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보니

by 윤종덕

작년 9월, 제왕절개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정신없이 보낸 첫 100일은 글을 쓸 생각조차 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루틴이 생기고 육아에 익숙해진 지금, 미뤄두었던 <내가 엄마가 되는 방식>을 마무리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아이가 생기면 삶이 크게 변할 거라 짐작은 했었다. 임신 기간에도 이미 내 삶의 결이 달라지고 있음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내 곁에 머물기 시작하니,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많은 변화가 나를 찾아왔다.




너무 작아 두려운 존재

출산 후 2-3주간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더니,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생아실에서 고작 손수건 한 장을 베개 삼아 누워있는 아이가 어찌나 작고 연약해 보이던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숨을 쉴 때마다 아주 조금씩 오르내렸던 가슴의 미동이 기억난다. 그 작은 움직임은 너무 미세하고 위태로워 보여서, 눈을 떼면 금방이라도 멈춰버릴 것만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새벽에 혼자 방에 누워있다 보면 아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고작 이런 일로 눈물이 나나' 싶어 스스로도 웃기고 황당했다. 이 작은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어야 한다는 책임감, 혹여 내 부족함으로 아이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까 봐 생기는 걱정. 그리고 무엇보다 만난 지 오래되지도 않은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벅찬 감정이 뒤섞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당신의 밤

첫 한 달은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상주하며 나의 육아와 몸조리를 도와주셨다. 당시 나는 처음 겪는 모유 수유 관련 문제들로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몸의 고통에 잠 부족까지 겹치니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아기를 돌본 지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린 엄마는 어떤 면에서는 초보인 나보다 더 서툴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의 서툼을 너그럽게 넘기지 못하고 뾰족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한 번은 아침밥을 먹다 둘이 마주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각자의 고단함과 미안함이 뒤섞였던 아침이었다. 24시간 붙어 함께 기저귀를 갈고, 잠들지 않는 아기를 번갈아 안아주며 보낸 그 한 달은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아이를 다루는 손길은 서툴렀을지 몰라도, 아이를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엄마의 마음만은 결코 서툴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잠들지 못하고 보챘을 어린 나를 품에 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당신의 밤을 내어주며 나를 키워냈고, 이제 엄마가 된 딸을 위해 당신의 밤을 또 한 번 기꺼이 내어주고 있었다.


아이를 키워봐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더니. 엄마라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자, 그 시절 엄마가 홀로 견뎌냈을 밤의 정적과 인내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걸어온 모든 평범한 날들 속에 엄마의 정성이 스며들어있었음을 깨달았다.




정답이 없는 길

엄마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 차례 지나가고, 다시 현실의 육아가 남았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의욕이 앞섰지만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자주 부딪혔다.


특히 SNS에서 50일이면 벌써 통잠을 잔다거나, 수유 텀이 칼같이 지켜진다는 다른 집 아기들의 후기를 보며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핸드폰 속 육아 공식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며 초조함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던 엄마는 늘 너그러웠다. 때로는 그 너그러움이 육아에 무지한 것처럼 느껴져 불만을 품기도 했다. "엄마, 요즘은 그렇게 안 해. 이게 정답이래."라며 날을 세우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씨름하며 눈물 섞인 밤을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의 너그러움은 무지가 아니라 아이가 자라나는 속도를 묵묵히 지켜봐 주던 기다림이었다는 것을


결국 나는 액정 속 정보들을 뒤로하고 내 앞의 아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억지로 맞추려던 초조함을 내려놓고 아이의 템포를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때가 된 아이는 스스로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수유 텀도 자연스럽게 늘려갔다. 아이는 제 몫의 성장을 스스로 해내고 있었다.


거창한 육아 철학은 접어두기로 했다. 내 아이가 자라 과거를 돌아봤을 때 내가 느꼈던 것처럼 엄마의 정성과 온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 믿는다.




사랑의 전이

나만을 믿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작은 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몽글한 감정들이 차올랐다. 내 품의 아기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만큼, 세상의 다른 아이들도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아프거나 외로운 아이들의 소식을 접하면 예전과 달리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거창한 꿈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오랫동안 마음만 먹고 미뤄왔던 어린이 재단 후원을 시작한 이유다. 거창한 도움은 아닐지라도, 그저 어느 아이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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