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 왔어.”
박우인. 우인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보름달 모양의 하얀 유골함 안에 우인이 담겨있다. 이젠 이게 우인이다. 더 이상 하얀 피부를 보며 감탄할 수도, 해사한 웃음에 덩달아 잇몸을 들어내며 웃을 일도,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우인의 팔을 툭 칠 일도 없다. 정사각의 유리관 안에는 우인과 우인의 사진, 1년 전 이날엔 생생하게 피어 있었을 꽃이 바싹 말라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놓여 있다. 작년에 수인이 혼자 우인을 보러 왔을 때 넣어 놓은 데이지 꽃이었다. 2년만의 인사를 건넨 뒤 유리문을 열어 드라이플라워를 조심스럽게 뺐다. 바스라지는 꽃잎이 납골당 바닥에 사뿐히 떨어졌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빈 자리에 새로 가져온 데이지를 우인의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우인이 그나마 아는 꽃이었다. 꽃잎은 하얗고 가운데의 수술이 노란 데이지. 우인은 데이지가 꼭 계란후라이를 닮은 것 같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었다. 우인의 생일 때도 졸업식 때도 나와 수인은 계란후라이 꽃을 한 다발 사서 우인에게 선물하곤 했다. 좋아하는 꽃을 물어보면 딱히 아는 꽃이 없어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데이지 꽃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었다. 데이지가 계란후라이를 닮은 덕에 꽃에 관심 없는 우인이 기억할 수 있었던 듯 싶다. 유리문을 닫고 다시 보름달 같은 우인을 바라봤다. 덤덤해진 줄 알았다. 아주 건방지고 교만하게도 우인의 부재가 익숙해진 줄 알았다.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건지 난 아직 우인을 마주하는 일이 어렵다.
“나 얘 때문에 면허 땄다. 운전하면서 성질 죽이기 너무 힘들어. 우인아.”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납골당의 공기를 깨고 작지만 옹골찬 수인의 목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침묵을 깨는 목소리에 차오르는 눈물 탓에 뜨거워졌던 눈가가 조금씩 미지근하게 식는 게 느껴졌다. 목구멍을 먹먹하게 막고 있던 숨을 조금씩 입밖으로 뱉어냈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길게 숨을 뱉고는 우수인 성격이 거지같아서 그런 거라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말을 던졌다. 현실감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빼곡한 정사각의 유리함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 아이, 갓난 아이, 남녀노소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이 곳에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박우인”
독백의 크리스마스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인을 남겨두고 납골당을 나왔다. 수인이 나를 경호하는 것처럼 뒤에서 나를 묵묵히 따라왔다. 걸어서 삼십 분이면 바다였다. 언젠가 우인이 고향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 모두 통영 분인데 우인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로 이사를 오셨다고 했다. 우인은 서울은 삭막해서 싫다며 기억도 나지 않는 고향 통영이 그립다고 맥락에 안 맞는 소리를 해대곤 했었다. 그러고는 만약에 죽어서 머물게 될 곳을 정한다면 바다 근처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머무른다는 표현이 어딘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죽으면 재로, 바람으로, 공기로 흩어지는 게 사람 아닌가. 돌아와 생각해보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우인의 말을 조금 더 귀 기울여 들어줄 걸 그랬다. 우인은 여전히 내 곁에 보이지 않고 정해지지 않은 형태로 머무르고 있으니까. 어째서 부재의 뒷면에 남는 건 늘 후회 뿐일까.
“바다 보고 가자.”
“걸어가면 안되는 거지?”
“너 자꾸 그러면 여기 떨구고 간다. 빨리 타.”
답지 않게 정적이 맴돌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운전실력이 거지같다며 우수인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나도, 사인도 없이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운전자를 욕하던 우수인도 아무 말이 없었다. 오랜만에 꺼내 입은 검은 코트의 소매를 만지작 거리기만 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주 자주 가지각색의 육두문자가 오가던 사이에 이런 침묵이 안개처럼 깔리니 조금 견디기가 힘들었다. 노래라도 틀어볼까.
“블루투스 연결해도 되지?”
“그동안 우인이 보러 왜 안 왔어?”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던 손이 옆구리 언저리에서 어정쩡하게 굳어버렸다. 수인은 돌려서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그게 수인의 강점이었다. 빙빙 돌려서 말 할 궁리를 하는 시간에 수인은 시원하게 뱉곤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님 아닌 거고, 했다. 2년 간의 무책임함에 대해 묻는 질문에 살짝 벌어진 입이 대답할 생각은 안하고 차 안의 텁텁한 공기만 축내고 있었다. 수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백미러로 슬쩍 수인의 표정을 살폈다. 언제나처럼 덤덤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애써 짓고 있는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을까.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건 아닐까. 내 대답을 듣고도 저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미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