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한순간이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살아났다는 증거이다. 시궁창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을 실감한다. 다리가 부러졌어도 살아났으니 다행이다. 부모님이 하늘에서 도와주셨구나, 설문할망이 제주살이 하는 은퇴자를 도와주셨구나. 천운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구나.
천운 1. 절벽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뇌와 허리는 다치지 않았다.
천운 2. 정강이뼈가 골절된 다리를 질질 끌며 비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천운 3. 절벽에서 떨어진 핸드폰이 망가지지 않았다.
천운 4. 전화불통지역에서 다행히 발신전화가 터졌다.
웹소설 '콜사인'에 이런 대화가 있다.
"너 평생 복권 사지 마라"
"예?"
"평생 쓸 운을 다 쓰고 살아 나왔으니까 이제부터 용꿈을 꾸어도 모두 꽝이야"
웹소설 '갓 오브 블랙필드'에 이런 글이 있다.
'엔조처럼 더럽게,
길로처럼 아쉽게,
강찬처럼 엿같이
살더라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 중요하지'
식나무 촬영하다 추락사고를 당했는데, 살아난 후 눈앞의 식나무를 찍었다.
그렇다. 살아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부터 살려고 노력하면 된다.
만약, 죽었다면 그냥 끝이다. 아쉬움도 슬픔도 온갖 걱정도 없이 끝이다.
다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슬프고, 애통하고, 불쌍하다 여기는 것이다.
내가 죽었다면 아마 실종으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제주의 숲은 정글이며 습한 계곡은 위험하여 거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간혹 약초꾼이 지나갈지도 모르나 4월 초는 고사리철이니 확률조차 낮다.
그러니 아무도 찾지 않는 습한 계곡에서 자연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제주살이 하다가 혼자 남은 아내에게는 청천벽력일 것이고
자식들은 바쁜 회사일을 제쳐두고 제주 계곡에서 시체라도 찾으려고 헤멜 것이다.
나를 이 계곡에서 꽃을 안내해 주었던 지인은 죄책감에 가슴을 칠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 그리고 사회관계망의 사람들에게는 늦게서야 소식이 전해지겠지
죽음을 상정하고 생각하니 내가 정말 이기적이다.
나의 존재는 가족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웹에서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