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전화는 되는데 수신전화는 먹통
낙상장소를 아는 지인과 119 출동자 따로 출발
구조를 기다리는 낙상자의 절박함이 계곡에 내려앉는다.
모데미풀 / 모뎀(MODEM)과 이름이 비슷한 모데미풀아~ 119 구조요원은 어디쯤 오고 있니?
지인에게 발신음이 전해지는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보세요? 여기, 춘란이 있는 그 계곡이에요.
다리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으니 119에 구조요청 해주세요."
잠시 뒤 두 번째로 119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한라산 계곡에서 낙상사고를 당했는데, 이 장소를 아는 지인도 119로 신고한다고 했으니
그 지인을 대동해서 함께 오면 낙상사고 지점을 찾을 수 있다고요..."
통화를 마치고 내 주위를 살피니 땅에 피가 흥건하고 나뭇가지에도 피가 묻어있다.
계곡 사면 중간의 비탈에 널브러진 자리는 오후에는 해가 비치지 않아 어둑하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너덜, 시야는 나뭇가지 사이로 계곡이 보일 뿐이다.
우선 손수건을 꺼내 다리를 감아 피를 조금이라도 덜 나오게 조치했다.
셀카 사진을 찍어보니 이마는 깨져 피딱지가 엉겨 붙었고 피는 눈물처럼 얼굴을 적셨다.
목이 말아 갈증이 심하지만 물이 담긴 배낭은 저 위에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아, 다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119에서 그 지인을 떼어놓고 119 대원들만 출발했단다. ㅠㅠ
그래서 지인은 집에 가서 승용차를 타고 출발할 예정이란다.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조차 퍼지지 않은 깊은 계곡을 119 요원들은 어떻게 낙상장소를 찾지?
다시 119에 전화해서 119 출동자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문자로 보내달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핸드폰 배터리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계속 전화를 할 수도 없다.
1시간이 넘게 기다리자 마음이 초조하고 공포와 함께 온갖 생각이 몰려온다.
구조요원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계곡을 탈출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갈증과 추위로 몸이 아우성치지만 나를 찾는 구조의 소리를 들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앉은자리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낙상자
부러져 덜렁거리는 다리의 통증, 탈구된 손가락, 목 타는 갈증, 엄습해 오는 추위, 불안을 더해가는 마음
아내가 알면 얼마가 놀랄까, 아직 아내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았다.
꿈을 꾸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피의 흔적 / 처절한 시간의 증명이다.
전화 통화를 마치니 부러진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찾아야 산다는 절박함에 통증도 느끼지 못했었다.
부러진 다리, 제쳐진 손가락, 얼굴의 피범벅.....
굴러 떨어진 시간은 순간이지만 그 족적은 리얼하게 남았다.
나뭇가지 걸리고 땅에 처박힐 때마다 부러진 다리가 피를 토했다.
평생을 건강하게 걸어주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다리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그랬더니 새끼손가락은 한 술 더 뜬다.
통기타 배운다면 그렇게 아프게 하더니 이제는 다치기까지 하느냐고
통증의 유발인자를 더 많이 발산하고 있다.
이마가 깨진 얼굴은 아무 말도 않는다.
다리와 손가락보다는 그래도 나은 형편이지만
얼굴은 낯짝이라는 말처럼 가리지 않으니 흉터는 어쩌냐 하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몸은 몸대로 저마다의 하소연을 쏟아내는데
마음은 기다리리다 못해 모데미풀을 떠올리며 모뎀(MODEM)을 연상했다.
초기의 pc통신처럼 구조를 기다리는 절박함을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다.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시간
서바이벌의 시간은 왜 이리 더딘가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란 이런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