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임자~”
귀성길은 고생길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시절.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시골 고향에 명절맞이 가는 길은 정말 큰 고생길이었죠.
어느 해 추석을 며칠 앞둔 날. 연년생인 네 살배기 딸과 세 살배기 아들, 둘을 데리고, 품에는 커다란 봇짐을 안은 채, 서울역에 도착했어요.
남편은 일을 마치고 늦게 오느라 몇 시간 전까지는 구해야 했던 기차표 예매를 못 한 상황이었고, 입석 표라도 구할 수 있으려나 하고 있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내 방송이 나오더군요.
지금 임시 열차표를 발급하고 있으니, 매표소로 빨리 오라고 합니다. 남편이 급히 매표소 줄을 비집고 들어가 겨우 기차표를 구입했습니다. 비록 입석이지만 감지덕지했죠.
개찰을 마치고 기차가 대기 중인 곳으로 이어지는 긴 굴다리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역무원들이 계단 두 칸마다 한 명씩 줄지어 서 있더라구요. 이게 무슨 풍경인가 하고 있는데, 아 글쎄 그 역무원들이 제 아이 둘을 번쩍 들어 안아 올리는 겁니다.
연탄 배달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를 도둑맞는 줄 알고 “우리 애기예요” 하고 소리를 질렀죠.
역무원들은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제 아이들을 마치 연탄 배달하듯 계속 손에서 손으로 전달합니다. 저는 계속 “우리 애기, 우리 애기” 하며 소리치는데 남편이 애기 도둑이 아니라 도와주는 거라며 제 손을 잡아끌었고, 혹여라도 놓칠새라 남편과 저는 부지런히 쫓아갔죠.
허둥지둥 기차 앞에 도착하니 마지막에 제 아이들을 전달받은 역무원 둘이 아이를 번쩍 들면서 “아이 임자~” 하고 소리를 치더군요.
“여기요! 어서 주세요” 했더니 아이는 안 주고 어서 기차를 타랍니다.
시키로 대로 얼른 탔죠. 그제야 아이 둘을 차창으로 밀어 넣어 주더군요.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제가 얼이 반쯤 빠져있는데, 아이들도 혼이 나간 표정으로 울지도 않더라고요.
그 전 귀성길에 굴다리 계단에서 귀성객들이 엉키고 밀려 넘어지면서 사람들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후 이렇게 역무원들이 귀성객 보호 도우미로 나섰던 거였어요.
암표상은 어디에나
그렇게 아이를 받고는 허둥거리고 있는데, 조금 전 창가 좌석에 앉아 우리 아이들을 받아 건네준 청년들이 말을 겁니다. 다시 보니 꽤 험상 맞게 생긴 청년들이었는데, 자기들이 앉아 있는 좌석표를 사라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문 꾼들이 미리 표를 구해놓고는 비싸게 팔아먹는 거였어요. 요즘 말로 암표상이죠.
그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 속, 서 있을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사람들은 서로 그 표를 사려고 경쟁이 치열했는데, 그 건달들 눈에 아이 둘을 데리고 부대끼는 우리 부부가 안돼 보였는지 사겠냐고 특별히 먼저 물어봐 준 거죠.
게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받는 돈보다도 싸게 넘겨주더군요. 어찌나 반갑던지, 그 청년들이 건달이건 깡패건 개의치 않고 웃돈 크게 주고 샀습니다.
그중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남자가 있었는데, 열차가 출발하자 자기가 표를 판 한 남자에게 “당신, 노래 하나 불러보쇼” 합니다. 무서운 표정으로.
그 북적이는 팍팍한 열차 안이 도저히 노래 부를 분위기는 아니다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노래 요청을 받은 남자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자 그 우두머리가 이번에는 우리 남편보고 노래를 부르라네요. 역시 무서운 표정으로.
귀성열차는 노래방
아내 눈에는 늘 근엄하고 무게 있게 잘생긴 우리 남편, 한번 씩 웃더니 조용히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것도 당신의 18번 ‘산장의 여인’을.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창피하기도 했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노래가 끝나자, 열차 안의 모든 사람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앵콜”을 외칩니다. 남편은 결국 2절을 한 번 더 부르는 것으로 그 앵콜에 화답했죠.
드디어 조치원역에서 기차를 내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공주 시댁에 도착했는데, 그제서야 우리 세 살배기 아들이 우는 겁니다. 자기 모자 찾아달라고요.
서울역에서 역무원들이 아들을 배달할 때 그만 모자가 벗겨져서 잃어버렸거든요. 빨간색 개똥모자라고, 그 시절 애기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던 모자였죠. 서울 가서 다시 사준다며 달래놓고, 결국 다시 사주지는 못해 미안했던 기억이 나네요.
가끔씩 그 풍경을 떠올려보면, 마치 전쟁 같았지만 웃음도 나오는 귀성열차의 추억입니다.
새삼 추억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이제는 겪고 싶어도 다시는 겪어볼 수 없는 그 시절만의 기억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