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19년도에 '대기업을 나도 가보겠다'라는 의지 하나로
이직 성공해서 옮겨간 대기업을 지금까지 5년 넘게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오후 4시~5시에는 퇴근할 수 있습니다.
워라밸 최상의 수준이고
위에 팀장님, 상무님까지 저를 너무 이뻐해 주십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까지 완벽한 이런 회사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오늘 아침,
저는 사직서를 냈습니다.
당연히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는 온통 저의 생각을 의심하는 목소리들 뿐이었어요.
"여기 말고는 갈 데 없어"
"무조건 버텨야 돼"
"경력 공백 생기면 무조건 안 좋게 볼 거야"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데 그 좋은 곳을 왜 나와?"
"나오면 고생이야!"
온 가족과 동료가 말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게 맞을까?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뭐야?"
외부의 목소리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면에서 저는
두려움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서워.. 이게 맞는 선택일까?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나가서 잘할 수 있을까? 후회하면 어떡하지?"
저는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자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몸과 팔 깊숙이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의 몸이 느껴집니다.
그야말로 두려움입니다.
이 선택이 틀린 것처럼 느껴지고
일이 잘못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과 걱정이 올라옵니다.
그때 저는 저에게 다시 한번 말해줍니다.
"충분히 시간을 가져도 돼.
네가 무슨 선택을 하던 네가 준비됐을 때,
내가 할 수 있게 허락해 줘."
저는 총 3일 동안 치열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수많은 저의 자아 중
'대기업을 다니는 나'라는 자아를 마주하게 됩니다.
5년 전 그토록 기대했던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저희 엄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고
아빠는 정말 뿌듯해하셨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대단하다고 말해주었고
저도 제 자신이 대견했습니다.
당시에 연애하던 남자친구들도 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습니다.
저는 대기업을 다니는 내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성공'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좋아하지는 못했어요.
남들에게 '잘난 척' 한다고 보일까 봐
저는 자신에 대한 뿌듯함을 억누르고 은밀하게 만족해왔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을 다녀서 자랑스러운 나'는 억눌렸고
그럴수록 '대기업을 다니는 건 좋다'라는 집착이 강해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강한 불안감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을 다니면 성공한 것이다'라는 믿음은
'대기업을 다니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로 연결됩니다.
실패할까 봐 저는 두려웠던 겁니다.
이 집착은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기에 발현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아침 일기에
억눌려 있던 '자랑스러운 나'에게 뒤늦은 사랑의 글을 남겼습니다.
대기업을 다녀서 뿌듯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고생했다 예리야
5년의 시간 동안 큰 트러블 없이
그것도 대기업에서 인정받으면서 다닌 네가 나는 너무 자랑스러웠어.
너무 자랑스러워,
너무 대단해,
너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냈으니
다시 한번 잘할 수 있을 거야.
사랑하는 나의 예리야
너무 사랑하고 고마워.
회사에서 인터뷰하던 너의 모습이
너무 멋있고 자랑스러웠어.
너무너무 사랑해.
네가 무슨 선택을 하던
네가 준비됐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게 허락해 줘.
이렇게 일기를 쓰자 저는 마음이 훨씬 정돈이 되는 듯했습니다.
그날, 방과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마음은 차분했지만
여전히 진짜로 내가 퇴사를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고민을 하며 시간을 갖던 또 다른 날 저녁에
저는 '퇴사를 하고 싶다'라는 강한 직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다음 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퇴사의 소식을 알리고
지금까지 걱정과 마음고생을 했을 부모님을 껴안고 이런 말을 합니다.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저는 주체할 수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똑바로 앉아 있는 것이 힘들 정도로
몸을 책상에 지탱하면서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 말은,
나의 영혼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었습니다.
나의 영혼의 목소리였던 겁니다.
지금까지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저의 선택을 의심하고
남들의 반응을 살피며
부모님과 남들에게 좋은 선택을 해왔습니다.
남들에게 이끌리는 삶을 살고
결정권을 남들에게 넘겨주는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의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무시한 채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제가 원했던 것은
남에게 이끌리지 않고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바로 '자유'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선택을 하던
그것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제게 필요했던 겁니다.
저는 그날,
비록 저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저의 억눌린 자아가 풀려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저는 큰 고민 없이 사직서를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주변에서 저의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저의 선택이 믿겨지지 않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저는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백수'가 돼버렸습니다.
저는 과연 잘 선택한 걸까요?
후회하지는 않을까요?
후회할 수도 있을 겁니다.
'후회하면 안 돼'라고 제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후회가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 또한 느껴줄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다.
정말 중요한 큰 결정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떠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두려움 없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