. 엄마가 지금 엄마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너는 아직 어리고 네가 그리는 미래를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는 나이니까.

 무엇보다 네 마음의 병이 네 몸까지 망가뜨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꾸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건 어쨌거나 네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거야. 너도 이미 알겠지만, 아프면 나가서 놀지도 못하잖니. 식상하고 흔한 말이지만 건강해야 훗날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힘차게 매진할 수 있어. 차고 맑은 물에 뇌만 꺼내 담가둘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를 괴롭히는 상념들이 싹 씻겨나가 네가 타인들이 만들어놓은 행복의 기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단단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그래서 너는 ‘삶의 이유는 삶’이라는 것 외에 다른 삶의 이유는 찾지 못한 엄마보다 멋진 삶의 이유를 찾아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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