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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Sep 13. 2024

불행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어제 오늘은 딸 학교에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다.

책에 있는 글자와는 담 쌓고 사는 아이라 오늘 아침에도 메이크업 30분, 드라마 시청 1시간 정도 후 느지막이 등교하고 일찍 하교했다.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형편이라 아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딸이 중간고사 기간에도 화장하고 나간다며 지인이 속을 끓인 적이 있다. 당시 지인을 위로하며 요즘 애들은 참 다르다 싶었는데 우리 딸은 뭐. 지인의 딸과는 비교불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떡볶이를 주문해 달라며 또 TV를 켜고 거실에 앉는 딸에게 뭘 보냐고 물었다. <조선정신과 의사 유세풍>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드라마를 꿰고 있는 남편과 달리 TV를 잘 안보는 나지만, 근래 딸과 보내는 시간, 남편과 보내는 시간을 부러 늘리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종종 같이 보려 노력하는 중이라 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배달된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드라마를 보는데 딸을 잃은 엄마가 울화병에 걸려 가슴을 치는 장면이 나왔다. 안색이 거무죽죽한 게 병색이 완연한 중인 출신 엄마는 딸을 잃었는데도 양반 가문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위로 한 마디 못 받고 괄시를 당했다. 슬픔과 분노가 쌓여 결국 병이 났다.

 마음의 병은 보이지는 않지만 적절히 치료받지 않으면 개인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실제 몸 여기저기에 원인 모를 통증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사고방식이 늘 자신을 해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어느 책에서 소위 마음의 병은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잘 걸린다고 했다. 적절한 약을 처방받아 병증을 치료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게 참 쉽지가 않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채기가 몸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딸을 데리고 병원, 상담소를 전전했지만 약물도 상담도 크게 소용이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 덕분일까? 드라마에서 울화병에 린 여인을 치료하는 과정에 뼛속 깊이 공감 갔다. 병을 만든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 즉 죽은 딸을 만나 그간 쌓인 애달픈 마음을 표현하고 남편에게 억눌렀던 화를 표출하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억누르던 사고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질곡에서 해방 시키는 것. 이 과정을 거치며 환자는 자신의 울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건 환자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애정, 돕고자 하는 타인의 존재다. 환자는 말 그대로 아픈 사람이므로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힘을 잃은 상태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의 마음이 망가진 원인을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국 다 애먼 삽질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보다 더 어리석은 나의 모습을 깨달은 점이다. 보이지 않는 병이라 아이의 병증을 가볍게 봤고 때로 질책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자꾸 불행을 선택했다.

 드라마에서 치료가 된 환자를 보내며 의사가 마지막 인사말을 한다.

 “불행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앞으로는 행복할 기회만 잡으십시오.”

 딸에게 대사를 다시 읊어주며 스스로도 반성했다. 불행과 불안으로 자꾸 치닫는 나의 마음 방향도 될 때까지 돌려보자 다짐했다. 혹시 아는가. 마음이 선순환하면 예기치 못한 좋은 일이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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