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배라는 직물은 대마를 재배하여 그 줄기를 벗겨서 섬유를 얻어 만든 것입니다. 당시 안동과 인근 지방에는 집집마다 베틀을 놓고 삼베를 짜던 광경을 보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지금은 허가 없이 대마를 재배한다는 건 금기 사항이지만 당시 안동 지역의 밭이나 집 주변에서 작물로 자라나는 대마는 잡초처럼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내 고향집 뒤뜰에서도 바람에 날려온 대마씨가 싹터서 무성하게 성장하여 잎자루에 작은 잎으로 갈라진 손바닥 모양의 무성한 잎을 달고 당당히 서 있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마리화나라는 말은 70년대에 대학 다닐 때 처음 들었습니다. 당시 연예인들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마리화나라는 대마초를 소지하거나 흡입했다는 것입니다. 그 무서운 마리화나가 사실은 대마 잎이라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마 잎을 말려서 담배처럼 피우는 것이었구나. 그런데 연예인들은 그걸 왜 피우는 걸까? 내게는 너무나 친숙한 대마라는 식물이 어쩌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표적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때부터 이 식물이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대마가 인간의 기분이나 사고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위력을 가진 식물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 식물이 가진 마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실 마리화나는 실용적인 약물입니다.
이는 엑스터시, 코카인, LSD, 양귀비 등과는 차원이 다른 약물입니다. 앞에 열거한 마약들은 신경과정을 습격해 뇌의 보상중추를 과도하고 비정상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사람들이 음식과 섹스를 갈망하듯이 사용자에게 더 많은 자극을 갈망하게 합니다. 코카인 같은 마약은 보상감이 아주 크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섹스나 음식물보다 오히려 더 선호합니다. 즉 기본적인 생존 욕구보다 훨씬 우선시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심각한 중독에 빠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부작용을 동반하여 사람들을 여지없이 파멸시키고 맙니다. 그러나 마리화나는 그런 종류의 마약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뇌에 이롭기도 한 약물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흡입했을 때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노화에 따른 기억 손실을 예방해 주는 물질 말입니다. 답은 '마리화나'라고 게리 웬크는 <감정의 식탁>에서 말합니다.
마리화나를 다량 사용하면 환각 증세를 일으키지만 LSD 같은 환각물질과는 구조상 다르다고 합니다. 마리화나에 함유된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 성분은 뛰어난 효능과 구조 덕분에 쉽게 혈액뇌장벽을 통과해 뇌 자체에서 생성되는 카나비노이드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수용체와 결합됩니다. 뇌의 카나비노이드 수용체를 자극하면 뇌졸중, 만성통증, 신경염증에 따른 피해를 예방할 수 있으며 놀랍게도 노화에 따른 기억 손실 또한 이를 통해 어는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릴 때는 마리화나가 뇌의 창조과정을 방해해서 기억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노년에 피우는 마리화나는 뇌를 해치기보다 이롭게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아울러 마리화나는 심리적 고통의 치료제로서도 탁월한 효능을 지닌다고 하는데, 마리화나를 규칙적으로 사용하면 낮은 자아 존중감과 혼자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이 완화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마리화나가 마약으로 분류된 다른 각성제나 환각제들과는 차별화되어 차원이 다른 물질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 시대 고유한 질병 가운데 하나가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병은 주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좌초됨으로써 얻게 되는 병입니다. 우울증은 타자가 개입될 수 없는 자기 소모에 의한 질병으로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 모른 채 자아 속으로 침잠되어 마모되어 가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가상공간의 나르시시스적 주체가 마주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그래서 치료가 어렵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깊어지는 심각한 양상을 보입니다.
마리화나를 이 병의 대안적 치료제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담배나 술보다도 더 안전하고 이로운 마리화나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합법화되었습니다. 단언컨대 마리화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약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어둘 수 없는 이로운 약물로 격상되어야 할 운명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에게 물질적인 욕망(섬유)과 정신적인 욕망(약물)을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 대마는 경이로운 식물입니다.
한편 대마의 새로운 가치는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대마라는 작물이 또 다른 측면에서 유용성을 보여줍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싸고 효과적인 방법으로의 하나가 대마를 심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마는 100일 만에 약 4미터까지 자라는 식물로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산화탄소를 바이오매스로 전환시킬 수 있는 수단의 하나라고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논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마 생산물은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고 플라스틱을 대체함으로써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플라스틱의 독성물질은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가 결국은 인간의 몸으로 침투됩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연분해가 가능하고 독성이 없는 대마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한 대마 경작은 그동안 독성 화학물질의 사용으로 병들어 있던 경작지를 재생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대마는 플라스틱 대체재뿐만이 아니라 연료, 건축자재, 작물, 섬유 그리고 석유화학물질에 대한 의존도를 현저히 감소시켜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금전적 가치를 지닌 작물입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기술적 논쟁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마재배를 합법화하는 것이 급선무인 듯합니다. 소멸되어 가는 생물종들을 구할 시간이 이제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유럽의 보헤미안과 히피들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법으로 마리화나 와인을 제조해 마셔왔습니다. 끓는 물에 대마 잎을 넣고 꿀 또는 설탕, 오렌지 조각, 레몬 조각을 첨가해 조금 더 끓인 후에 불을 끄고 며칠 그대로 둡니다. 이 물을 걸러서 다른 용기에 담은 후 이스트를 넣어 4주 동안 발효시켜 저장하면 완성됩니다. 이처럼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이나 채소를 이용해 와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도만큼 잘 발효되는 것이 없었기에 포도를 사용해 만드는 것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