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어떻게 형체를 얻는가 - 꿈에서 색귀를 보다
생생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색정귀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큰 가슴을 가진 얼굴 없는 여성의 형체.
'몸'만 남은 그녀를 탐욕스럽게 더듬는 건, '손'으로만 존재하는 남성의 에너지였다.
몸과 손. 둘은 뱀처럼 서로를 휘감고 끝없이 얽혀 있었고, 그 엉킴은 어느 한쪽의 소멸 없이 무한히 이어졌다.
시간이 멈춘 것도, 흐르는 것도 아닌 영겁의 순환 같았다.
나는 그 광경을 유리창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창이 아니라 스크린이었다.
손을 움직이자 화면이 스크롤처럼 위아래로 흘러갔다.
색귀다.
생각이 본능처럼 튀어나왔다.
사실, 잠들기 전 스레드를 보다가 어떤 사람의 글을 발견했었다.
요즘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었고
별생각 없이 팔로우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버튼을 누르자마자, 형용할 수 없는 역한 냄새가 확 끼쳤다.
너무 놀라 손을 씻고 돌아왔지만,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내일 다시 글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잠든 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꾸었다.
눈을 뜨자마자 다시 그 계정을 찾아 들어갔다.
피드를 넘길수록 확신은 짙어졌다.
겉보기엔 평범한 글들로, 직업에 대한 고뇌와 작업물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문장 사이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색적인 뉘앙스가 묘하게 얽혀 있었다.
욕망과 탐닉, 집착과 쾌락, 욕구에 대한 갈망이 글의 결을 따라 번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사람 자체가 영적으로 엄청나게 열려있는듯 보였다.
아마, 인터넷이라는 매개를 통해 기운이 흘러 들어온 거겠지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에너지는 흐르고 스며드는 법이니까.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얼굴도 본 적 없고, 내게 잘못한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쾌한 기운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결국 차단을 눌렀고, 클릭과 동시에 잿빛 같던 머릿속이 바로 맑아졌다.
요즘은 생각보다 색적인 에너지에 홀리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가장 또렷했던 경험은 작년, 파머스 마켓에서 만난 크로스드레서였다.
참을 수 없는 냄새에 뒤돌아 눈을 보자마자 너무 강한 에너지에 놀란 기억이 있다.
흔히 색귀라 하면 성적인 욕구만 자극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색정령이 있고, 색적인 기운이 있다.
전자는 귀의 형태를 가지고 자의식과 독립된 존재성을 지닌 채 명확한 목적을 따라 움직이지만 후자는 사념으로 남아 떠도는 에너지에 가깝다.
나는 이번처럼 느껴지는 기운이 바로 그런 사념체라고 생각한다.
색적이었던 감정과 욕망이 뭉치고 뭉쳐 형과 힘을 갖추곤,
비슷한 파장의 숙주를 찾아 흘러다니는 것.
이것들은 형태가 없는 만큼, 근원으로 돌아가지도 천도가 되지도 않는다.
귀가 떠나고 난 후의 사념도 있지만 이번것 같은 사념은 만들어진 것이기에,
에너지를 타고 흩어지거나 더 강한 힘에 의해 소멸되기 전까지는 존재를 유지한다.
그리고 현대인에게는 성적인 욕구뿐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욕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하거나
흥분과 도파민을 끝없이 분출하도록 만드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는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따라붙는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빠르게 소비되는 세상에서,
이런 에너지에 한 번도 감겨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스치거나, 잠깐 스며들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다만 차이는 있다.
얼마나 깊이 빠져드는지, 얼마나 오래 자리를 내주는지.
그러니 공짜를 너무 밝히면 안 된다.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는 순간 탐욕이 양심보다 먼저 손을 뻗는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운은 스며든다.
대가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깎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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