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GE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가톨릭의 주교이자 바티칸 시티의 국가원수.
누군가는 카이사르를 가르켜 로마의 교황이라 했던가. 카이사르도 아우구스투스도 최고 신관의 직위에 집착했다. 과학으로 날씨에 대해 증명할 수 없었던 시기, 사람들은 신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의 변화 무쌍함에 대한 신에 의지함이 절대적이었던 그 때. 신적 권위를 왕이 자처하는 것은 자신의 행정적 정치적 권위를 신의 위치에 올려 놓는데 목적이 있었다. 자신의 신격화를 통해 오랜 집권에 대한 명분을 갖는 것이었다. 신적 권위에 자신을 올려 놓는 것은 우상숭배나 다름없다.
천년 중세 가톨릭은 부패하였다. 암흑기였다. 가톨릭은 정치와 결탁하여 성령을 훼방했다. 왕임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왕의 결혼까지 간섭하는 절대 권력으로 면죄부를 팔았고,하층민의 손 떼 묻은 푼 돈에서 귀족들의 거금으로 교회를 화려하게 짓고 그 안을 성물로 가득채웠으며, 그것이 곧 성직자의 권력과 위상이 되었다. 라틴어를 알아 들을 수 없는 예배자들에게 라틴어로 설교를 했고, 말씀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마녀사냥을 통해 막아섰다. 성직자들만이 말씀을 읽을 수 있었기때문에 말씀에 대한 권력을 독점하려 집착했고 덕분에 더 성화되었고 더 추앙받았다. 그들은 가난한 예배자들의 마음을 악용했고, 죄사함이라는 하나님의 권위를 상행위를 통해 팔았다.
이에 법대를 졸업하고 성직자가 된 마틴 루터는 그들과 토론을 하고 싶었다. 그가 개혁을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벽보에 붙인 95개조 반박문은 일반인들이 읽을 수 없는 라틴어로 쓰여졌다. 동네방네 사람들을 모아 선동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라틴어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루터는 성직자들을 바로 잡고 싶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힌 자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려 주어 바로 잡아 같이 옳은 길로 돌아서고자 했으나 끝내 가톨릭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루터의 간절함을 거부하였다. 루터는 갈라 설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했다.
루터에서 뿌리 내린 개신교는 성만찬에 대한 다른 견해로 다른 교파로 갈라졌다. 그 이후, 교파가 아니라 각종 이단이 성행했고, 이단뿐아니라 현대는 자유신학사조라는 애매한 명칭 뒤에 감춰져 하나님의 질서를 부인하고 성경대로 믿고 해석을 거부하며 인간의 입맛에 맞게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로 치부해버렸다. 또한, 하나님만을 믿고 예수님만이 구세주라는 진리를 훼파하였다. 성직자의 타락은 종교의 타락이고 인간 역사상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때 인간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전 세계가 한 성직자의 죽음을 눈물로 애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실 때, 백성과 및 가슴을 치며 그를 위하여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가 그를 따라왔다. 그 때,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해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다. 신이셨지만 철저하게 낮고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우리는 지금 누구를 위하여 울어야 하는가? 타락한 가톨릭과 진리를 버린 개신교의 눈물의 회개와 돌이킴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며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 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장 6절-8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인된 책이 있는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은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일찍 죽임당한 어린양 예수님이시다. 그럼 그 책의 정체는?
생명책. 즉, 심판의 날 심판에 관한 모든 것. 심판의 권한이 있는 자가 심판할 자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하는 모든 심판의 시작과 끝이 기록된 책. 첫째 인부터 일곱째 인까지 인을 떼시면서 주의 심판은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판단이라는 것은 '죄가 없어야 합당하고 공의로우며 정당성을 지닌 자'가 해야한다. 인간의 육신으로 오셔서 철저하게 인간으로 사셨던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으로 배고픔도 느끼셨고, 슬퍼하셨고, 비통해하셨으며, 분노하셨다. 그러나 죄가 없으시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들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고, 우리들을 판단하실 '심판자로서의 권위와 명분'을 가짐에 추호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니님의 오른손에 있는 생명책. 그 책을 보실 수 있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와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실 수 있는 이는 어린양 예수뿐이시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제 어린양 예수로, 우리의 구세주로 오시는 게 아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심판자'의 자격을 성취하셨기때문이다.
다시 오실 이는 '심판자' 이심을 기억하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멸망받을 자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었다. 다시 오실 때는 기회도 자비도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그 때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실 어린 양 예수가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의 '심판자'로 오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 승천. 우리가 기억하는 구세주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많이 부각되어있다. 신이셨지만 완전히 인간이셨던 예수님. 그래서 많은 시각적 자료는 예수님의 고통에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극한의 고통 중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그 사건으로 예수님은 심판자의 명분을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취하셨고, 심판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