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한라산, 범섬 배경 고사리 스토리
마우스 고장 나니 통영 시내 헤매이고
꿈속의 여왕 쥐는 밤새 나를 꾸짖는데
오늘도 꼬장한 노인 양치식물 쓰노라
에디슨 쇠구슬로 만번 실패 이겼듯이
마우스 손에 쥐고 맺힌 글을 풀어내니
고사리 너의 이야기 이리도 길게 잇네
무선 마우스가 숨을 거뒀다. 새 건전지를 수혈해도 녀석은 묵묵부답이었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건전지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녀석의 수명이 다한 것일까. 집 근처 마트에서 새로 산 건전지조차 소용없는 걸 보며 결론을 내렸다. "너도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오늘 인터넷에서 주문해도 내일이면 배달될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급했다. 브런치에 올릴 '양치식물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고사리 새순처럼 꼬물꼬물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오늘 글을 올리지 않으면 독자와의 약속을 못 지키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아내를 채근해 늦은 오후 길을 나섰다. 통영 향남동 다이소는 주차할 틈조차 없었다. 차 안에서 기다리는데 아내는 유선 마우스뿐이라며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시 원문고개를 넘어 무전동 이마트로 향했다. 길을 잘못 들어 옥상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우여곡절 끝에 가전 매장에 입성했다. 통로 중앙에 쌓인 마우스 상자들을 지나쳐, 진열대에 마주한 마우스 가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게임용 마우스들 사이에서 내가 찾는 소박한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하나를 골라 쥐고 집으로 향하는 길, 딸에게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주머니 속 내 휴대폰이 제멋대로 딸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얘, 아빠 마우스가 고장 났잖아. 인터넷에 시키면 내일 오는데, 오늘 당장 사야 한다고 이 고생을 시키지 뭐니." 아내의 하소연이 귓가를 때렸다. 양치식물 이야기가 뭐라고, 내일 써도 되는 글을 꼭 오늘 올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꼬장꼬장한 늙은이'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눅눅해 입을 닫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새로 산 마우스조차 연결되지 않았다. 블루투스 전용이라 데스크톱에는 연결기가 따로 필요하단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요즘은 블루투스 노트북 위주로 현란한 제품이 많아 마우스 사기도 어려우니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저한테 먼저 전화하세요."라는 아들의 말이다. 아들의 든든함보다 묘한 나이 든 서글픔이 앞선다. 오늘은 정말 안 될 팔자였다.
그날 밤, 기묘한 꿈을 꾸었다. 꼬리 없는 쥐 한 마리가 나타나 내 몸을 물어뜯으며 항의했다. "내 몸을 망가뜨려 놓고 왜 밥(건전지)도 안 주냐!" 녀석은 나를 끌고 내가 헤맸던 다이소와 이마트를 가로질러 쥐들의 왕국으로 나를 끌고 갔다. 여왕 쥐 앞에 무릎 꿇린 나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인간들은 꼬리 달린 쥐(유선 마우스)를 부려 먹더니, 이제는 꼬리 잘린 쥐(무선 마우스)를 혹사시키는구나. 꼬리가 잘린 고통스러운 몸으로도 인간들에게 봉사했는데, 아파도 고쳐주지 않고 버리고, 밥도 제때 안 주다니!"
여왕 쥐의 판결과 함께 내 몸에 '고사리 독'이 주입되었다. 고사리의 프타킬로사이드 성분이 향정신성 물질로 변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향락과 고통이 뒤섞인 이중주 속에 온몸이 열병에 걸린 듯 뜨거웠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양치식물의 매력에 빠져 살다 보니, 꿈속에서조차 고사리 독에 중독되어 쥐들에게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일까. 한밤중, 알다가도 모를 환상에 젖은 시니어의 실루엣이 거울 속에 있는 것 같다.
에디슨은 말했지요.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작동하지 않는 만 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라고요. 마우스 하나에 온 통영 시내를 헤매고, 꿈속에서 쥐 왕에게 재판까지 받은 나의 하루도 실패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양치식물 이야기를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을 발명해 낸 시간이었지요.
여러분, 오늘의 일상을 가로막은 '먹통이 된 마우스'는 무엇인가요? 짜증 나고 고된 그 길거리 어딘가에, 어쩌면 전구보다 더 반짝이는 '해학의 포자'가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위에 널려진 그 사소한 재미를 한 번 찾아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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