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편 9편 1-2절
1636년 12월 12일. 청군이 침공했다. 청의 남진을 막기 위해 조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주성을 재건한 임경업은 인조의 대기하라는 명령에 대기하다가 의주산성으로 들어갈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다. 임경업은 백마산성으로 들어가고 청의 침공을 알리려고 그가 보낸 무사가 탈진해서 창경군 안으로 들어왔다. 그 날은 임경업이 전갈을 보낸 지 3일 후였다.
청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고 있었다. 9일 압록강, 11일 안주성, 14일 임진강. 놀란 인조는 어전회의를 소집했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군대의 증강과 국방력 보강을 위해 군제도 개혁을 외치고 노력했던 이들의 모든 수고는 번번히 양반사회와 유교를 강조했던 조정 대신들에게 막히고 결국, 군사력이 깡통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인조는 강화로 피신했다. 비상시에는 왕과 세자가 따로 움직여 왕실 계승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조선의 관행이라 1진에 소현세자가 있어야 했지만 1진에는 세자빈, 세자의 동생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가족, 은퇴한 대신들과 종묘에 봉안한 역대 국왕의 신주가 포함되었다. 1진은 바로 출발을 강행했다.
2진에 있던 인조도 뒤따라 출발하려고 하니 난관에 봉착했다. 마구간에 말은 있는데 말 고삐를 잡아 줄 하인인 말구종이 모두 달아나버렸다. 1진이 출발한 시간은 대략 오전 6-9시 사이. 그러나 인조는 12시가 되어도 출발하지 못했다.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양반은 비가 와도 우산을 블거나 뛰어서는 안된다’라고 나온다. 하인이 우산을 들어야하고 비옷을 걸쳐 주어야 한다. 말도 체신이 떨어져 혼자 탈 수 없었다. 전쟁이라 하여도 양반이 지켜야 할 체통에 대해서는 그 어떤 책임도 회피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되었다.
강화로 가야했다. 그러나 몸이 미령하다, 빙판길이라 다칠까봐, 가다가 청에게 수모를 당할까봐 인조는 결국, 남한산성으로 회귀했다. 이렇게 인조, 소현세자, 왕실관려 370명과 27명 종친이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렇게 남한 산성은 슬픈 역사를 품게 된다.
인조는 이미 패망한 나라라 희망이 없다하며 싸울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매일 관료들과 탁상공론만 반복했다. 대신들은 지략도 계략도 없이 책임회피만 하다가 화친을 할 생각만 했다. 험한 지리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싸울 기개 넘치는 군사들은 많았지만, 인조는 매사 신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미루면서 불신했다.
산성에 고립된 지 9일. 산성근처에 근왕병으로 추정되는 병력이 도착했다. 산성 밖과 성벽에서는 이미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 부대가 화전 세발을 쏘아 올려 구원병이 도착했음을 알렸으나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도 없음에 연락병을 보내는 데 시간을 또 지체하고야 말았다. 아군 사이에 그 어떠한 군사적 약속 신호체계조차 없었던 것을 볼 때 얼마나 군사체계와 전쟁대비가 엉망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연락병을 보내려하지만 양반은 배낭을 멜 수 없었고 뛸 수 없었다. 이 때, 목숨을 걸었던 이들이 있다. 거칠 것이 없던 노비, 천민들이었다. 그들은 무기도 없이 전쟁터에 서슴없이 나서려고 했다.
결국, 조선은 청의 번국이 된다.이것이 병자호란이다. 친명배금을 이유로 광해군을 몰아냈던 인조는 후금, 즉, 청에게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소현세자와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게 되는 뼈 아픈 역사를 갖게 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 가드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갔다. 이때 동행한 이들이 600명이었다. 이 중에는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되었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이 동행했다. 가드로 들어간 다윗을 보고 사울은 더 이상 그를 수색하지 않았다. 다윗은 이 후 철저하게 아기스를 섬겼다. 이방 땅 이방의 왕을 주로 모셨다. 이런 다윗에게 아기스는 철저한 믿음을 갖고 시글락 땅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하였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같이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을 명하여 말하였다. 자신의 백성을 쳐야하는 이러한 난감한 상황에도 다윗은 대범하게 아기스에게 충성을 다한다.
이 때, 사울은 신접한 여인을 찾는다.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무엘을 불러 올린 사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는 말을 듣고 심히 두려워하여 기력이 진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다.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은 수백 수천씩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니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싫어했다. 사울의 신하 다윗, 사울의 죽인자는 천천,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인 그 다윗이 아니냐고 다윗이 전장에 함께하는 것을 거절하니 아기스가 다윗을 블레셋 땅으로 돌려 보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다윗은 알았다.
그런데 시글락으로 돌아오니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시글락을 침로하였다. 불 사르고 대소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갔다. 다윗의 아내와 자녀들도 사로 잡혔다. 백성들이 각기 자기 자녀들을 위해 마음이 슬퍼 다윗을 돌로 치려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다윗은 여호와께 먼저 물어보았다.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셨다.
다윗은 600명과 뒤쫓았다. 그 중 200명은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했다. 다윗은 400명을 데리고 아말렉을 쫓아갔다. 사흘 밤 낮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아말렉을 쫓아갔다. 가다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떡 한 덩이 건포도 두 송이를 먹고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다윗에게 포도송이를 건낸 애굽 소년이 아말렉 군대에게 그들을 인도하였다.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때까지 그들을 치매 약대타고 도망한 소년 400명 이외에 피한 사람이 없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이 취하였던 모든 것을 찾고 두 아내를 구했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다윗은 모두 도로 찾았고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다. 그 때, 다윗과 함께 한 중에 악한 자와 비류들이 브솔시내를 건너지 못했던 200인에 대해 아무것도 주지 말고 저들의 처자만 주어 떠나가게 하라고 무리를 선동했다. 그러나 다윗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군대를 붙이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을 너희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럼, 사울과 요나단은 어떻게 되었을까?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요나단이 죽었고, 사울은 패전하여 활쏘는 자가 따라 미쳐 중상을 입었다. 숨이 붙어 있자 병기 든 자에게 명하여 자신을 죽이라 하나 그가 심히 두려워하여 자기 칼을 취해 그 위에 엎드려 죽음을 맞이했다.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읍을 버리고 도망가고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신을 능욕했다.
적의 침공에 말도 홀로 타지 못하며 신하들과 관료 및 군대를 신뢰하지 못해 책임회피만 하다 나라를 속국으로 만든 인조, 전쟁을 앞두고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자신을 따르는 가족들과 사람들을 위해 적의 왕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았고, 적의 침입에 사흘 밤 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군대를 이끌고 적진을 쫓았고, 밤이 새도록 싸웠다. 피곤하여 쫓지 못한 군사들을 홀대하거나 명령 불복종에 상응하는 징벌을 내리지도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고, 전쟁의 승리도 하나님이 주셨음을 확신했다.
다윗이 노래한 시편을 읽으면 다윗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노래한 시편은 곤궁할 때에도, 절망적일 때에도, 승리 중에도 오직 여호와만을 찬양했음을 알 수 있다. 진실로 다윗은 여호와 마음에 합한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