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던 나와 갈 곳이 없어진 당신

햇살도 바람도 좋은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by 방덕붕

'등록이 안된 카드입니다.'


아침 출근길, 버스 입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한 번 더 찍었습니다. 같은 소리. 버스는 정류장에 나를 놓고 가버렸고, 나는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에 갈 방법이 없었고,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습니다. 기온도 적당하고 바람도 불고. 몇 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나는 갈 곳이 있었지만 갈 수 없었고, 요즘 졸업하는 세대는 갈 수 있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통장에 매달 돈이 들어오고, 굶지는 않고, 방도 있고.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 갈 곳이 없습니다.


나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벤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유를 만든 게 아니라, 이유가 이미 있었던 겁니다.


갓 졸업한 사람에게 그 이유가 없으면 — 누가 만들어줘야 합니까.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앉아 있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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