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붕괴, 참 슬픈 말이다. 뉴스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주변에서 볼 수 있다. 흔히 교실이 붕괴되었다고 말하면, 교사가 권위가 부족하고 경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것과 무관하다.
교실 붕괴와 교사 변수는 별 연관 관계가 없다. 교실 붕괴는 1차적으로 학생의, 2차로 학부모의 영향으로 벌어진다. 교사는? 교사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슬프게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다.
교실 붕괴는 어떤 상황을 일컫는 것일까. '학급이 교사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교사라고 상상해 보자. 한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당신이 이야기한다. '너무 시끄럽구나. 우리 좀 조용히 하자.' 아이가 대답한다. '안 떠들었는데요.' 혹은 '싫은데요.', 심한 경우 못 들은 척한다. 당신은 화를 억누르고, 조용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아이를 부른다. 이리 오라고. 아이가 안 온다. 어쩔 건가. 뒤에서 다른 아이가 낄낄댄다. 여기서 시작이다.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학교를 생각한다. 나의 초중고도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시험을 많이 틀려도 맞았고, 머리가 길어도, 시도 때도 없이 맞았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은 아이들이 통제가 안 된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된다. 통제가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없다. 강제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통제가 가능한가. 말로 잘 하면 된다고? 지금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1~2명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짜 배를 쨀 수도 없고.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 교사가 언성을 높일 수도 있다. 우리는 싸우는 아이를 잡아서 제지하여도 아동 학대로 신고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는지 잘 안 나오는데, 뉴스에 안 나오는 사례들도 많다.
이제 수업 방해를 하는 아이는 1차로 교실의 한 곳으로 2차로 교무실 등 특정 공간으로 보낼 수 있다. 그래서?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나는 통제 불능인 아이를 맡게 된 불쌍한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그 아이가 그러는 건 네 책임이 아니라고. 넌 뽑기를 잘못하는 손을 가졌을 뿐이라고. 그런 상황이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지게 한다면, 병가든 뭐든 써서 자신을 지키라고 말한다.
교사도 직업이다. 소명 의식이나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인간이다. 교사도 인간이다.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는 정글에서 맨몸으로 아등바등 버티라는 것은 정말 악독한 짓이다.
동료 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제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교사 안 하면 또 어떤가. 다른 거 하면 되지. 나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뇐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주문 같은 거다. 실제로 그만두는 것은 큰 고뇌가 따르겠지만, 가능성은 열어 놓는 것이다.
나는 소중하니까. 난 세 아이의 아빠니까, 더 더 소중하다. 난 나를 지킬 것이다. 내 존엄성, 내 자존감, 모두를 지켜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