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2023년 아시안게임 인라인 롤러 스케이트 스피드 3000M계주에서 금메달을 확신한 정철원 선수는 세레모니를 미리 하면서 뒤에 따라오는 대만선수를 보지 못했다. 대만 선수는 날 내밀기 기술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금메달은 단, 몇 CM였지만 결승선을 끝까지 통과한 대만 선수에게로 돌아갔다. 정철원 선수는 인라인 날이 결승선을 통과하기 전 두손을 들고 승리를 확신했지만,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대만 선수는 그의 방심을 뒤에서 지켜보고 날을 먼저 내밀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최종기록은 한국 4분5초702, 대만은 4분 5초 692였다. 군대면제 혜택도 날아간 순간이었다. 경기를 마친 후, 정철원 선수는 인터뷰에서 ‘실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설레발 세레모니'라 비난했고, 그의 인터뷰 내용은 사람들을 더 격분시켰다. 그건 '실수'가 아니라 '교만'이었다고. 나 또한 그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손을 치켜들고 들어오는 정철원 선수 바로 뒤에 바짝 붙은 대만 선수는 결승선 통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스케이트 날을 밀어 넣었다. 그 스케이트 날이 제 것이 아닌 것이 결승선을 통과해 메달 색을 바꾸는 순간까지도 정철원 선수는 대만 선수를 인식하지 못했다. 찰나에 희비가 엇갈렸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요한계시록2:25-26
무엇이든지 끝까지 승기를 잡고 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KBO 정규 시즌은 팀당 144경기씩 모두 720경기를 진행한다. 말이 144경기지 먹고 자고 야구만 하고 매일 승부에 노출되는 야구선수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싶다. 홈경기 73경기 원정 71경기로 편성됐는데 8월31일까지 팀당 135경기가 진행되고 나머지 경기는 우천취소 등으로 빠졌던 경기를 추후 편성한다. 그 후 포스트시즌이 진행된다. 현재, 1위는 LG 트윈스다. 얼마 전까지 한화 이글스가 지켰던 1위자리를 지난 주말에 탈환했다. 나는 한화 팬인데 만년 꼴찌였던 독수리의 비상을 꿈꾸고 있는 중이고, 열심히 응원하는 중이다. 엎치락 뒤치락 했지만 연승을 하면서 1위의 자리를 몇 달째 지키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은 착잡했다. 몇 경기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뒷심이 부족한 탓일까?
더운 여름에 아무리 저녁 6시 반부터 경기를 시작한다고 해도 달구어진 지열로 인해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것만해도 대단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더 대단했다. 그렇게 벌써 각 팀 당 100경기를 넘겼다. 모든 조건은 모든 선수에게 동등했다.
이 동등한 조건의 살인적인 살벌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경기 후반부로 향할수록 뒷심을 발휘하는 팀이 있다. 기아 TIGERS. 기아는 12번 우승한 팀으로 KBO리그 역사상 가장 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참고로 작년 우승팀도 기아였다. 기아의 추격세가 맹렬하다. 특히, 기아의 수비는 철옹성 같다. 끝까지 공을 추격하여 깔끔하게 처리하고자 수비수들의 플레이는 견고하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후반부, 한화의 독수리에게 기아 호랑이의 맹렬함과 끝장을 보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를 응원할뿐이다.
앞서 말한 야구든 아시안게임의 롤러스케이트든 스포츠 경기란 것이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와 늘 싸우기에 믿음의 여정을 사도 바울도 경주로 표현한 듯 하다.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말하고 있고, 디모데후서 4장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한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삶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듯 보통이 칠십, 길면 팔십이다. 부모 손을 잡고 그저 순종하는 삶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두 자리수의 나이가 되고부터는 정신적으로는 이미 부모의 손을 떠났다고 보면 된다. 어떻게든 믿음을 이끌어 주려고 자녀를 성전에 앉히는 것도 중학교까지. 그 후로 오십년에서 육심년 동안은 스스로의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부모의 동행 없이 시작되는 본격적인 믿음의 경주는 각양각색으로 분류된다. 출발도 아예 하지 않는 놈, 엉금엉금 기어가는 놈, 걷다 쉬다 다시 걷다 쉬다 하는 놈, 중간에 주저 앉는 놈, 달려가는 놈, 날라가는 놈 등등. 그나마도 이런 놈들은 트랙 안에 있기 마련이지만 이탈자도 많이 생긴다. 이 중에 끝까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는 상급인 것이다. 나는 그 중 어떤 녀석일지....물론, 주님은 주님이 상주심을 바라고 우리가 더 놀랍고 큰 일을 담대히 하시기를 바라시지만 연약한 우리는 죄인의 굴레를 벗어나기도 바쁘고, 삶의 굴레는 더 무겁다.
인간이 참으로 불쌍한 이유는 그 이상 그 이하를 벗어나기가 참 어렵다는 것. 각고의 노력으로 그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은 꿈을 꾸고 이상을 향해 전진하지만 대다수는 자기만족으로 그 범위 안에 산다는 현실은 씁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한계 안의 갇힌 불쌍한 우리를 다독여주시고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시고, 말씀으로 사람으로 기회를 주시고 기쁨을 주신다.
그저 우리가 트랙 안에 있기를 소망할 뿐인 게으름뱅이라도 주께서는 모른체하지 않으신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과 기대에 대해 소원해 질 때가 빈번한 무례함이라도 또 다시 주님을 의지하여 결승선을 끝까지 통과해야 한다. 정철원 선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방심이었고, 한화의 독수리들도 실책보다 이겨야 할 것은 방심이다.
저만치 있는 신호등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려고 초록색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뜀박질을 한다. 그러나 횡단보도에 다다르자 몇 초 남지 않은 초록불의 깜빡임에 안심을 하고 걸음을 늦춘다. 중간도 다다르지 않아 빨간색으로 바뀌어 버린 난감한 상황에도 당당히 걷는다. 이건 나의 습관이다. 차라리 건너지 않았다면 기다렸을 것을 뛰려면 끝까지 뛰었어야 했는데 뒷심이 부족해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 이런 내게 딸이 어느 날 호통을 쳤다.
우리의 경주는 시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후반부가 더 힘들다. 체력도 정신력도 끝까지 매듭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걸 해내는 게 능력이다. 대만 선수의 한 끝 발이 메달 색을 바꾸었 듯, 기아의 수비수들이 공을 포기하지 않듯,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순간까지 젖먹던 힘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