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해야 하는 손

돌고 돌아 한복 짓기

by 꼭두

한복을 해야 하는 손

돌고 돌아 한복 짓기


251110「엄니」하이힐과수놓기6.jpg
「하이힐과 수놓기」 바로가기


가운으로 시작한 옷 짓기


남편 손 잡고 둘이 서울에 올라와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작했던 타향 생활.


저도 늘 일거리를 궁리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종가 맏며느리로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도리는 해야 했기에, 남편의 수입만 쳐다보는 생활은 할 수 없었고, 아이들 잘 키워내려면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시절이었죠.


그러다가 한 가운 공장을 소개받게 됐습니다.


종로5가에 있는 기독교회관에 목사 가운을 납품하는 제법 규모가 큰 가운 공장이었고, 제 솜씨를 테스트해 보더니 선뜻 일거리를 주더군요. 그곳의 일을 하면서 목사 가운은 물론이고 석박사 가운, 판검사 가운 등 가운이라 이름 붙은 옷들을 참 많이도 만들어 봤답니다.


제 나이 30대 시절이었는데 홍은동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살면서, 이제 막 서울이 되었다는, 멀리 오류동 공장으로 출퇴근을 했어요.


고생스러웠지만 여느 부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입이 좋았어요. 때로는 남편보다 제가 더 벌어올 때도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린아이들 키우는 힘든 살림살이에 제가 쏠쏠하게 역할을 한다 생각하니 뿌듯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렇게 2년쯤 됐는데 점점 제가 눈치꾸러기가 돼가고 있더군요.


그곳의 직원들은 저만 빼고 모두 개신교 신도였어요. 저는 종교를 가져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뭔가 눈치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된 거죠. 꾸역꾸역 버텨냈지만 결국 그만두게 되고 말았답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결정적인 사건이 있긴 했죠. 언제부터인가 제게 급여를 줄 때면 십일조 헌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신자가 아닌 저는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 없더라고요.


“한복을 하셔야 하는 손이네요”


뭔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던 어느 날. 우리 집 건넛방에 한복 학원 강사 겸 동네 시장에서 한복점을 운영하는 사장이 세를 들어와서 한 지붕 아래 살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시집갈 때 신부가 한복을 많이 만들어서 가지고 갔었는데, 처녀 때 한복 솜씨 좋다는 소리 많이 듣던 저도 한복을 참 많이 만들어서 시집을 갔어요.


그런데 6.25가 지나고 경제성장기를 지나며 한복 간소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대부분의 여자들도 양장을 하게 되더군요. 시집갈 때 잔뜩 만들어갔던 한복은 장롱 한켠에 곱게 누운 채, 좀처럼 바깥 구경을 못 하게 된 거죠.


당시 제가 세 남매를 키우고 있었는데 딸이 둘이었습니다.


딸들 옷 사입히는 고민을 하다가 제가 좀 머리를 썼어요. 동네 양장점에 걸려있는 원피스를 유심히 눈으로 보고 온 후, 집에 와서 장롱에 누워있는 한복 치마를 하나 꺼내 자르면, 두 딸아이 원피스 한 벌씩을 세트로 만들 수 있었어요.


어느 날 또 원피스를 만들려고 묵은 한복 한 벌을 꺼내 재단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건넛방 한복 강사가 유심히 쳐다보더니 말을 거네요.


“아줌마, 양재사예요?”


“아니요.”


“옷 만드는 일 같은 거 안 하세요? 지금 뭐 하시는데요?”


“가운을 만들긴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네요.”


“아이고, 가운이라니요. 한복을 하셔야 하는 손이네요.”


서울의 한복점 여사장이 되다


한복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긴 했지만 조금 겁도 나더군요.


“요즘 한복은 옛날과 다르지 않나요?” 하고 되물었더니, 제게 한복 교본 노트 한 권을 주더라고요. 학원에서 강의하는 교본이라는데, 펼쳐보니 각종 패턴 그림과 함께 아주 자세하게 한복 만드는 법이 적혀있어요.


“오, 이거다!” 싶더라니까요.


그 책을 보며 독학을 시작했고, 곧 인근 한복점의 한복이란 한복은 제가 다 하청받아 만들게 됐답니다.


제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며 응원해 주던 남편은 나중에 아예 제 한복점을 차려주더군요.


마침 닥쳐온 88 서울올림픽 때 제대로 대목을 만났고, 그렇게 시골 깡촌 여자가 뒤늦긴 하지만 서울의 한복점 여사장이 됐던 사연입니다.


자랑 같지만, 진통제와 잠 쫓는 약을 쌓아놓고 코피 터져가며 했던 한복 짓기로, 세 아이들 대학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감히 자부한답니다.


사실 가운 만들기 전부터 온갖 부업을 다 거쳐왔었는데, 처녀 시절 수놓기로 시작한 제 봉제 사주가, 돌고 돌아 한복 짓기라는 제 마지막 직업을 만들어 주리란 건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한복점 여사장이지만 아직도 가끔씩 손이 너무 심심하면 한복을 짓곤 하지요.


여름이면 모시 한복, 겨울이면 정통 한복. 때로는 개량 한복.


251110「엄니」한복점여사장.jpg 2020년 5월, 제 손으로 마지막 지어준 제 두 손녀의 한복


keyword
팔로워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