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 딸 엄마

드라마 「아들과 딸」

by 꼭두

아들 엄마, 딸 엄마

드라마 「아들과 딸」


클 때는 몰랐던 아들과 딸의 차별


저는 다섯 남매 중 큰딸로 컸어요.


위로 오빠가 둘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과 막내인 여동생이 하나, 그렇게 남자 형제들 틈에 끼어서 자랐습니다.


옛날 부모님들. 딸은 키워서 남의 집 시집보내면 그만이라 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들이 우선이고, 딸은 뒷전이던 시절이죠.


요즘 케이블 TV에서 재방영하는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됐는데, "맞아, 그때는 딱 저랬지" 하며 무척 공감이 됩니다. 이어서 이미 지나간 그 당시 제 세월의 기억도 떠올릴 수밖에 없네요.


저 국민학교 6학년 때, 오빠들은 중학생이었고, 작은오빠와 참 각별하게 지냈어요.


저야 코앞에 있는 동네 학교에 다녔지만, 오빠는 제법 먼데다 교통도 불편한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같이 엄마는 밥을 지어야 했고, 오빠가 그 새벽밥을 먹고 있노라면, 저는 옆에서 오빠의 등교 준비를 도와주던 그 시절.


남학교는 규율이 참 엄격했어요.


추운 겨울날 새벽 등굣길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다 선배인 학생 주번에게 걸리면 뒤지게 벌을 받는다네요. 그래서 오빠는 새벽에 집을 나설 때면 아예 호주머니를 꿰매고 등교했고, 하교 후 귀갓길에 호주머니를 터트려 손을 넣고 돌아오는 생활을 했답니다.


오빠는 집에 오면 툇마루에 가방을 던지며 늘 저부터 찾았어요.


그리고는 "오늘은 동네 뉴스 뭐 있냐?" 물어보는 게 매일의 풍경이었죠. 그렇게 함께 노는 모습을 늘 지켜보던 맞은편 약방 집 주인아줌마가 "너희들은 어찌나 다정한지, 마치 남매가 아닌 연인 같구나"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적어도 아들과 딸의 차이를, 크면서는 그다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서로 사이가 너무 좋기도 했고요. 함께 살고 함께 정을 나누는, 말 그대로 한 가족이었어요.


커서야 제대로 겪은 아들 엄마와 딸 엄마의 차별


그랬는데... '아들과 딸의 차별',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 엄마와 딸 엄마의 차별'을 제대로 느끼게 된 건 결혼을 한 다음이었습니다.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오는 것처럼, 시댁에 행사가 있으면 무조건 때맞춰 가야 하는 게 며느리의 '의무'입니다. 같은 뜻인데 좀 더 센 말로 '도리'라고도 했구요.


작은 마을 안에서 결혼을 했어요. 좁은 신작로를 마주 보고 있는 친정과 시집은 걸어서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새벽 차를 타고 가면, 점심이 되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요. 친정과 시집 식구들이 버스정류장에 항상 마중을 나와 있습니다.


제가 버스에서 내리면 시어머니는 위풍당당한 자태로 저희를 맞이합니다.


반가움이야 친정어머니나 식구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할 수가 없는데, 한발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저 지켜만 봅니다. 제가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시집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집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시어머니는 잠시라도 친정에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가 없습니다. 친정엄마와 식구들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감추며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친 후, 늦은 밤이 돼서야 조심스레 친정을 찾아갑니다.


하루 종일 딸을 기다리다 지쳐있던 친정엄마는, 밤이 늦어서야 엄마를 찾은 딸의 손을 잡고는, 딸 엄마의 서러움을 터트리며 그 딸과 함께 참 오래 울기도 했다지요.


시댁 가족도 가족이지만, 친정 가족도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가족일 텐데, 저는 ‘아들과 딸의 차별’이라는 그 시절의 풍속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아들 엄마와 딸 엄마의 차별’이라는 현실로 뼈저리게 겪어야 했던 거죠.


제게는 지금까지도 서운하게 남아있는 가족의 기억입니다.


그런 순간이 닥칠 때마다, 어려서부터 같이 가족의 정을 나누던 오빠한테 푸념을 하곤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속상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애꿎은 오빠한테 또 그 마음을 털어놓으며 속을 달래고 싶어지죠. 하지만 지금은 떠나고 없어 그 옛날 이야기조차 할 수 없으니, 그것 또한 하염없이 야속할 따름이고요.


딸과 아들의 차별보다 서러운 게 딸 엄마와 아들 엄마의 차별이었다는 게, 지금도 제게 남아 있는 선명한 각인이라고나 할까요?


조금 더 살아봐야 하는 사연


그런데요. 요즘은 그런 거 다 옛날이야기고, 딸과 아들의 차별은 다 사라졌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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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제 남녀 차별이란 건 「아들과 딸」 같은 흘러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고, 그걸 보면서 "그래그래, 맞아맞아" 하는 건, 그 시절과 함께 흘러간 옛날 사람들의 기억뿐이라고들 하네요.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이제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차지하는 수가 더 많아진다 하더라고요. 따라서 당연히, 이제 딸 엄마와 아들 엄마의 차별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래요.


진짜 그런가요?


재미없는 아들은 없어도 그만, 살가운 딸 하나는 필수. 아들은 집을 사줘야 부모의 몫이 끝나지만, 늙어서도 부모 집을 찾아오는 건 딸.


다들 입을 모아 "딸이 대세다!" 하길래, 아 이제 우리가,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처럼 김희애는 아들 동생 잘되는 거 보라고 후남(後男), 최수종은 귀한 아들이니 애초부터 귀남(貴男). 이렇게 이름을 지어버리는 나라에서 졸업했구나.


나라에서 못 하게 해도, 어떻게든 미리 알아내서 딸은 아예 낳지를 않던 막장 나라가 이제 아니로구나 했는데... 실은 부모의, 그러니까 자기에게 닥칠지 모를 노후 간병이 아들보다 딸이 훨씬 더 많아서라구요?


아직 멀었네요.


조금 더 살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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