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WAKE UP 1 10화

WAKE UP

by MAMA

일몰 직 전, 태양 볕의 가장자리에서 만나는 땅의 연둣빛 은은한 냄새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딸아이의 눈에는 촌스러운 철쭉의 보라 다홍 화려한 빛깔도 싱그러운 연한 연두 잎사귀와 어우러져 봄날의 찬바람 사이에서 춤을 추면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느껴진다. 큰 아이의 학교 앞을 지나 한적한 공원 옆을 가로질러 가다 공원의 샛길로 빠지면 드넓은 밭이 나오는데 부지런한 농부가 일궈 놓은 고랑이 가지런한 그곳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고랑마다 검은 비닐의 구멍을 뚫고 자람에 열심인 생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땅두릅과 산 마늘을 키우는 5년 차 초보 농부의 마음에 자식이 크는 듯 춤추는 빛의 아지랑이와 함께 덩달아 춤을 추고 싶을 정도의 기쁨이 있다. 저 작고 작은 아이들이 때가 되면 엉겅퀴를 내는 땅에서 농부의 땀과 수고로 어여쁜 열매가 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 고린도전서 3장 7절-8절)


쑨원‘중국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먼 나라 이웃나라로 중국 근현대사를 읽었을 때, 쑨원이 중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세우려는 노력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의 노력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견줄 정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광둥성 췌이헝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호놀룰루에 있는 기숙학교 이올라니 대학을 다녔다. 기독교 교리와 서구 문화를 배운 그는 1882년 졸업하여 고향으로 돌아왔고, 1884년에는 홍콩에 있는 퀸즈 칼리지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의과대학을 다녔고, 1892년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성립되는 중요한 시기인 10대 후반과 20대 때,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때, 중국은 열강의 제국주의의 힘이 밀려 들어오는 시기였으며, 침략과 문호개방의 압력에서 폐쇄적인 입장을 취해 아편이 떠 안겨지면서 초 국가적 대 혼란기를 겪어야만 했다. 이에 분노한 쑨원은 부패하고 무능한 청황실을 폐하고, 열강의 침략에 맞서며, 민주적인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 세력을 결집하였고, 외교적 정치적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 서구를 돌아다녔다.


쑨원은 우여곡절 끝에 1912년, 임시 대총통에 취임했고, 중화민국 성립을 공포했다. 그러나 그는 북양군벌의 수장 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국가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쑨원은 자신의 혁명군만으로는 위안스카이를 대적할 수 없었고, '자신이 모시는 황제도 폐위시키고 나라도 버릴 테니 쑨원이 갖고 있는 혁명정부 총통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위안스카이에게 중국에 공화국을 건설할 것과 수도를 난징으로 옮기는 조건으로 총통자리를 내주었다. 중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에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싶어 했던 쑨원의 바람은 위안스카이의 독재를 향한 욕심에 처참히 짓밟혔다.


이후, 중국은 위안스카이 독재, 사망, 무정부상태, 군벌시대의 대혼란을 겪게 되었고 격동의 혼란기에 사람들을 유혹한 소련을 만나게 되었다. 소련은 대한민국의 북한에 공산주의를 세웠던 것처럼 중국에 공산주의를 세우게 된다. 서구의 지원이나 경제적 원조를 얻는데 거듭실패 한 쑨원은 소련의 원조를 적극 받아들이고 강한 군대와 정당과 동맹국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간암으로 '중국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과연 지금의 중국이 쑨원이 원했던 중국이었을까?


어제 네이버 세계 뉴스에서 한 기사를 읽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말미암은 반미감정이 올라가고 있는 중국 내에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바로, 독재정권을 종식시키자는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혁명의 목소리이다. 광저우의 국립대학의 여자 교수 두 명이 실명을 밝히며 독재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제목은 ‘단, 하나의 불꽃이 초원의 불씨를 일으킬 수 있다.’ 일당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선거를 치르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그 내용이며, "자유를 위해 독재에 맞서고, 민족을 위해 일어나 싸우자”라고 호소했다. 이는 중국 내 SNS 상에서 철저히 통제되고 있지만 대만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각지에 나와서 공부하고 있고 자리 잡은 중국인 유학생들과 디아스포라들 사이에 어떤 운동력이 작용할지 그들이 과연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위해 작은 씨앗이 될지 알 수 없다. 나는 가끔 상상을 해 본다. 기독교를 바탕으로 교육받은 쑨원이 중국에 그토록 세우고 싶어 했던 민주공화국을 그때 세웠더라면 지금의 중국은 어떠했을까?


때와 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심는 이가 있으니 거두는 이도 있는 게 당연한 이 세상 이치다. 내가 뿌린 씨앗이 얼마만큼의 수확이 될 지는 신만이 아신다. 뿌리는 농부는 그저 하나님의 도구일뿐이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미국의 경제규모를 훨씬 뛰어넘은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하나님을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난다는 상상은 기대를 넘어 설렘이며 설렘을 넘어 육중한 울림이 된다.


자라게 하시는 섭리와 열매의 때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을 뿐….

그저 우리는 땀과 눈물로 심어 그때를 준비하는 도구일뿐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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