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Shoestring ferns
인연과 생명
재활의 경험과 안전
일엽아재비에서 보는 지혜
일엽초를 알고 나니 '일엽아재비'라는 이름이 마음 속에 들어왔다. 식물 세계에서 '아재비'는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 친숙한 이름에 이끌려 효돈천 저지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만남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나무 등걸을 살피며 계곡 깊숙이 거슬러 올라가서야 비로소 녀석과 마주했다. 비 온 뒤 햇살 아래, 일엽초보다 길게 늘어진 잎들이 싱싱하게 빛나고 있었다. 건조한 날이면 잎을 돌돌 말아 스스로를 지키는 그 모습에서 양치식물만의 강인한 생명력을 실감한다.
겉모습은 닮았어도 일엽초와 일엽아재비는 사실 아주 먼 사이이다. 일엽아재비는 봉의꼬리과, 일엽초는 고란초과로 양치식물 도감의 앞편과 뒷편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문득, 며칠 전 통영 해안길에서 친구와 닮은 사람을 보고, 친구에게 반갑게 전화를 걸었다. 전혀 달라도 비슷함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과 해프닝은 때로 인연을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일엽초에서 만난 호기심이 이 낯선 일엽아재비의 세계로 이끈 것처럼 말이다.
일엽아재비의 서양 이름은 'Shoestring fern(신발끈 고사리)'이다. 신발끈처럼 가늘고 긴 잎이 리본처럼 늘어진 모습 때문일 것이다. 영어 이름은 식물 탐사객인 나에게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일깨워준다. 하나는 '안전'이다. 험한 계곡과 바위 너덜을 타야 하는 시니어에게 등산화 끈은 곧 생명줄과 같다. 풀리지 않게 매듭을 단단히 조이는 것, 그것이 귀한 생명을 만나기 위해 갖춰야 할 첫 번째 예의임을 다시금 새긴다.
또 하나는 '소박함'이다. 'Shoestring'에는 적은 비용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고속도로비 걱정 없이 한 시간 내로 보물 같은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제주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통영에서의 먼 여정도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적은 비용으로도 풍요로웠던 제주의 숲이 못내 마음 한구석을 붙잡는다.
단단히 묶은 신발끈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귀한 생명을 마주하고 돌아왔다. 비슷함에 속지 않고 본질을 들여다보는 눈, 그리고 나를 지키는 작은 준비. 일엽아재비의 길게 늘어뜨린 리본 같은 잎사귀 속에는 인생의 커다란 지혜가 매듭지어져 있다.
신발끈을 묶으며 / 일엽아재비
비슷하다는 말에 이끌려
먼 길을 돌아 만난 인연
일엽초 너머에 숨겨진 얼굴
너는 홀로 깊은 계곡의 리본이었구나
한때는 발끝에 채인 돌부리에
생의 걸음이 휘청이기도 했지만
오늘 나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맨다
두 번 돌려 단단히 묶은 매듭은
너를 만나러 가는 나의 가장 간절한 예의
절벽에 매달린 가느다란 잎사귀가
풀리지 않는 초록의 신발끈이 되어
재활하는 다리를 단단히 붙들어주니
아재비라 부르며 웃던 오해는
어느덧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오늘도 나는 숲의 심장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