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들
여수는 항구다. 바닷사람들이 많았고, 애들도 말투가 엄청 억세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났다. 여수 전학의 첫 느낌이다. 다행히도 나는 등치가 제법 큰 편이었다. 애들의 괴롭힘이 많지는 않았지만, 동네 형들이나 주변 학교의 싸움 좀 한다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 정도 괴롭힘은 참을 만했다.
아버지는 불명예스럽게 여수로 내려왔지만 큰 아버지(첫째 서초동)의 도움을 받아 여수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게 되셨다. 아버지 사업은 곧 잘되었던 것 같다. 물론 큰 아버지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아서 일 것이다.
그 덕에 전학 와서 잠깐동안 제법 풍요럽게 살았다. 풍요롭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IMF라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 말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는 동안 새엄마(?)라는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버지는 새엄마라고 부르라고 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30대 젊은 여자에게 새엄마라고 부르라고 하는 게 초등학교 6학년. "지금 생각하면 아직 어린아이"이긴 하지만 그 시절엔 다른 친구들의 엄마와 비교했을 때 너무 어려 보였기에 다른 친구들 앞에서 엄마라고 부르기 민망스러웠다.
동네 시장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던 중에 그 여자가 지나가면서 아는 척을 했을 때 그냥 무시했다. 아니 쌩깠다. 그 시절 나는 오후에는 수영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유도학원을 다녔는데, 다녀와서 녹초가 되어 이른 저녁에 잘 때도 있었다. 쌩깐 그날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 내 행동을 듣고 나를 때렸다. 아니다 정확히 밟았다. 자고 있는 와중에 무방비 상태로 밟혔다. 울지도 못했고, 아픈지도 몰랐다. 그냥 귀가 찢어져서 피가 났다. 응급실에 갔는데, 다행히 연골 부위의 상처가 깊지 않아, 레슬링 선수의 귀 형태까지는 안될 것이라 했다. 그때 알았다. 레슬링 선수들이 이렇게 귀모양이 바뀌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