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은 가끔 믿음을 배신한다
원어를 모르는 사람이 번역서를 읽을 때도 오역처럼 생각되는 문장을 발견할 때가 있다. 문장 자체는 매끄럽더라도 문장의 내용이 나의 경험 세계와 대응하지 않을 때가 그렇다. 사샤 스타니시치의 “출생(은행나무 출판사)”을 읽으며 발견한 오역도 그런 경우다. 물론 나는 독일어를 읽을 수 있지만 오역을 발견한 것은 한국어 내용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글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가 잘 안되는 문장이 나타났다. “어머니는 분만 과정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을 꼭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산파도 합병증이 발생하자 어머니의 상태가 걱정스러워 그날 당직 의사에게 어머니를 보냈다.” ‘합병증’이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뜻으로는 출산 중 산파가 갑자기 합병증을 진단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합병증은 ‘어떤 질병에 곁들여 일어나는 다른 질병’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다른 사전을 찾아봐도 합병증이란 이미 있는 기존 질병에 의해 발생하는 또 다른 질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였다. 위급한 의료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어떤 것을 합병증으로 표현할 것 같지 않았고, 그것을 산파가 판단할 것 같지도 않았다.
원문을 읽고 싶어 이북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아마존에서 초반 몇 페이지를 샘플로 읽을 수 있었다. 번역자가 합병증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Komplikation”이다. 해당 단어에 대한 네이버 독일어 사전의 번역어는 ‘말썽, 분규, 의학 합병증”이다.
다음으로 독일어로 Komplikation을 검색해 보았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이해한 것에 따르면 Komplikation은 ‘질병과 이에 따른 치료 및 약 복용 상황에서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발생해 다른 의학적 조치가 필요한 경우’를 표현하는 단어다. 만약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소설의 내용도 이해가 조금 더 쉬워진다.
다시 소설의 원문을 살펴보았다. 소설의 원문은 산파가 “Komplikation”이라는 표시와 함께 엄마를 의사에게 보냈다고 되어 있다. 내가 원문을 다시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분만 과정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을 꼭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산파도 상황에 만족하지 않았다. 산파는 ‘의학적 추가 조치 필요’를 이유로 어머니를 당직 의사에게 보냈다.” 조금도 풀어서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돌아가자, 산파는 어머니를 당직 의사에게 보냈다.”
한국어에 이런 의학 과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지는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소설에 당직 의사가 출산을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다른 조치를 했다는 내용이 바로 이어서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해도 오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산파는 출산 과정 중 어떤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느꼈고, 의사에게 어머니를 보낸 것이다.
안타깝게도 서로 다른 언어는 1:1로 대응하지 않는다. 외국어 단어에 상응하는 정확한 한국어 단어가 없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따라서 외국어의 뜻을 한국어로 옮긴 어학 사전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보통 사전에서 참고하는 것은 외국어 단어를 문장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외국어 단어에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늘 독일어 원어 사전을 참고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독한 사전 또한 대부분의 단어를 명확히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번역한 글이 한국어로 논리적이고 명확한 뜻을 가진 문장인지를 고민하는 검토의 시간은 초벌 번역을 하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하다. 그 말은 나 스스로 한국어 독자로서 꼼꼼하게 나의 초벌 번역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번역서에도 사소한 오역은 있을 수 있다. 완벽한 독서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번역도 가능하지 않은 영역처럼 보인다.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 또한 오역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인 듯하다. 하지만 오역이 발생하는 유형을 고민하다 보면 평소 독해를 하거나 번역을 할 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번외편 – 오역은 왜 발생하는가‘는 오역의 발생 원인을 분류하기 위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