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음과 양의 조화
매끄러운 줄기 위로 넓은 잎귀 포근히
안을 다스린 암뱀의 지혜가 가정을 세우고
시니어의 마음에 흐뭇함의 결실이 걸려있네
"암뱀고사리라는 이름에서 팜 파탈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개고사리 종류를 이해하여야 겨우 볼 수 있다. 그래도 헷갈리기 일쑤여서 꽃객의 마음을 애태우게 했다." 암뱀고사리를 표현한 저 시절은 양치식물에 한참 매진하던 코로나 시기의 제주였다. 그리고 이제는 통영의 겨울, 암뱀고사리를 다시 꺼낸다. 그동안 낙상사고를 거치며 이제는 통영살이이다. 암뱀고사리를 지금의 나는 어떻게 표현할까?
암뱀고사리를 다시 자세히 본다. 잎(소우편) 앞쪽의 열편이 특히 커서 서로 겹치며, 털이 없는 우축을 덮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암뱀고사리라는 기묘한 이름과 그 잎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에 깜짝 놀란다. 너무나 외설스러워 꺼내기가 민망하다. 시인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암뱀고사리 느낌을 전해주고, 떠오르는 무언가를 전해달라고 말이다. 기다려도 돌아오는 답이 없어 암뱀고사리가 아닌 "암뱀"을 검색하다가 단서 하나를 찾았다. 그 길은 멀고 먼 북미의 아즈텍이었다.
아즈텍(Aztec)은 북미 대륙의 멕시코 중부 고원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아즈텍의 통치기구는 틀라토아니(Tlatoani)라는 황제가 있고, 그 아래 시우아코아틀(Cihuacoatl)이라는 부왕이 있었다. 제2인자인 부왕의 직책 이름이 "암뱀"이라는 뜻이다. 시우아(Cihua)는 여성을, 코아틀(coatl)은 뱀을 의미한다. 이 직책은 남성이 맡았지만, 하는 일은 "어머니 같은 보살핌"이었기에 아즈텍 신화 속의 대지 및 출산의 여신 이름으로 직책을 표현한 것이다. 이 명칭은 황제와 부왕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제는 국방, 외교를 담당했다면, 부왕은 내정과 재판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는 나의 퇴직 전 삶을 닮았다. 나는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아내는 전업 주부였다. 아내는 재정(살림), 교육(자녀), 식생활(요리) 등 집안의 전권을 맡았다. 아즈텍인들이 세상이 유지되려면 상반된 두 힘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믿었듯 내가 실천한 방식도 비슷하다. 아내는 그 역할을 잘해 주었고, 퇴직해서는 부족함 속에도 지방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아즈텍이 가장 번성한 시기는 전설적인 2인자, 틀라카엘렐의 시대였다고 한다. 그는 여러 황제를 보필하며 제국의 기틀을 닦았으며, 황제보다도 더 큰 실권을 행사하면서도 황제를 넘보지 않고 스스로 2인자의 자리를 지키며 제국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내가 아내에게 신뢰의 전권을 맡긴 것처럼 아즈텍의 번성 시기도 신뢰가 바탕이 된 황제와 부왕의 시대였다.
아즈텍의 아이들은 전쟁에 나가 피 흘리는 아버지의 무서움보다 "얘야, 해는 매일 아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길을 나선다."는 따스한 조언을 하는 엄마를 더 좋아했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학교 갔다 오면 반갑게 문을 열어준 엄마를 더 좋아한다. 나는 아이들과 민물고기를 잡고, 여행을 가고, 모처럼 외식을 할 때는 고급 요리를, 컴퓨터는 최신을, 장난감은 고급을 사주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좋은 추억이지 엄마에게서 느끼는 따뜻함은 아닌 것 같다.
아내와 남미 여행을 꿈꾸는 지금 이 시간, 북미의 아스텍에서 전해지는 음과 양의 조화는 나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암뱀고사리는 우리 가정이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는 남편과 아내의 순서였으나, 은퇴 후에는 안팎이란 말처럼 순서가 바뀌었다. 제주살이와 예상치 못한 낙상사고 그리고 지금의 통영살이까지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시간 속에서 아내는 나의 든든한 동반자이다.
제주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제주살이 한다니까 "혼자?"라는 묻곤 했다. 그때마다 "아니, 아내와 함께"라고 대답하는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자리 잡고 있다. 홀로 지방살이를 감내하는 꽃객들을 보았기에,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는다.
암뱀이란 단서를 찾으며 고심하던 시간에,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저녁상에서 나는 시우아코아틀(Cihuacoatl)이라는 보살핌의 실체를 보았다. 밖에서 꽃을 찾는 나를 위해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 그리고 함께 마주 앉은 밥상이야말로 우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일 것이다.
글을 다 쓴 후, 답이 없어 조금은 섭섭했던 친구로부터 뒤늦은 시 한 편이 도착했다. 그 구절은 내가 아즈텍의 지혜에서 엿본 의미와 맞닿아 있었다.
나의 존재 / 김재필
나는 나이지만 당신의 당신이구요
너는 너라지만 당신은 나의 당신이죠
너와 나
서로 당신이면
나는 너 너는 나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다시금 암뱀고사리의 잎귀와 아내의 저녁상을 떠올린다. '나'와 '너'가 서로를 '당신'이라 부르며 포개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개별적인 존재를 넘어선 하나의 온기가 된다.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온전하게 채워준 아내와 나를 둘러싼 인연들은 나를 만드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언제나 함께한다는 것이 예외가 아닌 보편적인 이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의 소중한 동반자인 아내에게 이 진심 어린 헌사를 바친다.
여러분 곁에는 여러분의 세계를 더 따뜻하게 빚어주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홀로 걷는 길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이 더 보편적인 행복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언제였던가요?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마음의 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