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연작

경의중앙선 자리 쟁탈전: 어느 직장인의 처절한 승리

by 방덕붕

출근 시간, 서울역 급행 경의중앙선.


헐레벌떡 뛰어서 열차에 올라탔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숨은 헐떡거리는데, 눈은 이미 차갑게 차내를 스캔하고 있다. 27년 IT 경력은 아무 소용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오직 야생의 본능.


졸고 있는 여자분 앞에 섰다. 좋아. 포지셔닝 완료.


그런데 뭔가 불편하다. 옆에 누가 섰다. 유리창에 비친 인상을 슬쩍 봤다. 꽤나 신경질적으로 생겼다. 아니, 미안. 그냥 느낌이 그랬다. 뭐랄까, "내 앞이 아닌 니 앞에 자리가 나더라도 니 겨드랑이를 스쳐 들어가서라도 앉겠다"는 아우라? 느낌적인 느낌.


경계 레벨 상승.


몇 정거장이 지났다. 앞에 여자분이 눈을 떴다. 두리번거린다.

'옳지!'

내 뇌가 0.3초 만에 계산을 완료했다. 다음 역은 환승역이다. 내릴 확률 87%. 아니나 다를까, 일어서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옆에 아줌마.


돌아볼 시간 없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아줌마를 슬쩍 밀면서 일어서는 여자분에게 길을 열어줬다. 신사적인 행동이다. 나는 매너남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줌마가 내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든다.


겨드랑이 밑으로!!!


인간의 존엄 따위는 이미 개찰구 통과할 때 찍고 들어온 모양이다.

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다. 27년 직장 생활이 나를 단련시켰다. 나는 번개처럼 오른 다리를 좌석과 아줌마 사이에 끼워 넣었다.


쐐기.

완벽한 쐐기.


아줌마의 진격이 멈췄다.


나의 승리.

엉덩이를 좌석에 붙이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 아줌마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내렸다. 손잡이도 안 잡고 이리저리 휘청휘청거리면서.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옆 사람한테 부딪히고, 또 휘청거리고.

손잡이를 안 잡는 건 대체 무슨 고집일까. 두 손이 자유로워야 자리가 났을 때 더 빨리 앉을 수 있다는 전략인 걸까. 아니면 그냥 손잡이 잡기 싫은 걸까. 미스터리다.

어쨌든 아줌마가 내리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잘 가요! 다음 열차에선 좋은 사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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