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Part 3. 사람

by 조미래

내가 만날 사람, 내가 가질 직업,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삶.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정해져 있는 채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 짜여진 연극의 한 장면처럼, 마치 '트루먼쇼' 속 짐 캐리처럼 꽉 닫힌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루하다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 때쯤 재미로 친구들과 사주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한 상태였고, 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거의 없는 사람과도 같았다. 휴대폰에 내 생년월일과 이름, 태어난 시간을 입력한 사주를 봐주시는 분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사주엔 물이 가득하고 화를 숨긴 고요한 바다라고 했던가? 구구절절 이야기를 듣다가 가족 이야기를 듣곤 놀랐다. 내 사주엔 아빠의 존재가 거의 없다고 했었다.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찬찬히 곱씹다가 태어나기도 전에 운명이 정해진 채로 태어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듯 벙쪄 있었다. 만약 나의 모든 것이 정해진 채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나간다기보단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잘 떠 있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후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운명이 느니, 인연이 느니 사실 그런 거 안 믿고 살았었다. 내가 만날 사람이 정해져 있고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 생을 살아가는 거라면 그거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삶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답을 알고 있는 수학문제를 풀자면 괜히 대충 풀게 되고 거드름 피우게 되는 것처럼. 근데 조금, 정말 조금 더 살아보니 어쩌면 운명이 존재한다는 게 조금은 안정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단하고 외로운 삶의 어딘가에 나와 꼭 맞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쓰디쓴 삶이 가끔은 조금 달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


때로는 급류가, 거친 파도가, 또 때론 물살 한 번 치지 않는 고요한 바닷속을 헤엄치는 삶 속에서 운명이라는 부표를 껴안고 간신히 떠다니는 것. 그게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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