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씨앗
광주에는 하루 만에 400mm가 넘는 비가 내렸다. 1939년 이후 86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다.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전국적으로 쏟아진 폭우에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있었고, 5200명 가까운 주민들이 긴급대피했다. 도로와 농경지는 침수되었고, 집중 폭우에 중부권은 초토화되었다.
우리는 지금 부산이다. 지난 16일 반차를 내고 17일과 18일 연차를 써서 여름휴가 중이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부산 출장이 계획되어 있던 터라 남편이 일하는 동안 두 아이들과 부산을 뚜벅이로 여행해야지 하면서 따라온 것이었다. 16일 오후에 출발해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와서야 비가 그쳤다. 비가 온다고 예보를 듣기는 들었으나 그 예보 때문에 달라질 수 있는 건 없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한 여름 뜨거운 땡볕에 땀을 흘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거짓말 같았다. 17일 해운대 바닷가. 아이들 휴대폰에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부산에는 날씨가 흐렸을 뿐 비가 내리지 않았다. 구름 낀 하늘 저 멀리 태양이 보였고, 바람이 불고 선선하여 걷기도 놀기도 좋았다. 아이들의 휴대폰이 친구들 등교 시간에 난리가 나고 침수되는 사진을 보내는데도 먼 나라 이야기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타며 세 시간을 놀았다. 심지어 해가 났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뚜벅이로 걸어 오륙도까지 하루 종일 놀았으나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10시가 넘어 집에 와서 뉴스를 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사 온 지 1년이지만, 이 동네의 지대가 낮은 것인지 배수시설의 문제인지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이들 카톡마다 올라오는 사진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아파트가 잠길 정도로 물이 참방참방한 장면은 뉴스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걸 보면 매년 감수해야 하는 일상인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 비를 피한 휴가라니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폭우였다. 40일간. 온 하늘과 땅에서 물이 솟구쳤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땅을 심판하셨다. 하루만 비가 와도 이렇게 물난리가 나는데 자그마치 40일이다. 40일 동안 쉬지 않고 비가 퍼붓는다면 인간이 만든 배수시설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침내 노아의 방주는 산 꼭대기에 정박을 했다. 터키 동부에 위치한 해발 5,137m의 거대한 화산인 아라랏 산은 노아의 방주가 정박한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다. 창세기 8장 4절에는 분명,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분명, 말씀하셨고,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장소다. 연구결과 산의 흙에서 해양 퇴적물과 연체동물 등 해양생물 성분이 나왔다. 또한 산 남쪽 중턱 ‘두루프나르’ 지대 약 160m 길이의 편평한 타원형 언덕이 마치 배 아랫부분과 흡사하다는 점으로 인해 노아의 방주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발굴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2025년 화성에 사람을 보낼 준비를 하는 최첨단의 시대에도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은 인간이 알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뜻이고 행하심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시대.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그 장자인 가인이 ‘살인’을 저질렀다. 그 이후로 법도 질서도 없었다. 가인을 보면 인간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 지 알 수 있다. 법과 질서, 규범과 규칙이 있어도 죄는 언제나 범람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틀마저 없던 시대에 인간의 삶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을 근심하시고 한탄하신 그때, 온 땅이 패괴(敗壞: 부서지고 무너짐)하여 강포(強暴:몹시 사납고 우악스러움)가 땅에 충만하더라 하셨다. 그러한 곳에 노아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노아’를 거짓말처럼 인류를 쓸어버린 홍수에 방주를 지어 살아남은 어느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여긴다. 그를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과 같은 존경해야 할 만한 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완전한 자’다. 천지의 모든 인간의 악함이 가득 차 무법천지일 때 홀로 선한 양심을 지키며 의를 위해 공의를 좇아 도덕적으로 살며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을 행치 아니하였던 자다. 그를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셨고, 인류의 생축이 지금까지 번성하도록 그 씨를 유지하고 돌보시게 하셨던 인물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는 지금 각 국의 역사 속 위인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류 구원을 위해 남겨 놓은 씨. 그 씨가 노아로부터 시작되었다.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은 전멸한 황폐화된 땅을 일구었고, 방주 안에 있던 생축들로 인해 새들이 다시 날아다니며, 육축이 그 종류대로 다시 번성케 되었다. 이는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가족, 그리고 생축들이 구원을 받았듯이 세상이 온통 멸망으로 달음질해도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살 수 있음을 예표하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노아는 위대한 인물이다. 지난 글에서 우리가 ‘야곱’에 대한 많은 왜곡을 수정해야 하듯이 ‘노아’에 대해서 그리고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도 깊이 묵상해보아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은 특히,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은 가볍게 지나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요 전지전능한 조물주께서 지명하고 택하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 인물이다. 내 나라를 구한 영웅에 대한 존경심과 본받음, 그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할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