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또 한번의 정적이 흐른다. 허공에 멈춰 있던 손을 가까스로 내려 블루투스를 연결하고 노래를 재생했다. 불편한 정적을 덮고 싶었다. 수인의 주행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작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해해.”
수인은 여전히 무표정에 시선은 오로지 정면만을 향해 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머리가 말랑해진다. 긴장이 풀렸다.
“그 말 하는데 2년이나 걸리냐.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웃어야 하는 지 울어야 하는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얼굴 근육 탓에 억울한 표정이 되어버린 내 얼굴이 거울을 보지 않고도 느껴졌다. 대답하지 못 했다. 조금 그랬는지도 몰라, 나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차창 너머로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스튜디오에 출근해 컴퓨터 전원부터 켰다. 잠깐 쉬는 동안 한기로 채워진 스튜디오 공기 탓에 실내에 있는데도 등골이 서늘하다. 히터를 키고 따뜻한 커피를 내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책상 바로 옆에 놓인 몬스테라 잎의 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스튜디오 문을 처음 열던 날 우인과 수인이 개업선물이라며 꽃집에서부터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 내게 데려온 화분이었다. 진한 초록색인 나머지 잎과 다르게 한 잎만 연한 연두색으로 변해버렸다. 설마 잘라내야 하나. 물을 줘보고 진전이 없으면 고민해 봐야겠다. 저번주에 촬영한 사진을 보정하고 고객에게 완성본을 보내야 한다. 오후에는 야외촬영이 예약되어 있다. 스냅촬영을 시작한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원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쓰고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소설가. 사람 관찰하는 일을 좋아했다. 인상을 찌푸린 사람을 보면 왜 저럴까 무슨 일이 있나, 해물해물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좋은 일이 있는 건가 아님 정신이 나간 걸까,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을 보면 나한테 관심있나 아님 꼴보기가 싫은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재미있었다. 대학도 곧이곧대로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졸업할 때 즈음 흥미를 잃었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집필했던 소설들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좋은 반응이 없다 보니 의욕이 없어졌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나름대로 오래 간직했던 꿈을 포기하는 데에 달리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부상을 입은 운동선수가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서는 것 같은 감동스토리 따위는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허상의 이야기를 시각적인 자료 없이 상상해야 하는 소설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 관찰하는 게 좋았던 나는 사진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동네 사진관에서, 그 다음에는 개인 SNS계정에 작업물을 올리며 고객을 확보했다. 초반에는 모델이 없어서 테스트용으로 수인과 우인을 많이 찍었다. 모델료는 늘 떡볶이. 그때는 금전적인 대가보다 매콤한 열정페이가 더 잘 통했다. 소박했던 창업 초기를 지나 처음으로 내 스튜디오를 얻었다. 오래된 건물의 1층 상가 공간이었다. 카페를 운영했던 곳이라 에스프레소 머신과 싱크대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서 철거하려면 품이 꽤나 들 것 같아 그냥 두고 아직도 내가 사용하고 있다. 입구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에스프레소 바를 지나면 나의 책상이 있고 그 뒤로 촬영 공간이 있다. 스물다섯에 스스로 얻은 첫번째 나만의 공간에 나도 수인도 우인도 들떠 했었다.
저번에 촬영한 커플 스냅사진을 보정하고 메일로 완성된 사진을 전송했다. 촬영 예약은 2시. 점심시간까지도 아직 여유가 있다. 작업하던 포토샵 창을 닫고 괜히 손이 심심해 그동안 작업한 파일들을 둘러봤다. [삼인]. 우리 셋의 사진이었다. 오늘 잎 하나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몬스테라가 스튜디오에 입주한 날,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매번 수인과 우인을 찍어주는 데 익숙했던 내가 어정쩡하게 둘 사이에 끼어 카메라 타이머를 맞춰놓고 찍은 개업 기념사진이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수인, 가운데에 서 있는 나, 마지막으로 우인. 우인의 얼굴에 커서를 올려놓고 마우스 휠을 내려 확대했다. 5년 전의 우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고작 2년이 흘렀다고 무심하게도 나는 우인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한 여름 공원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의 물이 손바닥을 관통하는 것처럼 형태는 있으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애의 대한 모든 것이 한낮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린 기분이다. 모니터 속 우인의 모습이 점점 흐리게 보인다. 우인의 이목구비조차 흐리게 보일 때쯤 수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박우인 바다 옆에 묻어주자.”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에겐 좁은 유리관 속에 갇혀 있는 우인이 더 생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 그러자.”
오전에 전송한 촬영 완성본에 대해 수정사항이 들어왔다.
‘더 밝아 보이게 포샵해 주세요.’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