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MBTI
E N T J
흔하지 않은 유형으로 전세계 2%로 남성은 3% 여성은 단 1%만 해당한다.
직접적이며 논리적인 행동을 하며 책임을 지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주변사람들의 성장을 격려한다. 변화를 조직하려는 동기가 있는 전략적 타고난 리더로 분석적이고 객관적이며 자기 주장이 강하고 책임지는 것을 즐기며 도전정신이 있다. 야망이 넘친다. 단호하게 행동한다. 시간낭비에 예민하다. 결과중심적이다. 완벽주의자다. 지식을 쌓고자 하는 욕구가 많다. 멀어지면 뒤도 안 돌아본다. 목표 달성력. 결단력, 통솔력. 나무보다는 숲.
나는 ENTJ다. 흔하지 않다고 하는 ENTJ. 아이들의 말에 공감하기보다는 이성을 갖고 상황 판단을 하라는 직설적 화법으로 분위기를 깨주는 팩폭형 인간이다. 진짜인 나를 드러내면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나를 숨기고 살기에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혈액형이 아니라 MBTI로 성격을 구분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 어떤 걸로 해도 나의 성격은 환영받지 못하는 유형이다. 혈액형도 AB형. AB형은 AB형 외에는 피를 수혈해줄 수 없다. 이기적이라 뭇매를 맞았던 적도 많았다. 내가 AB형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 피를 다 나누어줘도 괜찮다해도 받을 만한 이가 같은 AB형 외에 없는 게 내 탓이 아닐텐데 억울할 때도 많았다. 최근 몇 년은 MBTI로 또 매질을 당했다. ’엄마 T야?‘ 원망의 눈빛의 저 소리를 수도 없이 듣는다.
혈액형으로도 MBTI로도. 얼레벌레 대충 때려 맞추는 것 같았던 월간잡지 뒤 혈액형 별로 보는 연애타입이니 취향이니도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 뭐로 한다해도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안않는다.
야곱은 E보다는 I에 가까운 I타입의 성격이었다.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인 사람.
직관형 N보다는 감각과 현재에 초점을 맞춘 S였을 것 같고, 한 여인을 위해 7년을 무료로 봉사하기로 한 것으로 보아 판단과 결정에 이성적인 T보다는 감성적 F였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여러 사례로 보아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판단형 J였다고 보면 그는 ISFJ라는 타입이 나온다.
ISFJ 남자의 특징은 다정다감, 안정적, 약속을 잘 지키고 기념일도 잘 챙기고 가정적이다. 기억력이 좋고, 소심하진 않은데 뭔가 답답하고 배려심이 넘치고 삐져도 티를 안내고 솔직히 재미는 없지만 바른 생활의 사나이라고.... 그런데 엄청 계산적이면서 뒤끝이 있다.
우리는 ‘그럴 줄 알았어’에 대한 고집스러움으로 오랫동안 야곱을 오해했다. 나는 새벽 묵상 시간에 번개를 맞은 듯 했다. 우리는 야곱을 잘못 알고 있다.
야곱이란 인물은 팥죽에 장자의 명분을 탐했고, 눈어둡고 귀가 잘 안들리는 아비를 속여 형 에서처럼 분장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야반도주하여 라반의 딸 라헬을 위해 7년, 결혼식 첫날 밤 레아를 시집보낸 라반의 간계에 라헬을 얻는 조건으로 또 7년. 아들 12명과 딸 1명을 거느리고 무급으로 지낸 시간이 억울하여 라반에게 품삯을 달라 하소연 한 날로부터 다시 6년. 그가 당한 고통은 속임수로 장자 명분을 가진 거짓말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 고생스러운 생활 끝 라반 모르게 본토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짜고 얍복강을 건널때 형 에서를 만나기가 두려워 염소며 양이며 부인과 아이들을 총알받이로 먼저 보내고 홀로 앉아 있다가 천사와 씨름을 했다던 비겁하고 야비하고 교활한 자처럼 배웠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배우고 알고 믿고 있었음에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40년 신앙생활로 야곱이란 사람은 축복 받기에 도저히 불가능한 사람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명분을 탐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만으로 그를 귀하게 여겨 축복해주셨구나 믿었다. 야곱은 우리처럼 연약한 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하다 큰 코다쳐 고생스러운 삶을 살게 된 .....그래서 약간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믿음의 조상보다는 나와 같은 어디서나 너무 있을 법한 형제처럼 위안받고 산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 묵상했던 ‘야곱’은 내가 그렇게 알고 믿고 있었던 그가 아니었다.
첫째. 야곱은 아비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지 않았다.
야곱은 종용한 자라 말씀하셨다. ‘종용하다‘는 성격이나 태도가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걸 뜻한다. 그런 야곱을 어미 리브가가 사랑하였다. 사냥으로 먹고 살았던 족장 시대에 종용한 자라. 그리고 팥죽을 쑤는 아들이라. 야곱은 상상컨대 거친 사냥과는 거리가 멀고 털이 많은 에서와 달리 곱상한 외모에 리브가 옆에서 어미의 일을 거두는 조용한 성격의 딸 같은 아들이었을 것이다. 팥죽을 끓였던 날도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야지라며 사냥 나갔다가 들어온 형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교활한 계획을 했던 게 아니다. 그저 어미를 도와 집안 일을 했던 것이었고, 팥죽을 두고 담판을 지을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평상시 장자의 명분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많이 들었을 것이고 족장시대에 많이 부족한 자로 ’혹여 내가 형이었으면‘하는 심정으로 씩씩하고 남자다운 형의 성격과 외모를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팥죽을 한 그릇 주면서 장자의 명분을 달라 고 한 뜻에 대단한 그의 탐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아비 이삭이 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유언을 하고자 장자 에서를 부른 날도 우리는 오해를 하고 있다. 그 날, 야곱이 스스로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모든 계획을 짜고 그 계힉에 따라 어미 리브가를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처럼 야곱은 종용한자다. 그 날도 어디선가 책을 읽거나 풀벌레 소리나 새소리에 귀기울이거나 집안 일을 돌보는 어미의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이방여인과 결혼하여 마음이 기쁘지 않았던 리브가가 장자의 축복을 에서에게 준다고 하니 그 마음이 요동쳤다. 어미 리브가는 이삭을 대신해 요리를 했고, 이삭에게 에서의 옷을 입혀 아비 이삭의 천막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모든 계획은 어미 리브가의 머릿속에서 나왔고 이 과정에 누구보다도 이 과정을 꺼렸을 사람이 바로 야곱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미 리브가의 압력에 들킬까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억지 발걸음을 했을 것이다. 야곱은 스스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권모술수로 빠앗은 것이 아니다. 야곱은 이 후, 리브가에게 또 순종한다. 에서의 분이 사라질때까지 이름도 모르고 낯선 동네에 가라는 목숨을 건 여행에 순종한다.
둘째, 야곱은 라반의 밑에서 신실하게 일했다. 교활한 라반을 속여 자기 소유를 늘린 것이 아니다. 얼굴도 모르는 삼촌 집을 찾아 몇날 며칠을 고생고생하면서 왔을 때 이미 거지 꼴이었을 것이다. 그 날, 라헬을 보았고 사랑하게 되어 7년을 봉사하겠다 했다. 말이 7년이지 7년동안 무급 봉사라고 하면 이 세상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냐는 말이다.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7일처럼 일했다. 그런 야곱을 속인건 교활한 라반이었다. 라반 입장에 난생 처음 본 조카가 거지꼴로 나타나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기 딸을 달라는데 무슨 신뢰가 있어 허락을 했을까. 야곱이 이삭의 아들이라고는 하나 멀리 살고 있고, 얼굴도 한 번 본적도 없어 이삭의 아들이라는 걸 증명할 길도 없는데 감히 내 딸을 어떻게 줄까 하는 염려와 근심이 있었을 게 당연하다. 레아를 먼저 내세운 결혼에 또 다시 7년의 노동을 약속했다.
라반을 대적할 수도 있었고, 7년동안 일한 보수를 내놓으라며 라반이며 라헬을 다 고소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 당시 죽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야곱은 그 누구도 대적하지 않았고 또 순종했다. 자그마치 14년 한 여인을 위해 무급 봉사를 했다. 양을 치고 염소를 치는데 필요한 모든 수고,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면서 위험이 닥치면 제일 먼저 나가 염소와 소를 지켰을 것이다. 그 성격에 꼼꼼하게 일도 잘 했을 것이다. 이런 순진한 야곱을 영악한 라반은 이용했다. 야곱의 라헬을 향한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이용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기꺼이 이용당해주었다.
후의 7년동안은 결혼 후 가족이 생겼고 아이들이 자그마치 12명이었다. 혼자 라헬만 보고 살았을 때는 필요한 게 없었다. 그러나 딸린 자식들과 두 아내를 위해 야곱은 뭐라도 해야만했다. 라반에게 반항이란 걸 한 날, 그 날부터 다시 6년의 인내로 자신의 재산을 일구었다. 그건 외삼촌 라반의 재산을 이용하여 자신의 재산을 불렸다 말할 수 없다. 야곱은 누구보다도 애타는 심정으로 지긋지긋한 라반의 노동 착취 밑에서 자식과 아내를 위해 필사적으로 살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리고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서...
셋째, 야곱은 ’얍복강‘에서 비겁하지 않았다. 드디어 돌아가는 날, 물론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떠났지만 야곱의 지난 20년을 누구라도 겪으면 라반을 쳐다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더더욱 고마워서 작별인사를 하면서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재산이 늘어나 소떼 양떼가 많아져 이동시키는데만도 엄청난 수고를 했을텐데 앞에 건너야할 강이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만든 재산과 가족인데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었다. 야곱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 오고 있을 에서에게 자신의 재산과 가족들을 총알받이 삼아 먼저 가게 한 것이 아니다. 얍복강에서 자신의 소유를 다 건너게 하고, 그 다음 가족들을 강을 건너게 도와주었을 것이다. 창세기 32장 23절 "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압복 나루를 건널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라 말씀하셨다.
어린 자식들 목마를 태워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애지중지 키워낸 수백마리의 동물들까지 힘써 안전하게 건너게 인도했다. 그 후, 야곱의 몸 상태는 어떠했을까. 그는 기진맥진 상태였다고 본다. 그때, 천사와 씨름을 했다. 그는 그런 기진맥진항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버텼다. 끝까지 지지 않았다. 여기서 느꼈던 그의 성품은 침착과 차분 정도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말도 별로 없는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 같아 보였지만 그 내면의 강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이제껏 주일학교에서부터 대예배 설교시간에 들었던 야곱은 축복받을 만한 성품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는 그저 속이는 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오랫동안 우리를 속여온 야곱에 대한 편견과 오해다. 야곱은 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는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겼다. 어머니의 말에 순종했고, 힘들지만 어머니의 오빠인 못되기가 말도 못한 악랄한 라반에게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20년간 모진 세월을 참았다.
누가 그를 비겁하고 야비하다 할 수 있는가. 야곱을 통해 죄인된 우리 모습을 투영하여 위안받으라 할 수 있는가. 야곱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주일학교 설교 시간의 PPT나 삽화는 에서의 털옷을 손에 붙인 눈이 반짝거리는 약삭빠른 야곱을 그린다. 야곱은 그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속일 마음이 없었다. 이러한 신실한 자를 우리는 오해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계속 오해할 예정이기도 하다. 목사님의 설교 속에서 주일학교 삽화 속에서도 계속 야곱은 죄인 덩어리이며 그 마음씀이 그 모양 그 꼴의 결과로 인생 참 고되게 산 거다 혀를 찰 것이다.
아니다. 정말 아니다. 야곱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뱃 속부터 택하신 이유, 야곱을 사랑하셔서다. 야곱의 생각과 마음 그 성격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그를 세우셨고 인도하셨다. 그리고 축복하신 것이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그저그런 인간이었던 야곱이 받은 것이 아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었고, 신실했고, 인내를 온전히 이룬 믿음의 조상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