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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물감각 Mar 01. 2024

와인 시음에는 오독의 자유가 있다

와인을 사랑하는 그대에게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조금 어려운 와인의 세계로 들어가려 합니다.


나도 당신도 때때로 와인을 마시지요. 특히 기념일이거나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반드시 와인이 있어야 합니다. 와인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이제부터 당신과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와인이 놓인 식탁에서


이성적 사유나 행동에 기억, 욕망, 맛, 냄새 등 본능적 경험을 더하는 방법의 하나가 와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삶이나 태도가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이성적이면 사막처럼 건조하기 십상이고 그러면 인생은 삭막해집니다. 인생에 본능적 경험을 양념처럼 뿌려보자구요. 삶이 햇빛 드는 봄의 정원처럼 화려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식탁에는 언제나 와인이 놓여 있다지요.


식탁에서의 즐거움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과 훌륭한 와인을 즐기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쁨을 넘어 최고로 구현된 삶의 예술 형식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과시 때문이 아니라 삶과 우정을 위해서 와인을 마시는 것입니다.


와인을 함께 마셔보면 상대가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인지 그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와인은 사람의 본성을 식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와인은 개별적 존재자들의 실재의 가장 근본적인 내면과 마주치게 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와인은 그런 힘을 가졌습니다.


와인에 보다 더 진심이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와인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망하라, 마셔라, 관찰하라, 의문을 가져라, 질문하라, 판단하라, 표현하라고 나는 당신에게 귀띔하겠습니다.


와인 따기, 그것은 하나의 멋진 퍼포먼스입니다. 와인을 오픈할 때마다 내 표정을 살피는 당신의 시선을 나는 느낍니다.  그것은 잘 숙성된 와인의 머리 위에 덮인 베일을 벗겨내고 미지의 시간으로 관통하는 불가사의한 와인과의 내밀한 소통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런 관계는 극단적인 솔직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런 내통관계는 음란함이지요. 왜냐하면 이런 행위는 와인과의 내연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음자의 이런 욕망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정체성을 이룹니다.


완벽한 와인은 컬트가 될 수 없다


와인이 오픈되면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맞이하면 그녀의 향기를 먼저 얻게 될 것입니다. 가장 마음을 끄는 향기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런 향기들의 터무니없는 힘에 잠시 취해봅니다. 무엇보다 와인을 시음하는 행위는 향기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와인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은 당신과 나의 쾌락입니다. 쾌락한 삶이란 편안한 삶이며, 이것은 과도한 욕망이나 격정에서 해방되는 빵과 물의 생활에서 만족하는 것, 그리고 우정을 존중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일찍이 말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에피쿠로스의 말을 진심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와인을 욕망하되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내가 몽라쉐 한 병을 가까스로 소유하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므로 내가 그 와인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입니다. 그 한 병의 와인을 다 마셨다 하더라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나는 몽라쉐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몽라쉐를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사랑했으므로 나는 표현해야 합니다. 와인의 시음은 그래서 연애만큼 고달프지요. 언젠가 연애에 지친 당신이 완벽한 와인을 찾아 헤매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와인은 때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숭배가 됩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여자의 얼굴은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예술 작품에서 추구하는 것은 취향의 표준에 대한 일치가 아닐 것입니다. 미적 규준이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그것은 내적 규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와인의 시음기는 각자의 내적 규범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완벽한 와인은 컬트가 될 수 없습니다. 신화 창조는 미학이 불완전하다고 보는 것을 허용하기에 숭배와 경배를 낳습니다. 완성도가 높아서 당신과 내 마음대로 우리가 선호하는 관점에서 음미할 수 없다면 그 와인은 그냥 뛰어나거나 좋은 와인입니다. 컬트 와인은 빼어난 불완전성 덕택에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인공지능이 시음기를 쓸 수 있을까


당신과 내가 와인의 완전한 개별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들뢰즈에 따르면 '관계는 그 항들의 외부에 있다'고 합니다. 이 말에서 항은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와인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관계는 접촉하기, 선택하기, 마시기, 강요하기, 흔들기, 흠모하기, 헐뜯기, 감탄하기 등을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경험되는 존재자의 모든 면모는 관계적입니다. 그러므로 와인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존재가 규명되는 것입니다. 와인의 존재는 그것이 타자들과 맺은 관계들로부터 미학적 위치를 획득하게 됩니다.


어느 날 당신이 들고 온 한 병의 와인은 다른 요소들과 많은 연결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를테면 생산자, 양조자, 양조방식과 기법, 라벨, 생산지, 운송방식, 시음자, 보관방법, 시음장소, 와인잔ᆢ이들 중 어느 것도 그 와인의 존재가 아닙니다. 이 한 병의 와인은 그 자체가 홀로 존재할 뿐입니다. 관계는 언제나 항들의 외부에 있으므로 이 와인은 결코 완전히 시음자에게 포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와인에도 절대적 평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절대적 평가가 필요하다면 인공지능 AI으로 대체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창조적인 일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창작의 주체가 아니라 미디어일 뿐이다."라고 김재인 교수는 전망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예술작품을 평가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과의 관계에서 오는 섬세한 감정을 요구하는 와인시음기를 인공지능이 쓸 수 있을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와인의 시음은 시음자의 경험의 총체를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인생의 경험도 그 경험에서 축적된 기억의 질이나 양도 사람마다 다르지요. 생활환경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듯이, 연애 상대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정치적 견해가 당신과 나처럼 차이가 나듯이 와인의 평가는 천차만별입니다. 이는 샤토 파비의 논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보르도 생테밀리옹 샤토 파비(Saint-Emilion Chateau Pavie) 2003년 빈티지를 두고 잰시스 로빈슨은 이렇게 혹평했습니다.


- 과숙한 과일 아로마가 식욕을 완전히 떨어뜨린다. 주범은 포트와인을 연상시키는 단맛이다. 포트와인은 도우루에서 잘 만들고 있는데 굳이 생테밀리옹에서까지 이런 와인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그야말로 형편없다. 거기에 불쾌한 풋내 때문에 보르도 산 레드와인보다는 늦게 수확한 진판델이 연상된다.


로빈슨이 샤토 파비에 준 평점은 20점 만점에 12점이었습니다. 낙제 점수를 겨우 면한 수준의 점수를 준 것입니다. 같은 와인에 로버트 파커는 100점 만점에 96점을 주고 로빈슨과는 달리 아주 긴 평을 남겼습니다.


- 샤토 파비에서 다시 한번 엄청난 와인을 내놓았다. 절묘한 풍성함, 미네랄 풍미, 섬세한 묘사, 고급스러움이 감탄스럽다. 생테밀리옹 지역에서도 훌륭한 테루아를 자랑하는 샤토 파비의 석회질과 점토질 토양은 2003년의 폭염을 다뤄내기에 완벽했다. 진하고 불투명한 보랏빛 와인에서는 훈연 향과 더불어 미네랄, 검붉은 과일, 발사믹 식초, 감초 등의 도발적인 아로마가  느껴진다. 입안을 감싸는 풍부함 속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선함과 또렷함도 함께 느껴진다. 뒷맛은 타닌 느낌이 돌지만, 산미가 낮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13.5)이므로 4~5년 후부터 음용에 적당해질 것이고, 숙성을 고려했을 때 마시기 좋은 시기는 2011~2040년일 것이다. 샤토 파비는 샤토 오존, 샤토 페트뤼스와 더불어 2003년 지롱드강 우안 지역이 내놓은 매우 훌륭한 작품 중 하나이다.


두 명이 같은 와인을 마신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파커나 로빈슨이라는 세계적 와인평론가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이렇듯 유명한 전문가도 어마어마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와인 시음기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총체를 대중들이 추측할 수 있는 데이터로 공개하는 것입니다.


와인 맛은 와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와인시음이란, 그 시점에서 자신의 그때까지의 인생 경험 전부를 쥐고 와인과 마주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과일 맛이 과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듯이 와인 맛은 와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음자의 경험과 취향과 지성에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와인 시음에는 오독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당신은 이 와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시음했는가를 묻고 그 관계 속에서 본질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모든 사물과 마찬가지로 와인 또한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실존하기 때문입니다. 와인이라는 복합체에 대해 분석하고 본질을 추론한다 하더라도 그 다양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그것의 표현들, 그것의 서술들, 그것의 부분들, 그것의 용도들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결코 와인의 본질 자체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음기를 누군가는 써야 하는 이유는 어떤 와인은 진정한 놀라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밖의 놀라움을 발견하기 위하여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여행자로 무장하고 당신과 나는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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