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살아남기 - 계곡고사리
119 대원들의 "영차! 영차!"
들것에 실린 낙상자 "아야! 아야!"
구사일생, 계곡 탈출 2시간
계곡 위에서 메아리가 들린다. "여기예요! 여기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소리를 질렀다. 낙상사고가 난 후 1시간 40분이 지난 시간 16:00였다. 이제야 정말 살았구나. 잠시 뒤 "여보세요!!!" "예~~ 여기예요!" 드디어 목소리를 교환했다. 119 구조대원들이 계곡 아래에 보인다.
응급조치요원이 먼저 내 곁으로 올라왔다. 바지를 자르고 소독하고 붕대를 감고 부목을 채웠다. 내 배낭 위치를 알려주고 배낭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119 요원이 배낭을 가지고 와서 물병을 꺼내 마시니 그제야 살 것 같다. 배낭에 카메라와 모자를 넣었다.
계곡 아래에 지인도 도착해 탈출구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 위는 한라산 둘레길 주차장, 계곡 아래는 산록도로이다. 지인의 추천길은 계곡 아래의 산록도로가 더 가깝다고 한다. 그러자 119 구조대장이 산록도로로 가자고 한다.
들것에 누웠는데 배낭을 머리맡에 올려놓고 베개처럼 베라고 한다. 사람 무게도 무거운데 배낭의 무게가 더해지는 들것이다. 환자와 배낭을 동일체로 보나보다. 119 구조요원 6명이 한 조가 되어 들것을 옮긴다. 구령에 맞추어 "영차!" 하면서 30cm 정도씩 움직인다. 나무와 바위 사이를 뚫고 계곡을 내려와 다시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야 등산길이 있다. 한번 옮길 때마다 다리에 통증이 몰려오고, 등은 돌에 배겨 아픔을 참아야 한다.
구조대원들의 숨소리, 아픔을 참는 낙상자, 선두의 길 찾는 소리. "이래 오면 절벽, 거기서 우측으로", "잠시 쉬었다 가자". 나뭇가지가 몸을 때리고, 들것은 좌우측으로 흔들리므로 통증을 참으면서 꽉 잡아야 한다. 그러나 119 구조요원이 더 힘들 것이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이다. 어렵게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올라섰다. 어둑한 숲 속길, 발길이 좀 빨라졌다. 농장을 지나니 구급차가 보인다. 2시간이 걸린 계곡 탈출이다.
계곡고사리라는 양치식물이 있다. 관중과의 여러해살이 풀인데, 제주의 깊은 계곡의 급경사면의 바위에서 귀하게 자라는 고사리이다. 양치식물을 찾아 계곡을 자유롭게 다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계곡에서 굴러 떨어진 후 들것에 실려 계곡을 탈출하고 있다. 들것에 누운 낙상자의 마음을 온갖 생각이 휘젓는다. 그중 하나가 계곡고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