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자.'
십 년 전 우리 반 급훈이다.
그 시절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 지쳐 있었다. 하나도 생각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생각해 보고 다시 나오라고 돌려보냈다.
근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 싫어한다. 생각하는 건 생각보다 귀찮다. 음식 메뉴 하나를 정하는 것부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까지, 꼭 결정장애가 아니더라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자율이 힘들다.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몇 번 줘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선생님이 정해주세요.'로 첫 번째 실험이 끝났다.
이후 자율에 대한 연수를 듣고 깨달았다. 스스로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정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율 경험'을 주어야 한다고.
자율도 단계를 만들어서 습득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짜줘야 하는 것이었다. 1단계는 '책임감 습득'이다. 원래 학급에서 1인 1역을 하는데, 그것보다 더 많은 역할을 촘촘하게 짜주었다. 교과서 검사, 칼림바 연주 검사, 사물함 정리 검사, 글씨 쓰기 검사까지 모든 교사의 감독과 검사를 아이들에게 넘겼다.
그럼 선생님은 노는가. 아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역할을 구체적으로 짜줘야 하고,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관찰, 격려해야 한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자율로 포장된 타율'은 교사의 섬세하고 치밀한 조율이 필요하다.
밖에서 봤을 때, '이 반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네. 선생님은 편하시겠어요.' 소리가 나오면 성공이다. 오리가 물속에서 얼마나 물장구치는 줄도 모르고.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린 학급일을 우리가 다 해.'라고. 그럼 2단계로 넘어간다.
각 역할을 하다 보면 정해진 것과 다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점심시간에 분리수거를 하기로 했는데, 다른 일이 생겼다든지.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를 시전 할 타이밍이다. 그럼 속으로 웃으며 묻는다.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아이가 대안을 찾으면 최상인데, 못 찾으면 객관식으로 문제를 바꿔준다. '수업 끝나고 해도 되고, 내일 쉬는 시간에 해도 돼.' '수업 후엔 방과 후 수업이 있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와서 할게요.'
와.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았다. 훈련 성공이다. 이렇게 좀 지나면, 제안을 하는 친구들이 나온다. '선생님, 수업시간에 칼림바 검사를 하기에 시간이 모자란데, 요일을 정해서 점심시간에 하면 어때요?' 얼른 칭찬하고, 우쭈쭈 하면 뛰어가서 검사 요일을 정하기 시작한다. 이제 자율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자율도 훈련이 필요하다. 일단 구체적인 역할과 꼼꼼한 활동 계획이 필요하다. 또 끊임없는 관찰과 격려도 필요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협의도 해야 한다. 당연히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쉽다.
이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6학년이 되었을 때, 놀라운 상황을 보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학급 회장과 부회장에 우리 반 출신이 뽑힌 것이다. 척척 의견을 제시하고, 조율하는 모습이 아이들 눈에도 좋아 보였나 보다.
물론 모든 해에 이런 과정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세상 귀찮아하는 아이들을 맞게 되는 해에는 자율이고 뭐고 없다. 그냥 '규칙적인 생활' 익히기로 목표를 바꾼다.
1년은 짧지만 긴 시간이다. 어떻게든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면, 보람찰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