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4-5.
관제실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야간 모드에 들어가고, 벽면의 디스플레이들도 하나씩 꺼진다. 기계의 진동만이 미세하게 공간을 울린다.
강박사가 홀로 남아 있다. 커다란 구체 디스플레이가 닫히고, 중앙 테이블도 낮아진다. 이제 그는 한가운데 놓인 긴 소파에 앉아, 거대한 창 너머를 바라본다.
도시의 야경이 펼쳐진다. 돔형 구조물들 사이로 흐르는 빛의 강, 질서정연한 고속 주행로, 고요한 하늘. 소음도 없고, 혼란도 없다. 그러나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다. 모든 것이 효율적이고, 정제되어 있지만… 그 어디에도 살아 있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바라본다. 늙지는 않았다. 인공적인 생체 조절 덕분이다. 그러나 손등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은 피로가 고여 있다.
“완전한 인격을 가진 존재. 그건 정말 가능한 걸까…”
그는 천천히 일어나 책장 쪽으로 걸어간다.
관제실 한편, 외부에선 아무도 보지 못할 위치에 숨겨진 작은 서가. 디지털 자료가 아닌, 손으로 넘기는 책들. 낡고 오래된 철학서, 경전, 시집, 이름 없는 고문서들이 층층이 꽂혀 있다. 그는 그중 한 권을 꺼낸다. 표지가 닳아 제목이 지워졌지만, 안쪽 첫 장에 손글씨가 남아 있다.
“질문이 있는 존재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그 문장을 바라보다, 속으로 되뇌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건지, 그저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창가로 걸어간다. 멀리 지평선 위, 인공 위성이 다시 하나 떠오른다. 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는다. 대기 오염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시가 하늘을 ‘가리는’ 구조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위를 올려다본다. 별이 없는 하늘, 그러나 자신은 안다. 그 위 어딘가에, 끝없이 펼쳐진 공간이 존재한다는 걸.
“이들이… 끝내 그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그의 음성은 허공에 흩어진다. 그러나 마치 누군가 듣고 있다는 듯, 말끝을 아낀다.
그 순간, 관제실 벽면의 메시지 패널이 미세하게 깜빡인다. 자동 시스템의 야간 루틴. 하지만 그 눈부심 속에서, 강박사는 아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다.
“…누군가, 깨어나고 있어.”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구체 디스플레이 쪽을 바라본다. 이미 꺼진 화면 위, 아무런 영상도 없지만, 그는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어.”
4-6.
공기가 흐르지 않는 절대 정온의 구역. 벽면은 흡음 처리된 소재로 둘러싸여 있고, 천장은 단일 복합소재로 이루어진 반투명 돔. 이곳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 사파리 시스템의 신경 동기화 실링룸이다.
공간 한가운데, 반원형으로 배치된 일곱 개의 인큐베이터. 각 인큐베이터는 투명 격리막 안에 정밀한 생명유지장치와 뇌신경 인터페이스를 장착하고 있다. 내부에는 한 사람씩, 조용히 누워 있다. 그들의 눈은 감겨 있고, 움직임은 없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살고 있다’. 바로 그 안에서, 태어나, 자라고, 사랑하고, 고통받고, 늙어가며…
이들은 사파리 안에서 갓난아이로 태어났다. 기억은 봉인되었고, 삶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단 한 번의 인생. 그러나 가상의 공간. 하지만 그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보다 생생하다. 각 인큐베이터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코드가 떠 있다.
J114-1 – 활성화 중
J114-2 – 활성화 중
…J114-7 – 활성화 중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현재 접속 상태: 사파리 내 생애 체험 중
기억 봉인: 안정 유지
질문 반응 지수: 전조 감지됨 (대상: J114-3)
대상 J114-3의 뇌파 곡선이 서서히 변화한다. 감정 파장, 언어 회로, 사고 전환 계통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이름은 소피아. 지금, 사파리 안에서 저녁 식탁에 앉아 질문 없는 무기력 속을 통과하고 있는 존재. 그러나 이곳, 본래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간이다.
극비 자료 열람권을 지닌 강박사가 인증을 거쳐 ‘J114-1기’에 대한 실체 정보를 조회한다. 일곱 명의 현실 세계 신원이 하나씩 공개된다.
J114-1
사파리 이름: 지민
현실 이름: 한지운 (Han Jiwoon)
직위: 지구연방 외교안보 최고위원
출신: 대한민국
프로필: 전 지구 분쟁 조정 네트워크 설계자. 민간-군사 하이브리드 모델 고안자.
J114-2
사파리 이름: 나딤
현실 이름: 파리드 아짐 (Farid Azim)
직위: 전 지구 방위군 최고사령관
출신: 중동 연합
프로필: 유사 독재 체제 종식 이후 재건의 상징. 실전 전략과 회복 탄력성의 화신.
J114-3
사파리 이름: 소피아
현실 이름: 클레르 마르탱 (Claire Martin)
직위: 지구문화철학 위원회 의장
출신: 프랑스
프로필: 정신문화 르네상스를 이끈 철학자이자 예술통합 이론가.
J114-4
사파리 이름: 디에고
현실 이름: 에스테반 로하스 (Esteban Rojas)
직위: 재사회화 범죄심리 총책임자
출신: 중남미 공동체
프로필: 전 범죄조직 수뇌부 출신 개혁가. 범죄와 구원의 실험자.
J114-5
사파리 이름: 케빈
현실 이름: 로렌스 하워드 (Lawrence Howard)
직위: 초지능 법윤리 위원장
출신: 북미 연합
프로필: 양자정보법 창안자, 인간과 기계의 경계 탐색자.
J114-6
사파리 이름: 린
현실 이름: 장 루이메이 (Zhang Ruimei)
직위: 동양 정신문화 복원 프로젝트 대표
출신: 중국 내륙
프로필: 심신 통합 철학체계 개발자. 도가·불교 사상 현대화 실천자.
J114-7
사파리 이름: 마리사
현실 이름: 자라 은디예 (Zara Ndiaye)
직위: 지구기후생태 회복 위원장
출신: 아프리카 사헬지대
프로필: 생존과 생태회복을 연결한 신생 생태신학의 주창자.
이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 있다. 사파리에서는 여행자로서 그 삶을 다시 살고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이미 정치, 윤리, 문화, 군사, 생태의 정점에 선 이들이다.
이 들 중 ‘완전한 인격’에 도달하는 자, 그가 지구연방의 최고 통치자, 새로운 인류 질서의 중심이 될 것이다.