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르게] EP1.

[소설]

by 조미래



수인이 앉아 있는 운전석으로 넘어가 브레이크를 밟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정확히는 수인의 발을 밟고 싶었다. 이러다가 너랑 나 오늘 나란히 죽겠어. 난 오래 살고 싶진 않아도 크리스마스에 죽고 싶지는 않은데, 수인아. 수인은 무슨 애가 이렇게 겁이 없는지 뽑은 지 일주일도 안 된 새 차를 레이싱 선수처럼 몰았다. 수인을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는데 매번 참신하게 나를 놀래킨다. 누가 내일 없이 사는 우수인 아니랄까봐 참 운전실력이 우수하다 수인아. 근데 수인아, 뒤에서 코끼리라도 쫓아오니? 왜 이렇게 달리는 건데!


“제발 천천히 좀 가.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불안해서 빠르게 느껴지는 거야. 날 좀 믿어. 어? 그리고 옆에서 그만 좀 쫑알거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태연한 표정으로 정면을 주시하는 수인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지도 불안한 걸 알긴 아나 봐. 그냥 택시를 타고 갈 걸 잘못 생각했다. 얼마 전 면허를 갓 취득한 초보운전자 수인이 주행 연습을 할 겸 자신의 차를 타고 가자는 말에 솔깃해 감히 걱정도 없이 올라탔던 터였다. 면허를 따기도 전에 덜컥 차를 먼저 뽑은 수인이었기에 그 추진력 하나는 내세울만 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바보 같다. 택시비가 아까워서 타줬더니 아주 나를 죽일 샘이야. 며칠 후면 서른인데 후회할 선택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 미친듯이 불안한 차를 타고 나와 수인은 우인을 보러 가는 길이다. 기다리고 있을 우인을 생각하니 운전석에 앉아 떨리는 동공으로 직진만 하고 있는 수인이 더 원망스러워졌다. 야 우회전을 해야지 직진이 아니라! 네비게이션은 장식이냐? 아 맞네, 아 너 때문에 헷갈렸잖아. 우인아, 우리 많이 늦을 거 같아. 넓은 주차장이 아니었음 이미 차 몇 대를 긁고도 남았을 수인이 간신히 주차를 마무리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수인 차 타다가 크리스마스에 죽는 불상사를 면해 주셔서. 평생 무교로 살아온 내가 하나님을 찾게 하는 저 도로의 무법자는 자기도 새삼 본인의 운전 실력에 놀란 건지 핸들에 머리를 박고 심호흡을 하고 있다. 면허는 도대체 어떻게 딴 거냐고.


“죽다 산 건 난데 왜 네가 숨을 고르는데.”

“야 나도 같은 차에 타고 있었잖아. 나도 죽다 살았다.”


목을 부여잡고 칭얼대는 수인을 두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리니 12월의 찬 바람이 볼을 스쳤다. 오늘따라 날이 더 차게 느껴진다. 옆에서 열을 내며 드르릉거리던 자동차의 진동이 사그라들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수인이 터프하게 차문을 턱, 닫고 내려 내 옆에 섰다. 뽑은 지 일주일 밖에 안됐다며. 좀 살살 닫아라, 살살. 내일 따윈 없는 것처럼 달려대는 주제에 첫차를 중고가 아니라 새 차로 뽑았다. 도대체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당차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자.”

“어어, 가야지.”


무심하게 말했지만 땅에 발이 묶인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우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래서 더 쉽게 걸음을 뗄 수가 없다. 내 표정으로 생각을 읽은 건지 걸음을 떼려던 수인이 아무 말없이 공중에 떴던 자신의 발을 다시 땅에 불이곤 묵묵히 내 옆에 서 있는다. 오분 정도 지났을까. 그렇게 서로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가만히 정면만을 바라봤다.


“노부부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네 옆이 포근하지? 우리 좀 떨어질 때가 됐나 봐.”

“나 원래부터 포근한 여자야. 너랑 다르게.”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주고받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데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편할 이유가 있나. 그저 오랜만에 얼굴을 볼 뿐이다. 그 뿐이다.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찬 바람에 코가 시리기 시작했다.


“춥다. 들어가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으로 우인을 봐야 할까. 우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내는 동안 정말 수도 없이 생각해봤지만 백날 머리만 굴려서는 도저히 해답이 서지 않았다. 오늘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글쎄. 이것도 미지수다. 우인을 만나는 건 꼭 2년 만이다. 1년쯤 됐을 땐 후회가 됐고, 2년째에 접어들었을 땐 건방지게도 담담해졌다. 영영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나와 우인 사이를 가로질러 참 잘도 흘렀다. 매정하게도.


수인과 나는 유치원때부터 친구였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같은 학교로 배정받은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방과후 수업을 함께 들었고 방과후 수업이 끝난 후엔 떡볶이를 먹었다. 치즈떡볶이 2인분, 튀김, 콜라를 단번에 해치우고 함께 신발주머니를 부딪혀가며 집까지 걸어갔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1004호에는 내가, 904호에는 수인이 살았다. 언제부터 위 아랫집에 살고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른다. 우리는 5살때부터 유치원버스에서 내리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인은 9층에서, 나는 10층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고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에 탄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멈춰 나와 다른 교복을 입은 수인을 태웠고, 8층에서 한 번 더 멈춰 우인을 태웠다. 우인은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 마이 오른쪽에 명찰이 없는 걸 보니 입학생인 것 같았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수인과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어 내심 불안해했던 내가 먼저 우인에게 말을 걸었다. 우인은 층수 버튼을 바라본 채 엘리베이터 구석에 서 있었다.


“혹시 입학생이야? 명찰이 없길래.”

“아, 어 맞아. 오늘 입학해.”

“이름이 뭐야? 난 오해인.”

“나는 우인이야. 박우인.”


불쑥 들어온 나의 질문에 우인은 잠에서 막 깬 듯 멍한 표정으로 얼렁뚱땅 대답했다. 여드름 하나 없이 하얗고 투명한 피부였다. 염색 한번 해보지 않은 것 같은 새까만 짧은 똑단발에 목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 단추. 나 착해요-, 광고하고 다니는 얼굴이었다. 오해인, 우수인, 박우인. 끝에 모두 ‘인’자가 들어갔다. 마음에 들었다. 그 투명한 얼굴이, ‘인’자로 끝나는 그 애의 이름이, 우리 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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