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남편의 책임감과 서울 상륙
꽤 오랫동안 남편의 마음을 오해하고 살던 때가 있었어요.
충청도 종가의 종부로 보낸 시집살이 3년부터, 이어서 남편과 둘이 서울 올라와 살던 젊은 신혼살이 시절까지, 아주 오래 남편을 오해하고 살았습니다.
남편은 5남 3녀의 장남이었어요. 제가 가난한 종가의 종부가 됐을 때, 세 살 아래의 남동생부터 겨우 세 살 먹은 여동생까지 일곱 명의 시동생, 시누이들이 남편을 쳐다보며 살고 있었죠.
남편은 큰아들의 역할을 무겁게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 잘 모셔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어린 동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죠. 늘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고작 시골 면서기 월급으로 장남 노릇 해내기가 참 힘들어.”
숨겨둔 재산 있을 리 없는 부모에, 물려받은 게 없으니 손에 쥔 것도 없는 갓 결혼한 20대의 젊은 청년 혼자, 부모에 더해 일곱 동생까지 책임져야 한다? 글쎄요... 그럴 때면 저는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토를 달 말도 못 찾습니다.
그렇게 대꾸 한마디 못 한 채로, 우리 부부만의 알콩달콩한 이야기 꺼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절을 살아야 했죠.
월급날 남편이 집에 오면 부모님 방에 먼저 들어가 월급봉투를 그대로 드리고 나옵니다. 저는 시집살이 3년 동안 남편의 월급봉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어느 날 남편이 들뜬 목소리로 집에 엄청난 소식을 알립니다.
"국가고시 특채에 합격했어요. 문교부 본청으로 발령받아 서울 갑니다!"
모두들 놀랐죠. 순식간에 기대감과 상실감이 복잡하게 섞여버린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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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곧 알게 됐지만, 사실 남편의 결심은 따로 있었어요. 서울에서 이루려던 건 문교부 본청 공무원의 월급봉투가 아니었고, 아주 큰 돈을 벌기 위한 사업가의 꿈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을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꿈.
국가고시 합격과 문교부 발령은 굳이 따지자면 일종의 위장취업이었달까요? 1차 목표인 서울 상륙을 위한.
결혼을 후회하는 게 확실한 남편
아무튼 우리 부부는 그렇게 서울로 올라갑니다.
그저 남편 얼굴 하나 쳐다보며 서울 가던 날, 생전 가본 적도 없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서울을 간다는데, 저는 왜 그리 두근두근 설레이고 좋던지요.
우리 둘만의 신혼살림이라니... 이제 나도 남편 월급봉투 구경을 해보는 건가? 아마도 그런 설렘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웬걸요. 오히려 사정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드디어 월급봉투를 보게 되기는 했는데, 바로 다음 날이면 대부분의 돈을 시댁으로 송금해야 합니다. 보여준 다음 날 뺏어가는 월급봉투라니. 아예 보지도 못하던 시집살이 시절이 더 나았어요.
시댁에 대소사가 생기면 또 급전을 마련해서 보내야 합니다. 정작 우리 집, 우리 살림을 위한 돈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저는 이리저리 돈을 구하러 다니는 생활을 해야 했어요. 남편의 월급봉투는 두 집 살림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딸, 아들도 생겼는데 객지에서 셋방을 전전하는 기약 없는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뻔히 그 사정을 알고 있는 남편은 늘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우리 남편... 원래 표정도 없고 속마음을 말로 거의 드러내지도 않는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저 또한 각박한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남편에게 뭐라 부탁도 타박도 못 하고 지낼 수밖에요.
하지만 서운함은 점점 쌓여만 갔고, 결국 저 혼자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리며 정리했다죠.
‘아내가 어떻게 사는지 자식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 이 남자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과 동생들이다. 넉넉히 송금 못 하는 장남의 부족함이 성에 안 차 얼굴이 늘 어둡지 않은가.'
한번 생각의 가닥이 잡히니 그다음은 쉽습니다.
'동생들 키우는 데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 가정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게 뻔하다.’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남편은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주겠다고 할 수도 없고, 저는 그저 혼자 눈치 보며 끙끙 앓는 생활을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만성 위장병에 걸려 약을 달고 살아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어쩌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다시 도지는 위염과 위경련 때문에 고생하곤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한 답답' 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상 잣대로는, 우리 남편이 정말 그런 사정과 속내를 지닌 수준의 남자라면 '결혼하지 말아야 했을 사람'인 거죠. 인물이 암만 좋으면 뭐한답니까.
아무리 그 시절이었어도 도리어 그걸 자책까지 하고 있는 꼴이라니. 저도 참... 요즘 말로 '노답 새댁'입니다.
'답답이' 혼자 속으로만 마음을 삭이며 살아가던 어느 날. 서울 객지 셋방살이 9년 만에 남편이 이번에는 저를 상대로 선언합니다.
“우리, 집 지으러 가자!’
택지 개발을 한다는 홍은동의 가파른 언덕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짓는다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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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사라져 버린 십 년 세월
제일 먼저 할 일이 집터를 고르는 거였죠. 이제는 한 동네를 만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치 땅따먹기하듯 저마다 자기의 집터를 정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는 끼지 못한 채 먼발치에 떨어져 있었는데, 집터 선택을 위해 특별히 찾아온 고향 친구와 남편이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와 귀를 기울이게 됐어요.
친구가 화를 냅니다.
“아, 이 답답한 양반아. 누가 봐도 저쪽 터가 훨씬 좋은데 왜 이쪽을 사겠다는겨?”
남편은 단호합니다.
“이쪽으로 할겨.”
친구는 답답하고요.
“다들 저쪽 터를 사려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왜 양보를 햐?”
친구의 타박이 계속되자, 남편이 할 수 없이 설명해 준다는 듯 답합니다.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느릿느릿.
“저쪽 터 멀리 철탑 보이지? 그쪽으로 고압선 지나가는 거 안 보이남? 사고라도 나면 어쩔겨?”
친구는 기가 차다는 표정입니다.
“저렇게 멀리 떨어진 전신주에서 뭔 수로 불통을 집터까지 쏜다고 그려? 뭔 사고? 철탑이 대포여? 아이고 내 참, 이런 멍청도 답답이를 봤나!”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궁금증이 들기도 해서, 저도 한번 유심히 살펴봤죠. 집터에서 꽤 멀긴 한데 진짜 전신주가 보이고 지나가는 고압선도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쪽' 집터는 언덕 아래 평지에 제법 평평하고 단단하게 다져져 있고, 남편이 사겠다는 '이쪽' 집터는 언덕 꼭대기인데다 그곳보다는 많이 옹색하고 아직 다지려면 일손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철탑과의 거리는 '저쪽'이 '이쪽'보다는 가까울 수밖에 없어요. 철탑을 단단한 평지에 튼튼하게 세우다 보니.
친구 말이 일리가 있네... 싶던 순간, 남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깊은 한숨이 가득 묻어 있는.
“내가 이 객지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이유가 뭔 줄 모르겠어? 처자식 온전히 건사하고 사는 거 하나뿐야. 굳이 꼽자면 고향의 부모형제보다도 먼저란 말일세."
뭐... 뭐라는 거지? 저 양반이.
"만에 하나 나 없을 때 내 처자식들에게 무슨 사고라도 나면, 집이 다 무슨 소용인감? 나 혼자 발 뻗고 살겠다고 서울에서 이리 발버둥 치고 사는 게 아니잖여.”
말문이 막힌 듯, 남편 얼굴만 한참 쳐다보던 친구가 갑자기 크게 웃네요.
“왜 멍충도라고 하는지 오늘 아주 지대로 알겄다. 이 멍충한 놈아. 그려~ 처자식한테 불똥 하나라도 튈세라 단단히 싸매 안고 천년만년 백년해로하거라. 내가 두고두고 지켜볼 거여. 하하하~”
친구는 웃었지만, 먼발치에서 처음에는 무심코, 나중에는 숨도 못 쉬고 듣고 있던 저는 남편의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십 년 넘게 쌓아온 오해가 단숨에 풀려버리던 순간이기도 했고요.
남편이 서울에 올라와 기를 쓰며 살고 있는 이유가 오직 아내인 나와 우리 새끼들 때문이었다니... 말 그대로 오장육부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하고 뚫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달까요.
이런 남편을 내가 오해했고, 나는 나대로 남편 눈치를 보고 살았다니 억울하기까지 하더군요.
남편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팔짱을 끼고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호들갑을 떨었어요. 남편이 저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왜 이랴? 배가 많이 고파 그려?"
하지만, 저는 지나온 세월 동안의 오해가 무엇인지도, 그리고 그날 그 순간 오해가 풀렸다는 얘기도 남편에게는 하지 않았어요. 그날 이후, 이제 듬직한 남편만 바라보며 살면 되는데, 그동안이 어땠는지 따위는 조금도 되새기고 싶지 않더라고요.
비록, 사정이 나아졌다거나 상황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남편이 저하고의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거나, 우리 가족과 집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잖아요. 관심이 너무 많다 못해 가장 우선이라잖아요.
행복했어요. 눈물 날 정도로요.
물론 한편으로는, 지난 십 년간의 오해가 불과 한 시간도 안 걸려 제압당한 게 조금 머쓱해서였기도 했을까요?
하지만요. 그 '반전 드라마'라는 거... 그게 다 이런 거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