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을 타면 요즘 이런 안내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이동 상인은 다음 역에서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동상인의 물건을 구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붐비는 열차 안에서 물건을 판다고? 어떻게?
오늘 아침, 2호선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안내방송이 또 나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노약자석에 앉아 계신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는 손수레. 안에는 장갑이 담겨 있었다. 아마 켤레당 천 원쯤 할 것이다.
아저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셨다. 손수레를 앞에 두고, 시무룩한 얼굴로, 그냥 앉아 계셨다.
아. 팔려고 나오셨구나. 근데 용기가 사라지셨나보다.
처음 나오신 것 같았다. 여러 번 해본 사람들은 뻔뻔하게 잘한다. "천 원에 세 켤레!" 목소리 크게, 칸칸이 돌아다니면서. 근데 이 아저씨는 그게 아니었다. 수레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칸칸이 돌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마 첫 칸에서부터 앉아 계셨던 건 아닐까.
뭔가 일거리가 없어서 찾은 게 이거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한테 들었겠지. 지하철에서 팔면 좀 된다고. 바람잡이가 있으면 좋은데, 오늘은 길이 엇갈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요즘 사람들 현찰을 안 가지고 다닌다. 천 원짜리 장갑을 사려고 지갑을 뒤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르신들은 현찰을 가지고 다니시지만, 아침 출근길이라 어르신들도 안 보인다. 그 시간, 그 칸에는 아저씨 혼자였다.
안내방송이 또 나온다. 이동상인은 내리시기 바랍니다. 구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아무도 안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더 서글플 수도 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친 것 같았다. 아저씨는 바로 고개를 돌리셨다.
하나 사드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바로 뒤따라왔다. 왜 안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한테 다가가서 "하나 주세요" 하면, 주변 사람들이 볼 것이다. 아저씨가 용기가 없어서 못 파신 것처럼, 나도 용기가 없어서 못 산 건지도 모른다.
열차는 내 목적지에 섰고 나는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